홍건적 난1 침용소분(侵用消紛) 내외부 혼란을 통해 자국의 분란을 해소한다 침용소분(侵用消紛) 내외부 혼란을 통해 자국의 분란을 해소한다 1359년 고려에 침구한 왜구는 이 해 5월을 고비로 기세가 다소 수그러들었다. 왜구 발호로 국가적으로 치명적인 내상(內傷)을 입은 고려로서는 잠시나마 숨을 고를 수 있는 휴식기에 해당된다. 그러나 여우를 피하자 범이 나타난다고 그 해 11월에 접어들자 고려는 또 하나의 외침 세력인 홍건적의 대대적인 침입을 받게 된다. 이를 ‘제1차 홍건적의 난’과 이에 대응한 ‘홍건적 토벌전쟁’이라고 부른다. ‘북로(北虜)’로 말미암아 고려는 핍진한 군사력을 모아 홍건적 토벌에 집중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국방력이 북으로 향하자, 왜구는 이를 기화로 대거 침구를 감행해 온다. 왜(倭)로서는 고려의 국란은 간절히 바라던 바였고, 약탈의 절호의 기회였다. 고려가.. 2017. 8. 16.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