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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경영/평범한 직원이 회사를 살린다

흔한 게 정답

by 전경일 2009. 2. 13.

흔한 게 정답이다


얼마 전, 한 외국계 제약회사의 C임원을 만나게 되었다. 새로 본사에서 지사장이 부임해 왔는데, 그 날 이후로 학습 능력이 엄청나게 요구돼 하루하루가 버겁다며 그는 불만을 털어 놓았다. 외국계 회사를 다닐 정도면 그래도 마케팅이나 영업 쪽은 달인인 사람들이고, 정규교육 과정에서 외국 물 꽤나 먹은 사람들인데, 그런 자신들조차 견디기 힘들다는 것이었다. 이유인 즉슨, 신임지사장이 외국 유명대학 교수 출신이어서 사업현장을 마치 경영실험장으로 알고 대책 없이 연구 프로젝트를 벌린다는 것이었다. 그는 마치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이론을 현장에 꿰맞춰 보려는 듯하다고 그는 말했다.


최신 경영이론에서부터 아카데믹한 연구서에 이르기까지 대학 졸업 후 그만 둔 공부를 해야 하니 죽을 맛이라고 했다. ‘단순 무식하게’ 실적을 챙기기만 하면 되는 영업직 직원들은 밀리는 숙제 때문에 거래처 방문을 미루거나 방문 횟수가 줄어 들 수밖에 없다며 푸념했다. 아무튼 로컬 시장 사정을 잘 아는 사람이 왔어야 했는데, 외국 회사의 높은 시장 점유율만 믿고 돼도 않게 밀어 붙이는 꼴에 이제는 진절머리가 난다는 것이었다.

그런 얘기를 들으며 나는 오늘의 경영자는 과연 경영의 눈높이를 제대로 맞추고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는 그런 것에 대해 얼마나 큰 비중을 두고 있는지 생각해 보게 되었다. 현란한 경영 이론과 과학적 데이터 앞에서 고객의 심연에 빠져드는 경영의 본연은 물 건너 간 느낌이다.
 
경영의 본질이 경영학을 위한 임상실험 과정 같은 것은 아닐텐데, 과도한 학력, 조직에 지극히 순화된 업무 태도, 나이스한 비즈니스 매너 중심으로 모든 게 변모되어 가면서 우리의 기업 풍토는 팔을 걷어붙이고 현장으로 뛰어드는 소탈한 직원을 찾아보기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는 분석이었다. 분명, 일리 있는 주장이었다.


많은 기업 창업자들이 몸소 경영의 교과서가 되어 준 배경에는 이들의 슬기가 책에서 나온 게 아니라, 시장에서 굳은 잔뼈 덕분이었다는 것을 요즘 사람들은 간과한다. 특히나 지식을 무기로 하는 사업의 경우엔 이런 현상이 극단적으로 나타난다.


앞서 외국 제약회사의 신임 지사장이 보여 준 태도야 말로 영어로 얘기하자면, 풋내기 학생과제물 거리(college stuff)인 셈이다. 길거리 지식을 들고 나가지 않는 한, 시장을 제대로 이해나 할 수 있을까? 어느 때이고 진정한 경영의 실천자는 시장에 있다. 많은 경우에 회사가 요구하는 똑똑함은 시장과 고객이 요구하는 슬기와는 별개로 놀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앞서 예를 든 지사장은 자기 ‘눈만 높은’ 인재임에 틀림없다. 이런 사람들의 특징은 이미 오래 전 거스 히딩크가 한국 축구를 분석하며 한 말거ㅘ 일맥상통한다. “알피엠(rpm)은 무척 높은데 속도는 안난다.” 이런 상황 아니겠는가?


경영에서 만고불변의 진리는, 가장 탁월한 기업은 보통의 직원들과 함께 한다는 것이다. 그들의 작으나 현장에 뿌리를 둔 지식과 경험은 어느 경쟁력 있는 조치보다도 뛰어나다. 그걸 가리켜 우리는 ‘시장지식’이라고 부른다. 우리는 우리가 특별한 눈길을 주지 않고 지나치는 시장과 그곳의 고객을 대상으로 사업을 하는 것이라는 걸 환기해야 할지 모른다. 이 평범한 진리를 간과한 채 우리는 인재론만을 부르짖고 있는 건 아닌지.


나사(NASA)에서나 유용할 고차원의 수학 문제를 필요로 하는 시장은 그리 많지 않다. 그 같은 문제를 즐기는 조직도 문제지만(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곤), 그 같은 문제에 집착하려는 조직은 시장성공과 거리가 멀다. 시장과 동떨어진 이론은 가치를 잉태해 내지 못한다. 오늘날 현란한 학력과 매너, 외국어로 무장한 경영자들은 다시 진솔한 경영 현장으로 돌아가야 한다. 땅을 딛고 있을 때에야 경영은 의미 있는 것이다. 조직의 비전이 움트는 땅, 그것이 바로 평범한 직원들 속이다.

ⓒ전경일, <평범한 직원이 회사를 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