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감성경영/맞벌이 부부로 산다는 것

좀 더 나은 생활은 무엇일까

부부가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 십 수 년 전, 결혼식 당일엔 정신없어서 기억조차 하지 못했던 주례사를 다시 틀어 보았다. 그동안 어디에 뒀었는지 관심도 두지 않았던 비디오 테잎을 돌려보며, 이제야 결혼이 뭔지 조금은 알게 된 것 같다. 지금 들어봐도 주례사 얘기는 하나도 틀린 게 없다.

검은 머리가 파뿌리 될 때까지 살라,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서로를 위해줘라, 참을 인(忍)자를 하루에도 세 번 이상 쓰라, 부모 형제에게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늬이들이 우선 잘 살아야 효도하는 거다 등등...

아직은 결혼 생활을 다 해본 게 아니어서 모르겠지만 다 수긍하게 되는 말들이고, 어느 것 하나 틀린 게 없다. 그 중에, 부부가 뜻이 같아야 뭐든 된다, 는 얘기는 정말이지 나이 들어서도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사는 게 결혼 전엔 철학을 하는 것 같았는데, 살다보니 그게 인생철학인 것을 알게 되었다. 개똥밭에 구르며 만들어진 개똥철학인지는 몰라도 결혼해 살며 인생을 보는 눈도 생겼다. 그러다보니 인생이 뭔지, 사는 게 뭔지 조금은 아는 나이가 되었다. 갑자기 잘 놀던 아이가 탈이 나 오밤중에 병원 문을 두드려야 했던 거며, 갑작스럽게 장인이 골수암에 걸렸다는 얘기를 주치의로부터 듣게 되는 거며, 잘 나가던 사업이 한순간에 개굴창에 쳐박힌 자전거 바퀴처럼 그냥 헛돌다 멈추게 된 거며, 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문제로 집안이 시끄러워졌던 거며, 갑작스런 실직을 경험해야 했던 거며, 이쯤이면 사는데 개똥철학 정도는 생긴 게 아닌가 한다. 무던히도 말도 많고 탈도 많았기에 알게 된 인생살이의 진면목이 아닌가 말이다.

더구나 결혼해 사는 동안 지금껏, 맞벌이를 하며 오늘은 어제보다 낫겠지, 내일은 오늘 보다 낫겠지... 그렇게 속아온 인생도 알고 보면, 속는 게 인생이라는 걸 알 만큼 인생을 살아 온 것 아니겠는가? 인생이란 곡식엔 알곡만이 들어있지는 않다는 것을 알게 되기도 하는 것 아닌가 말이다.

남녀가 다른 집안에서 태어나 자라나서 만났으니 서로 생각이 같기야 할까. 처음엔 뜨겁게 달아올라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애를 낳아 키우지만, 곧 생활이란 무거운 짐이 짓누르는 걸 알게 되며, 맞벌이 하는 처지가 되어 있지 않은가 말이다. 혼자 벌어서는 집 한칸도 퇴직 전에 마련하기 어렵기에 둘이 마음을 합쳐 나가서 뛰는 것 아니겠는가 말이다.

가끔은 아내에게, ‘나같이 못난 사람 만나 고생이지?’하며 묻곤 하는데, 그럴 때 마다 코끝이 찡하는 건 왜 그럴까? 다들 쉽게 만나 쉽게 헤어지는 게(그들 간에 말 못할 사연이 있겠지만) 유행처럼 번지는 사회라지만, 적어도 우리 가정만은 바로 지키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건. 생각건대, 그런 믿음만 확고하면 가정 하나는 제대로 못 지켜 낼까 싶다.

주말 청소를 하다 켜켜이 먼지 묻은 서고위에서 끄집어낸 결혼식 비디오를 보는 재미는 이런 것이리라. 이제 갓 신혼을 시작하는 젊은 부부의 모습을 가슴 싸하게 바라보는 심정 같은 것 말이다. 오랜 된 주례사는 여전히 부부가 만나 살아가야 하는 진솔한 삶의 철학을 가르쳐주는 데 나는 얼마나 그 말처럼 배우자에게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내가 해 내긴 해 낸 것인가? 주례사 속 이야기가 계속 머릿속을 맴돈다.

“서로 뜻이 같아야 뭐가 돼도 된다.”

요즘 사람들은 어떤 주례사를 듣게 될런지 모르지만 내 일천한 경험으로는 이만한 교훈이 어디 있을까 싶다. 인생을 동고동락이란 걸 하며 알게 되는 애틋한 심정 말이다. 더구나 아침이면 자는 애까지 들쳐 엎고 나가서 남에게 맡기고 가는 직장생활이라면. 세상에 좀 더 나은 생활은 어떤 것일까?
ⓒ전경일, <맞벌이 부부로 산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