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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경영/맞벌이 부부로 산다는 것

맞벌이의 결혼 일기

by 전경일 2009. 10. 9.

대학을 마치고 부모로부터 특별히 재산을 물려받지 않은 상태에서 김 인수 씨 내외는 결혼을 했다. 김 씨는 대학 다닐 때에도 아르바이트로 과외를 해서 학비를 마련했고 하숙비를 냈다. 거기다가 조금 남은 돈을 시골에 계신 부모님과 동생들을 생각해 부치기까지 했다. 아직은 중, 고등학교를 다니는 동생들 얼굴이 늘 김 씨 머리에 떠올랐던 것.

“형, 나도 크면 서울 가서 공부할 수 있을까?”

김 대리의 아내는 직장생활을 하다가 고등학교 학력만 갖고는 세상에 내놓는 이력서로 부족해 이를 물고 야간대학을 다녔다. 신입사원 시절 그런 자신의 노력에 회사가 잔업 등을 이유로 제동을 걸지 않아 그나마 꿈을 이룰 수 있었다.

두 사람이 만난 건, 김 대리가 두 번째 직장에 옮기고 났을 때였다. 둘 다 직급으론 대리였을까. 다들 점심시간이 되자 뿔뿔이 흩어진 틈을 타 김 대리는 도시락을 들고 회의실로 들어갔다. 그러자 불현듯 그 안에서 먹던 도시락을 한 손으로 가리며 그를 맞는 여직원이 있었다. 그녀가 바로 지금의 김 대리의 아내였다. 둘은 그렇게 해서 시간이 갈수록 처음의 어색함을 물리치고 점차 가까워 질 수 있었다. 나중엔 서로 반찬을 바꾸어가며 해오고, 나눠 먹는 사이까지 됐다. 회사 내 둘이 사귄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개의치 않았다. 아무렴 어때, 이런 식이었다.

한번은 도시락을 펼치며 영화표를 슬쩍 건넸다. 둘은 그 날 영화를 보고, 도시락을 싸오게 된 사연을 나누며 동변상련을 느꼈다. 김 대리는 시골 동생들 뒷바라지 때문에 점심값이라도 아껴야 하는 게 가장 주요한 이유였고, 아내는 사업에 실패하신 아버지를 대신해 살림을 꾸려가야 했기 때문이라는 거였다. 게다가 둘 다 장남, 장녀였다. 당연히 속 쓰는 게 깊지 않을 수 없었다.

가끔 둘은 회사 근처 포장마차에서 소주를 마시게 되었다. 김 대리는 서울 시내 한복판 도심의 건물 사이로 바치는 달빛에 젖은 그녀의 얼굴을 보고, 평소 못 느끼던 연정을 느꼈다고 한다. 누가 보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골목에서 키스를 했고, 그해 가을 결혼을 했다.

결혼은 했지만, 짐은 줄지 않았다. 이런 저런 눈치 때문에 아내가 다른 회사로 직장을 옮겼는데, 둘이 모으면 나아질 것 같았던 수입은 오히려 더 빠듯했다. 양쪽 다 내미는 손이 너무 많아, 둘이 절면 1+1=3이 될 둘 알았던 수입은 지출만이 -3이 되는 형편이었다. 그렇다고 서로의 사정을 아는데, 모르쇠로 양가에 대할 수도 없는 형편이었다. 처음엔 서로 상대방 편부터 줄이라고 하다가 언쟁이 되고, 마음까지 상하게 됐다. 어떤 때에는 잘못된 결혼이 아닌가 하고 은근히 상대편을 남 보듯 하기도 했다.

둘이 가지고 있던 부담은 줄지 않았지만, 애가 들면서부터 상황은 급격히 달라졌다. 애를 지울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의논 끝에 시댁으로, 친정으로 찾아가서 하소연을 하게 됐다. 양쪽에서 모두 당장 나오는 말이, “그러길레 뭐랬니, 좀 있는 사람하고 결혼하랬잖니?” “며느리가 아니라 힘이 되는 게 아니라, 짐이다, 짐!” “우린 그렇다치고 동생들은 어떡하란 말이냐? 내가 너 대학까지 보냈으면, 동생들은 네가 책임져야지.” “애 낳는 것도 좀 생각해서 결정하지 그랬니, 뭔 애들이..”

그런 얘기에 욱, 하는 심정이 들기도 했지만, 두 사람은 양가에서 조용히 물러났다. 그러고, 동생들을, 친정 부모님을 불러놓고 선전포고를 했다.

“저희도 살아야 하니 이젠 알아서 하세요. 이젠 예전처럼 다달이 얼마 부쳐드리지 못해요. 애도 생기고.”

“못된 것들!“

그런 소리를 들으며 김 대리 내외는 버스에 올랐지만, 두 사람은 아내 배에 손을 가져가며, 가족들에게 자기네 사정을 말하고, 끊어 내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석 달이 못가 정작 들어오는 돈은 별반 차이가 없었다. 둘 다 약속을 지킬 수 없었던 것. 시골에서 이불을 뒤쓰고 누워 있다는 시부모며, 친정 부모의 성화며... 두 사람은 인생 계획을 오년은 뒤로 늦출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 다음에야 두 사람은 전세금을 간신히 마련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이제 시작이야. 이젠 애 생각해 더 열심히 벌어보자구!”

남편과 동네 슈퍼에서 사온 맥주를 마시며, 그런 말을 했던 게 한 달 전이었던가? 어느 날, 김 대리의 아내는 술이 불콰해진 남편이 집에 들어오며 문짝을 걷어차는 것을 보고는 감짝 놀랐다고 한다. 문을 열어주자, 온갖 잠꼬대를 하며, 마루에 쓰러져 잠이 드는 것이었다. 뭔가 미심쩍어, 다음날 회사에 아는 직원에게 전화해 물어 보니, 남편이 명예퇴직 대상자가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날 밤, 평소보다 조금 일찍 퇴근한 김 대리의 아내는 술상을 차린 채, 남편을 맞이했다.

눈이 휘둥그래해진 남편을 주저앉히고, 그녀는 술잔을 따랐다. 그러며, 처음으로 포장마차에서 키스를 하던 때를 끄집어냈다. 남편은 처음엔 어색했지만, 차츰 술기운을 빌어 속내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그래요, 다시 시작이예요. 번 게 없다구요? 우리 철이 있잖아요.”

부부는 그날 끌어안고 하염없이 울었다고 한다. 남편이 새 일을 찾은 건, 몇 달 지나서 였다. 그 때까지 취직에 관해선 아무런 것도 물어보지 않고 지켜봐 주던 아내가 너무 고마웠다고 김 대리는 말했다.

“세상은 다 살게 되어 있습니다. 믿어 밀어주는 사람이 한 사람만 있어도 말이죠.”

김 대리가 하는 말이다.
ⓒ전경일, <맞벌이 부부로 산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