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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경영/맞벌이 부부로 산다는 것

[맞벌이 부부로 산다는 것] 고르고 골라, 벼르고 별러

 
가끔 거사를 치른다. 아내에게 이걸 사도 돼냐고 묻고 또 물으며 물건을 집었다 놓곤 한다. 백화점에 가서는 가장 저렴한 세일 코너를 찾게 되고, 할인 마트 가서는 우유를 골라도 팩이 하나 더 붙어 있는 1리터짜리 우유를 사게 된다. 30~70% 세일가로 나온 셔츠들은 이월 상품들이고, 팩을 하나 더 주는 우유는 유통기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나마 이런 구매는 일상적 소비라 크게 망설일 것이 없지만, 어쩌다 회사 근처 대형 매장에서 할인가로 두들겨 파는 양복이나, 한 여름에 파는 겨울철 외투 세일 같은 것들은 할인가를 적용해도 목돈이 들어가느니 만큼 아내에게 전화해 물어보게 된다. 한 번에 몇 십 만원 씩 쓰이는 소비 아닌가. 용돈으로 해결될 지출이 아니다. 심리적으로는 소모품이 아닌, 자산을 구입하는 셈이다. 가끔 이런 대형 소비를 할라치면, 하루가 다르게 자라며 작아진 애들 옷이 생각나고, 옷 한 벌 못해드린 부모님 생각에 그나마 죄책감마저 든다. 그래서 집었던 물건을 쉽게 계산대로 가져가지 못한다. 부모님 생각을 하게 되면, 내 자신이 한참 못나게 생각된다. 사는 게 어째서 이런지!  


“어머니 웃도리 칫수가 얼마나 되죠?”

“왠일이냐? 난 옷이 많으니 애들 옷이나 사줘라. 얼마 전 보니까, 승희 바지가 작아 보이더구나.”

휴대폰 너머 울리는 목소리는 오히려 가슴을 뭉클하게 만든다. 불효자식! 스스로를 자책해 보기만, 한 달 벌이가 정해져 있으니, 둘 중 하나를 선택하지 않을 수 없다. 옷을 하나 사는데도 마음은 천근만근이나 된다. 뉴스를 보면 슬리퍼 신고 나와 버젖이 몇 백만원짜리 하는 명품을 사곤 하는 부자들이 나오던데, 우린 처음부터 간이 작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매장을 돌고 돌아, 3만원 하는 애들 옷 두벌하고, 어머니 속옷 하나, 내 와이셔츠 하나를 산다. 지금 장만해 두면 좋을 겨울 외투는 나중으로 미룬다. 생각해 보니 장농에 아직 쓸만한 외투들이 두어 벌은 있다. 

집에 돌아와 낮에 있었던 얘기를 아내에게 들려준다.

“행사를 딱 3일간만 한데.”
“그래, 겨울 외투가 어떤데 그래요?”
“물건이야 좋지! 완전히 본사서 나온 정품이더라구.”


그러자 아내가 옆구리를 쿡 찌른다.

“어디 좀 보고요. 당신 겨울 외투가 좀 그렇던데.”
장농을 뒤적이던 아내가 다가와, 한 마디 한다.

“사세요. 정 갖고 싶으면...”

그러며 일 년에 한 두 벌은 평생 두고두고 입어도 싫증나지 않는 옷을 사자던 우리 계획을 상기시킨다. 몇 해 전, 나이가 들고 살이 불면서 쉽게쉽게 사두었던 옷들이 하나같이 몇 해를 넘기지 못하고 재활용품 박스에 버려지자, 우리 부부가 내린 합리적인 결론이었다. 나이 들수록 돈이 더 들어가는 법이다. T셔츠 하나에 청바지 하나만 입어도 번쩍번쩍 빛나던 젊은 시절과는 완전히 딴판이다.

한때, 여유가 있을  때 사둔 고급양복의 쓰임새를 아내도 알고 있다. 다른 양복에 비교해 시중가의 두 배를 주고 산 것인데도 십년을 입어도 그대로다. 그래서 명품인가? 돈이 가치를 결정하는 게 분명한 것 같다. 하지만, 무작정 소비를 늘릴 수만은 없다. 대형 소비는 일 년에 딱 한번이나, 두 번만 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목돈이 펑펑 들어가는 일은 살며 계속 연중행사처럼 다가온다. 여름휴가라든가, 경조사라든가, 부모님 치아라든지, 애들 수술비라든지, 자동차 수리비라든지 등등.

다음날, 눈에 찍어두었던 든든한 겨울 외투를 한 벌 장만하며, 나는 별의별 생각을 다 해 보았다. 나만을 위한 소비를 하며 당분간 부모님이나, 애들 얼굴은 잊기로 했다. 어쩌겠는가? 나도 좀 차리고 다녀야 하는데. 할인 판매를 하는 행사 기간은 사실 열흘 남짓이었다. 아내는 내가 오늘이 행사 마지막 날이라고 했던 걸 믿어준 것일까? 아니면, 애처럼 보채는 것 같아 측은해 보여 오케이 했던 것일까? 아무튼 맞벌이들은 아빠들도 생각이 많이 든다. 불현듯 - 눈에 들어오는 어머니 얼굴, 아내의 겨울 외투, 아이들 신발...

ⓒ전경일, <맞벌이 부부로 산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