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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경영/맞벌이 부부로 산다는 것

돈을 잘못 말하다

by 전경일 2010. 3. 23.

“돈 때문에 싸웠어, 돈 못 벌어 온다고 징징거리기에... 나 무능하지?”

친구는 술잔을 털어 넣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뭐, 무능? 니가 살기는 살아봤냐? 천당과 지옥까지 갔다 와 보기라도 하고 그렇게 말하느냐고? 그 정도도 안 겪어 보고 무슨 소리야?”

친구 푸념에 나는 대뜸 핀잔부터 주었다. 살기가 편해져서 그런지, 요즘 사람들은 쉽게 포기해 버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삶을 쉽게 내팽개쳐 버리는 듯한 느낌이었다. 하는 일에 있어서도 결과가 금방 나오기만을 바라고, 돈이 쉽게 벌리기만을 바란다. 그러면서도 벌기 전에 쓸 곳부터 찾는다. 이런 게 요즘 세태다. 하지만 돈이 생각처럼 그렇게 쉽게 벌리는가? 많은 사람들이 같은 목적으로 같은 재화인 돈을 추구하는 이상, 경쟁은 줄지 않는다. 회사에서 직원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돈과 결부지어 부부간에 싸웠다는 얘기를 종종 듣게 된다. 분수에 맞지 않는 소비를 했건, 돈을 다스리는 게 아닌 돈에 의해 좌지우지 되는 생활을 했건, 아무튼 돈 때문에 다투고 그것 때문에 이혼에까지 이른다.

“나 혼자 벌어서는 대책이 없는데 나한테만 의지하려 하니 화가 나서 한 마디 해주었지. 도대체 당신이 사회생활에 대해 아는 게 뭐냐? 남편이 어떻게 벌어오는지 알아? 그랬더니, 이를 악물며 행주는 드는데 눈물을 뚝 떨어뜨리더라구. 그리곤 한 달 이상 말 한마디 안했지.”

“좀 심했던 거 아냐?”

“글쎄 속으론 말을 좀 심하게 했나 싶었는데, 이미 주워 담을 수 없게 되더군. 시간이 가니까 더.”

친구는 그러더니 식당 한 켠에 켜져 있는 TV를 잠시 응시했다. TV에서는 청소년 보호 대책인가 뭔가 하는 내용의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애 때문에 안되겠더라구. 이러다가 이혼이라도 하게 되면 애는 어떻게 되나 하는 생각이 퍼뜩 들더군. 내 쪽에서 먼저 말을 걸었지. 대꾸조차 안 해. 그리고 며칠이 지났을 땐가 아무래도 은희 엄마 하는 꼴이 수상해 회사 가는 척 하며 집 앞에서 기다려봤지. 마을버스를 타고 어디론가 가더라구. 아파트 단지에 들어서는가 싶더니, 불쑥 어느 집에 들어가지 뭐야. 수위 아저씨한테 방근 전에 들어 간 아줌마가 누군지 아냐고 물었지. 그랬더니 1200호 파출부라는 거야.”

잠시 말을 멈춘 친구는 소주를 들이키더니 말을 마무리했다.

“그날 밤, 아내한테 내가 정말 미안했다고 무릎 꾾고 사과했어. 내가 무능해서 그렇다며...”

그런 친구의 표정엔 납덩이같은 그늘이 가득했다.

“당분간 자기가 해 볼 때까지 해보겠다고 한 게 벌써 일 년 째야. 지독한 여자야, 은희 엄마. 내가 한 말이 가슴에 못을 박았나 봐. 돈보다 더 무서운 비수는 말이라는 걸 깨달았지만, 어쩌겠어. 은희 엄만 그때 내 얘길 뼛속에다가 새겨 넣은 모양이야. 그 후로 한번도 아내에게 사회생활에 대해, 남편이 고생 하네 어쩌구 하는 얘기 전혀 하지 못했지. 잠자리엔 언감생심 얼씬거리지도 못하고.”

친구는 그러며 천정을 쳐다보았다. 그의 목울대가 유난히 울렁거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술자리가 끝나고 골목길을 나오며 나는 친구에게 농담 삼아 이런 말을 건네주었다.

“오늘 부텀, 아내를 보면 100m 앞에서부터 낮은 포복으로 기어. 대한민국 남편들, 할 말이 뭐 그리 많냐? 쥐뿔도 해 놓은 것도 없고, 세상 요 모양으로 만든 것도 자기들인 주제에. 가정도 힘들고, 세상도 힘들게 하는 일만 열심히 했지.”

친구와 헤어져서 택시를 잡아타고 집으로 오는데, 카세트에서 어디선가 자주 듣던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사는 건 이런 것일까?

님께서 가신 그 길은 영광의 길이었기에....

‘제길, 영광은 무슨 영광, 초라한 남자가 가는 골목길이지.“

내 그런 소리가 택시 기사에게 들였는지 그가 피식 웃으며 일장 연설을 하고 있었다. 그가 뭐라 하거나 나는 그동안에도 친구네 생각과 나와 집 사람이 함께 버는 수입과 애들에 대해 머릿속으론 바쁘게 이리저리 굴리고 있었다.
ⓒ전경일, <맞벌이 부부로 산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