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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경영/광개토태왕: 대륙을 경영하다

광개토태왕, 대륙을 경영하다

by 전경일 2010. 3. 24.

2004년 여름, 나는 만주로 갔다.

옥수수 밭이 끝없이 펼쳐지는 대지를 쏘아보는 내게 형언할 수 없는 감회의 회오리가 몰아쳤다. 대륙은 드넓었고, 그곳엔 외지인들이 살고 있었다.

나의 조국 고구려는 나와는 무관한 듯, 그렇게 버려진 땅이 되어 천년 넘게 짓밟혀 있었다. 고구려는 내게 숫한 세월의 더깨에 가려진듯, 지워진듯, 애써 희미한 모습으로 다가왔다가는 어느 새인가 웅장한 위용을 드러내 주곤 했다. 영원의 침묵으로, 침묵의 웅변으로 성큼 다가섰다. 그대는 지금 고토를 밟고 있노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존재감으로, 잊혀 지지 말아야 한다는 역사의 절박감으로 내게 몰아쳤다. 나는 발걸음을 멈춘 채, 그 찬란했던 역사의 일편(一片)이라도 붙잡고자 애썼다.

고구려는 어떻게 이 광활한 대륙을 다스릴 수 있었을까?

고구려인들은 어떻게 이 위대하고 성스러운 땅을 얻었으며, 잃게 된 것일까?

어떻게 해야 우리 역사를 되찾을 수 있을 것인가?

영원한 조국, 요동은 나를 줄기차게 흔들어 깨우며 밤낮으로 다물(多勿)의 나라, 고구려로 인도했다. 우리 역사상 가장 광대한 영토를 이루고 지배했던 나라, 웅혼한 대제국, 고구려. 창업 이래 7백년을 살아왔고, 대륙의 지배자로 여전히 그 맥박은 느껴지는데, 우리에게는 어느 새인가 고토로 밖에 인식되지 않은 나라, 기억의 저 편에만 머무는 나라... 그 역사의 중심에는 천년이 무상하게 아직도 심장이 뛰는 우리들의 자존심, 우리들의 자부심, 광개토태왕이 있었다.

‘천하 경영’을 앞세운 광대한 제국 고구려는 내게 그러한 찬란한 자긍심으로 다가왔다. 불현듯 역사의 중심에서 변방으로 밀린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했다. 변방에서 중심으로 뛰어드는 게 무엇인지를, 다시금 일깨워 주고 있었다. 우리 민족이 역사의 한복판으로 진입해 들어가야 할 운명에 놓쳐 있음을 예언해 주고 있었다.

그곳에 사람들이 보였다. 나라가 망하자 한인(漢人)들에게 능욕을 당하고, 끌려가며, 처절히 몸부림치는 우리 백성들이 보였다. 피 칠갑된 채 당군(唐軍)에게 살해되는 고구려 유민들이 보였다. 피 토하는 비분(悲憤)이 일었다. 피가 역류했다.

“고구려 놈들의 씨는 싸그리 없애 버려라!”

강역(疆域)을 범한 당군의 야유와 조롱과 살육 앞에서, 나는 천년전의 피눈물을 똑같이 흘리고 있었다. 역사를 어떻게 바로 세울 것인가? 어떻게 하면 고구려의 영광을 재현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런 숙제는 오랜 민족의 염원과 어우러지며 내게 고구려사에 대한 깊은 천착을 가져왔다. 태왕에 대한 관심에 집중도를 보이며, 역사에 주목케 했다.

이는 내가 
역사를 통한 경영학이란 이름으로 내딛는 또 다른 발걸음이었다. 나는 이 발걸음이 언제 멈출지 모른다. 1천 6백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우리 역사상 최고의 지도자인 광개토태왕과 조우하는 것은 실로 가슴 벅찬 경험이었다. 그의 놀라운 개척 정신과 탁월한 CEO의 역량을 자연스럽게 요즘 경영용어로 벤치마킹하게 되었다. 정복왕으로서 외적을 무찌르고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확보한 사실을 뛰어 넘어 그는 진정으로 백성을 평안하게 했다는 면에서 가장 탁월한 경영자였다.. 그 어느 국가경영자보다도 위대하다. 위대성의 경영...

태왕은 살아생전 국ㆍ내외적으로 수많은 선정의 기록을 남겨놓았다. 그의 활약상은 주로 외정을 통해 민족의 기개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더불어 우리 민족의 긍지를 사해에 떨치게 한 것이었다. 그는 단 한번도 국가와 민족을 잊어 본 적이 없다. 그만큼 민족문제에 대해 철저했다. 나아가 세계 사해동포를 아우른 글로벌 경영을 실천했다. 민족 웅비가 전성기를 맞이할 무렵, 고구려가 크게 국가적 위명(威名)을 떨친 것은 태왕 개인만의 신비성이나, 능력만이 아니었다. 거기엔 태왕의 리더십을 따르는 수많은 백성들과 세계주의에 동참한 이족(異族)들이 동참했다. 혼연일체가 되어 대제국을 건설하고, 불굴의 투지와 용감성을 불태우며 제국을 키워나갔다. 태왕의 경영 비전인 ‘광개토경영’에 참여한 수많은 사람들은 태왕의 리더십 아래 역사상 가장 훌륭한 국가를 건설했던 것이다.

오늘날, 태왕에 대한 평가는 단순히 최대의 영토와 최고의 국력을 가졌던 시대에 대한 흠모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이는 우리의 경영목표이자, 지침이 되고 있다. 정치적으로 국토의 협소함과 분단이라는 장벽을 뛰어넘어야 한다. 기업은 천하경영을 실천하는 글로벌 기업들의 베이스캠프가 되어야 한다. 하여 우리 민족의 자긍심을 지속적으로 높여주어야 한다. 태왕의 경영은 그 같은 의미에서 현대경영에 가장 상징적 존재로 다가온다.

그 시대, 고구려가 지녔던 동북아 이니셔티브를 통해 개방과 아우름이라는 세계사적 큰 흐름을 우리 손으로 만들어 내야 한다. 그 원천을 올곧게 복원해서 우리의 잠재적 역량을 추슬러 내야 한다. 그것이 오늘을 사는 우리들의 책무다.

우리는 작은데 골몰하고, 그것에 빠져 있을 시간이 없다. 밖으로 뻗어나가 우리의 국력과 기업의 눈부신 활약상을 드러내야 한다. 오늘날의 갑갑한 현실국면을 떨쳐버리고 뜻 높은 경영을 잇기 위한 노력을 부단히 해야 한다. ‘광개토(廣開土)’란 이름이 지닌 진정한 의미와 국가경영관을 살펴보고 이를 오늘날의 기업 경영 이념으로 되새김질 해 내야 한다. 나라와 국민 모두가 평안과 부국을 이루어 내야 한다.

그간 식민 사관에 찌들어 우리 안에 갇혀 있기만 하던 ‘광개토 정신’을 흔들어 깨워 달리는 말에 피땀이 흐르도록 채찍을 가해야 한다. 천손(天孫)으로서 대왕을 우리의 영혼에, 기상에 다시 불어 넣어야 한다. 태왕이
그토록 몰두한 정복사업과 국가경영의 최종 목적지는 어디였나? 1천6백년의 시차를 두고 오늘 우리는 그 역사관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21세기의 세계 경제전쟁 시대, 광개토 경영은 지금 우리에게 적잖은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고구려, 그것은 과거 역사에 불과한가? 천하경영은 끝났는가? 결코 아니다. 이제는 광개토 태왕의 무한경영과 천하경영의 완성을 우리 민족이 다시 이뤄내야 한다. 경영에 ‘지경(地境)’이 없어야 한다. 지금 우리는 어떤 떨림으로, 어떤 벅차오름으로 그를 맞이하고 있는가?
고토로 달려가 당당히 고구려 깃발을 꽂아야 한다. 바로 그 지점에서부터 끝나지 않는 미래형 역사와 면면히 핏속에 흐르는 경영정신과 만나야 한다. 광개토태왕은 이처럼 오늘날 우리와 함께 호흡하고 있다. 그는 영원히 현재형이다. 천하를 경영하고자 하는가? 그렇다면 지금 저 넓은 광개토 세계로 오라. 그곳에 가장 광대한 21세기 새로운 경영의 지평이 펼쳐져 있을 지니...

ⓒ전경일, <광개토태왕, 대륙을 경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