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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 강의/세종 | 창조의 CEO

세종의 선택: 천재경영론이냐, CEO육성론이냐?(2003.7.4 작성글)

by 전경일 2009. 2. 3.

최근 한국 재계의 두 거물 CEO가 각기 다른 인재론을 펴서 즐거운 논쟁이 되고 있다. 설령 양자의 의견이 이견(異見)이라 할지라도 인재를 얘기함에 있어 즐거움이 따르는 것은 인재를 중시한 우리의 역사적 배경과 궤를 같이 하고 있다 하겠다.

 

우선 두 대표 CEO의 인재관의 핵심을 살펴보면,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21세기는 천재가 기업을 먹여 살린다”는 생각에 바탕을 둔 ‘천재 경영론`으로 요약되고,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특출한 핵심 인재 양성보다는 훌륭한 리더를 육성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CEO 육성론`으로 요약된다. 어느 주장에 공감할지 그건 각자의 몫.

 

하지만 인재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이런 논의는 사람이 재산인 우리 실정에 비추어 볼 때 매우 중요한 사회적 담론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이런 논의는 결국 사람을 키우고 제대로 써서 나라와 사회와 기업의 재부를 육성하는 일과 전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역사 속의 경영으로 돌아가 조선 초에 세종은 어떤 인재관을 가지고 있었을까?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세종은 양자의 결합 형태, 또는 양자간 역할 분담의 입장을 취했다. 스스로 창조적 인재이며, 한번 읽은 책을 결코 잊어버리지 않은 천재였고, 경제, 경영, 과학, 기술, 문화 등 국가 경영상 모든 면에서 탁월한 CEO였던 세종은 스스로 통일적 CEO였다. 더구나 나 홀로 똑똑이 스타일이 아니라, 국가 경영상 인재들과 균형과 조화의 묘를 최대한 살려 양자가 결합된 CEO 이미지를 굳건히 하였다.

 

반면 이를 밑받침하는 천재-리더형 인물들에 대해서는 역할 분담을 통해 각자의 적성과 주특기를 세심히 배려한 측면이 있다.

대표적인 예로 국가 경영상 벌어지는 각종 프로젝트들에 대해 조선 초 우리나라 최대의 천재 과학자인 장영실과 음악의 거장인 박연, 그리고 천재 수학자 이순지 등에 대해서는 프로젝트 자체의 기술적, 예술적 목표에 기여토록 했고, 리더형 인물인 정인지, 이천, 김담, 정초, 변계량 등을 통해서는 프로젝트 리더의 역할을 톡톡히 해 내도록 지시했다. 지금으로 애기하자면 양쪽 다 핵심 인재들이었는데 그 소질에 비추어 천재-리더형으로 구분해 일을 맡겼던 것이다.

 

세종의 이러한 인재 활용법은 천재와 리더를 각 사안의 성격에 따라 통합, 구분, 세분화 및 전략적 배치를 통해 용인(用人)의 극치를 더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지금 우리가 얻는 교훈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그 같은 인재를 알아주고 기꺼이 끌어안은 CEO의 도량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CEO 앞에서 인재들은 사명감으로 불 탔고, 그들에게서 쏟아져 나오는 지식으로 세종은 두뇌 강국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15세기의 조선은 그 당시 세계 최고 수준의 과학 기술을 리드해 나간 자랑스런 우리나라였다. 그 무렵 인재들이 만든 온갖 과학기술의 정수, 예컨대 갈릴레이의 망원경이 나오기 전까지 가장 정밀한 관측기구였던 간의, 독창적인 자동 시계였던 옥루, 우리 고유의 모델로 지구가 둥글다는 원리를 과학적으로 입증해 낸 앙부일구, 놀라울 정도로 지금의 사진기 원리를 그대로 보여주는 규표 등등 엄청난 과학적 성과들은 바로 천재와 리더가 융합된 멀티형 인재들에 의해 이루어 졌던 것이다.

 

이런 역사를 지금에 비추어 볼 때 자못 흥미를 더하는 것은, 인재를 놓고 벌어지는 논의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다는 것. 바로 그 점에서 우리는 재계의 대표적인 두 CEO의 고민뿐만 아니라, 나아가 국가 경영에 뛰어든 인사들의 고민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음을 짐작할 수 있다.

다만, 흐린 눈을 갖지 않도록 자신의 눈을 씻고, 주변은 스스로 자중함이 필요하다 할 것이다. 세종 시대가 그러했듯이 말이다. ⓒ전경일, <창조의 CEO 세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