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업관리/기업위기관리 / 레드 플래그(Red Flag)

‘예상과 달리 허를 찌르는’ 빈틈의 법칙

자연 자체로는 재해가 없다. 인간이 대응에 실패할 때 재해가 되는 것이다. 고베지진은 지진이 발생할 거라고 예상되지 않는 지역에서 발생한 것으로 관심 밖의 영역에서 래드 플래그가 발생하며 허를 찌른 것이다. 고베 지진은 그 자체로 연구 대상이지만, 초기대응이나, 이후의 조치에 있어 많은 점을 시사하고 있다. 경영상에 나타나는 문제점을 사후에라도 제대로 대응하는 방식을 엿 볼 수 있다. 요는 문제가 아니라, 그에 대한 대응력일 것이다.

1995년 1월 17일 오전 5시 46분. 일본 야와지시마(西宮) 북부에서는 지축을 뒤흔드는 지진이 12초간 이어졌다. 도시 바로 밑 지하 14km에서 리히터 7.3 규모의 강진이 발생한 것이다. 이 같은 지진은 우리에게 관동대지진으로 익히 알려진 1943년의 진도 7.2 지진과 1948년의 진도 7.1지진이 있은 다음 일본 열도에서는 거의 처음 있은 강력한 것이었다. 더구나 도시 바로 밑 얕은 지층에서 발생한 지진으로는 매우 드문 일이었다. 이 지진은 고베(神戶)시, 인시야시, 니시노미야시 등 여러 도시를 강타하며 엄청난 피해 입혔고, 일본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도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지진으로 인한 인명피해는 사망이 5,502명, 부상 41,521명, 그리고 이재민만 29만 명에 달했다. 주택피해도 총 39만719동에서 발생해 전파가 100,209동, 반파가 107,074동, 일부파손이 183,436동에 달했다. 공공건물 피해도 549동, 기타 건물 피해는 3,120동, 도로피해는 9,403개소에서 발생했고, 약 100만 세대가 정전에 곤란을 겪었다. 식수도 약 120만 세대에 공급 중단되었다. 통신은 25퍼센트 가량 차단되었고, 가스공급도 80퍼센트나 단절되었다. 한마디로 도시의 기능이 제대로 돌아가기에 불가능한 상태가 벌어진 것이다. 일본 국토청 조사에 따르면, 재산 피해만도 약 13조 엔을 넘어설 정도였다.

고베대지진은 1923년 9월 1일 발생해 14만 명의 사망자를 낸 관동대지진과 비교해 볼 때, 사망자 수는 적었으나, 전후 일본에서 일어난 자연재난으로는 최대 규모였다. 자연활동이 인간 거주지에 미칠 때 발생할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전개된 셈이다.

하지만 고베 지진의 피해를 단순히 자연 탓만으로는 돌릴 수는 없다. 지진의 발생은 그 자체가 인간의 능력으로는 제어할 수도, 정확하게 예측할 수도 없는 불가항력적인 자연현상이지만, 피해는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자연현상이 인간에게 악영향을 미칠 때 우리는 단순히 인간의 관점에서 재난이라고 부른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자연 활동에 대처하는 사람들의 활동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고베 지진은 1년 전 미국 캘리포니아 노스릿지에서 지진이 일어났을 때, 미국이 보여준 성공적인 재난관리와는 사뭇 다른 것이었다. 대응방식에 초점을 둬 보면, 우선 지진 다발국인 일본에서 한신 지역은 지진 안전지대로 분류되어 있었다. 따라서 지진에 대한 경각심은 상대적으로 낮을 수밖에 없었다. 즉, 허를 찔린 셈이었다. 이 지역은 지진보다는 태풍과 강수에 중점을 둔 방재시스템을 구축해 운영해 오고 있었다. 그러나 예상을 뒤엎은 지진발생은 풍수해에 맞는 방재방법으로는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했다.

지진 규모가 상상을 초월할 만큼 컸다는데 무엇보다도 일차적인 원인이 있지만, 인구ㆍ건물ㆍ산업시설 등이 고도로 밀집해 있는 도시부에서 발생했기에 재해가 엄청나게 커졌다. 어떤 점이 그랬을까?

고베시의 교량은 1989년 이후부터 개정된 시방서에 의한 내진설계 기준에 따라 건립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그 이전의 교량은 어땠을까? 역사적으로도 지진활동은 없었고, 있다 해도 경미해서 크게 관심을 가지지 못했다. 또한 고베시의 건물은 목조건물이 많았으며 건물간격도 매우 좁았다. 이처럼 뒤늦은 도시계획과 무분별한 건물들은 지진이나 화재에 아무래도 취약할 수밖에 없었다.

일본의 허술한 재난관리 시스템도 지진의 피해를 가중시킨 원인이었다. 이때까지 일본의 재난관리 시스템은 제도적인 면과 법적인 면에서 많은 문제점을 지니고 있었다. 우선, 당시 일본의 행정체제는 긴급사태 발생시 신속한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는 구조가 아니었다. 재해법상 주관부서는 국토청 방재국으로 중앙방재회의의 실질적인 사무국 기능을 수행하고 있었다. 하지만 방재국의 권한은 중앙성청 간의 조정에 국한되어 있었다. 또한 각 기관 간의 관할권 의식이 팽배했다. 이를테면, 재해대책 중 의료후생 관계는 후생성, 도로 관계는 건설성, 수송통제는 운수성, 식량 관계는 농림수산성과 식량청 등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따라서 긴급사태 발생시 긴밀하게 대응할 수 없었다. 그러다보니 관계기관과의 조정도 복잡했고, 심지어는 조정은 불가능하기까지 했다.

또한 1961년 제정된 일본의 방재법인 「재해대책기본법」이 지닌 허점도 피해를 증폭시킨 원인이었다. 이 법은 재해대책의 일차적인 책임을 지방자치제에 두고 있다. 자치제 책임 하에 재해대책에 임하게 되어 능력의 범위를 벗어날 때에만 지원을 요청하도록 되어 있었다. 이런 이유로 중앙정부가 긴급재해대책본부를 설치한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비상재해대책본부장을 맡고 있는 국토청도 긴급사태에 대응할만한 실행조직을 갖추고 있지 않았다.

그 외에도 문제점은 많았다. 그 예로 대규모 재해 발생시 군(軍)의 활용문제를 들을 수 있다. 재해 발생시 자위대는 인명구조 활동의 중추가 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재난발생시 2차적인 존재에 불과했다. 그런 까닭에 일본에서는 대규모 지진이 발생하더라도 자위대의 출동은 요청이 있어야만 움직일 수 있었다. 군이 당연히 늦게 출동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지진 발생 후 효고현 지사가 자위대 파견을 정식 요청한 것은 4시간이 지난 시점이었다. 게다가 효고현 지사의 파견요청이 있기 전, 자위대의 최고지위에 있는 니시모토 통합막료회의 의장은 고베지진을 대규모 재해라고 하면서도 ‘통사의 재해파견절차’를 무리하게 바꿔가면서까지 대처하려고 하지 않았다. 당시 「자위대법」은 긴급을 요하는 경우에는 독자적인 판단 하에 출동할 수는 있게 되어 있었지만, 자위대는 민간에의 출입과 필요에 의한 가옥파괴 등 경찰이 가지고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따라서 현 지사의 파견요청을 받지 않을 경우에는 아무래도 활동에 많은 제약이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극단적인 요청주의와 환경 적응력이 문제였던 것이다. 그러다보니 당연히 지원 태세에 있어 소홀했다.

이러한 인위적인 재난방재시스템의 한계와 더불어 환태평양 지대에 위치한 지진다발국인 일본이 비교적 지진 안전지대로 분류된 지역에 대해서는 평소에 관심을 두지 않은 점도 작용했다. 따라서 위험 요인에 대한 대비책이 미국 노스릿지의 대응에 따라갈 수는 없었다.

물론 효고현이 평상시 지진대비 방재훈련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방재 훈련시 지진 진도를 6으로 한정한 것은 문제가 있었다. 더구나 라이프 라인이 정상적이라는 가정 하에 형식적인 훈련을 했다. 그러다보니 지진이 발생하자 지방자치단체의 책임자와 공무원들조차도 정보전달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교통장애 및 사무실 파괴로 대책을 수습할 수도 없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고베시는 소방차가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이러한 것은 자연재해가 인재로 인해 더욱 커져가는 예를 잘 보여준다.

캘리포니아 노스릿지의 대규모지진은 진도 6.7 규모였지만, 사망자가 61명, 부상자가 1만여 명, 피난소 수용자가 약 2만여명에 그쳤다. 여러모로 1995년 일본의 대지진과 비교해 볼 때 경미한 피해였다. 노스릿지 지진의 경우에는 미연방재난관리청(FEMA; Federal Emergency Management Agency)를 중심으로 해서 효율적인 방재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이는 과거 실패의 경험을 살려 개선해 낸 결과였다.

미국은 1993년에 발생한 LA폭동과 1992년 허리케인 앤드류의 재해시 FEMA의 실패를 거울삼아 각종 개선책을 강구했다. 그런 까닭에 FEMA를 주축으로 하는 복구부흥계획안이 1994년 1월 13일에 이미 완성되어 있었다. 뿐만 아니라 FEMA는 여러 형태의 국가적 위기관리를 위해 설치된 기관으로 최고결정권자에게 권한이 집중되어 있었다. 따라서 빠른 의사결정과 대응책을 마련할 수 있었다.

반면, 고베시의 경우에는 어땠을까? 예상 밖의 지역에서 지진이 나자 그간 간과된 여러 문제점이 동시에 중첩되어 나타났다. 잠재된 징후들이 지진발생을 통해 표면위로 급부상한 것이다. 예를 들어, 사전 위기상황에 대비한 각 조직의 대응 매뉴얼화와 역할분담은 미흡하기만 했다. 미국의 경우, 평상시에도 각 조직의 대응과 역할 분담 및 정보 전달체제가 잘 갖추어져 있어서 시․군․주․연방의 각 조직과 민간 봉사단체가 독자적인 판단에 따라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매뉴얼화 되어 있다. 반면, 일본의 경우에는 재해 이전에는 매뉴얼조차 제대로 정비되어 있지 않았다. 따라서 중앙정부, 지방공공단체, 자원봉사자들간의 활동을 조정하고 결합시킬 수 없었다.

이와 더불어 조직적인 구원활동 체제의 미비를 꼽을 수 있다. 미국의 경우에는 특수조직이 결성되고 각종 분야의 전문가 팀이 조직되어 신속한 구조 활동을 전개할 수가 있었지만, 일본은 전문적인 팀에 의한 조직적인 구조 활동체계는 갖추어져 있지 못했다. 또한 현장 투입도 지연되었다. 게다가 행정, 민간기업, 자원봉사 활동이 단발적으로 이루어져서 오히려 교통체증만 가중시켰다. 이는 일본이 평상시 조직적인 구원활동 시스템을 잘 갖추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행정편의 위주의 대비훈련과 재난관련 각종 대응 매뉴얼의 공유 부족, 역할 분담의 미비, 그리고 구원활동체제 등에 있어서 개선 및 발전을 꾀하지 못한 점은 결과적으로 고베 지진의 피해를 가중시킨 것이다.

방재기관에서는 지진은 발생 후 초동 72시간이 가장 중요하다. 이 초동72 시간이 승부수다. 그 만큼 이 시간은 앞으로 재난이 어떻게 관리되고, 통제되느냐 하는데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고베 지진의 경우에는 이 72시간 동안 초동조치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지진 발생 5시간 지나서야 비상재해대책본부가 설치되었고, 심지어는 이때까지만 해도 지진이 전후 최대 규모라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초동대응 실패에는 여러 원인이 있지만, 국토청 방재국이 현지에 조직을 전혀 갖추고 있지 못한 점도 주요 이유였다. 게다가 무라야마 수상은 적극적으로 리더십을 발휘하지 않은 채 초동대응 지연을 방치했다. 수상은 지진이 발생한지 53시간이 지난 다음에야 피해현장을 찾았다. 지진이 발생한 당일에도 일상적인 업무만 수행했다. 다음날 오전에는 재계인과의 조찬을 갖는 등 사태의 심각성을 정확히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수상 스스로도 지진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적극 대응하지 않은 것은 고베지진을 보는데 있어 매우 상징적인 일이라고 여겨진다. 물론 지진발생 당일 오전 중에 수상은 ‘재해대책기본법’에 의거해 비상재해대책본부를 설치하고, 국토청 장관을 본부장으로 임명하는 조치를 취했다. 하지만 국토청은 실질적으로 손발이 없는 기관이었고, 더구나 일본인의 나와바리(관할권) 의식과 다테와리(횡적인 연결이 약한 성청별 종적 행정 시스템) 행정관행으로 인해 초동대응이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

최고의사결정권자에게 보고하는 정보전달 상의 문제도 있었다. 노스릿지 지진의 경우에는 FEMA의 24시간 준비태세로 지진 발생 10분 후에 대통령에게 연락이 취해졌지만, 일본은 1시간 40여 분이 경과한 다음에야 총리대신에게 최초로 연락이 취해졌다. 한마디로 재난 대비 총체적 리더십이 결여되어 있었던 셈이다.

더구나 소방 협력체제가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점은 피해를 더욱 가중시켰다. 화재현장에는 소방대의 활동이 별로 눈에 띄지 않았고, 더욱이 헬리콥터에 의한 공중진화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소방은 필요에 의해 근린자치제와 협정체결을 맺고 있다. 협정이 없는 경우에는 여러 군데의 협조를 거쳐야만 한다. 그런데 문제는 고베시와 오사카는 협정을 맺지 않았다는 점이다. 따라서 오전 10시경 고베시장이 오사카와 도쿄의 소방청에 직접 요청하여 오사카시의 응원부대가 도착했지만, 이는 교통체증으로 인해 3시간 40분이나 지난 다음이었다. 더욱이 수도관이 파괴된 상태라서 바닷물을 퍼 올려 소화용수로 써야 할 만큼 상황은 최악이었다.

지진 후의 구원활동은 어땠을까? 구원체제 또한 평시에 역할 분담이 되어 있지 않아서 훈련과 경험이 부족하다 보니 지체될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행정, 민간기업, 자원봉사, 군인, 경찰 등 각 조직은 조직적으로 구원활동을 할 수 없었다.

여러 문제점이 피해를 가중시켰지만, 긍정적인 점도 발견되었다. 예컨대 지역주민들과 자원봉사자들의 활약과 각급학교와 교육자들의 대처는 대응단계에서 효과를 발휘했다.

고베 지진이 훑고 간 다음 일본은 총체적인 재난관리 시스템을 재정비했다. 복구도 단순 복구차원이 아닌, 도시부흥차원에서 이루어졌다. 일본 정부는 16조 3,000억엔의 예산을 투입해 새롭게 인프라를 재구축했다. 한신고속도로는 철근 강도를 3배로 늘렸고, 교각 기둥도 폭을 2배나 늘렸다. 수도관이 터져서 진화에 애로를 겪은 당시 상황을 반영해 시내 곳곳에 개당 100톤짜리 방화 수조 200개를 지하에 묻었다. 한편, 위기관리실에는 시내 전체를 감시하는 방재 모니터가 운영 중이며, 자위대와 적십자사, 그리고 고베 해상본부 등과 전용 핫라인도 설치되어 있다. 해안지역을 위주로 52곳에 반경 300m까지 들리는 옥외 스피커가 설치되어 있고, 2,000여 개의 가옥별 무선경보기가 작동되고 있다. 고베 시는 지금 일본에서 가장 재난에 강한 도시가 되어 있다. 자연으로부터 호된 교훈을 얻고 난후에야 시스템이 바뀐 것이다. ⓒ카인즈교육그룹, 인문경영연구소, 전경일 소장



 

 

<고베지진의 교훈>

자연재해는 불가피한 것이지만, 대부분 인재로 인해 극대화되는 면이 적지 않다. 고베지진의 경우에는 인재가 자연재해를 가중시킨 면이 있는데, 총제적인 문제점은 커뮤니케이션 오류, 초동 대응 실패, 예측 불허의 자연재해에 대한 단선적 대응, 재난관리 시스템상의 문제, 최고의사결정권자의 리더십 부재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이는 기업 경영에서 나타날 수 있는 모든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주요 문제점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고베시의 재난관리 방식을 보면, 지진 다발국인 까닭에 어느 지역에서도 지진발생 가능성은 상존하지만, 한신 지역에 대해서는 지진대비책이 미흡했다. 다른 방식의 재난에 대해 적합하지 않은 방재시스템을 구축하고 있었던 것은 위기대응방식이 적절하지 못했음을 뜻한다.

-재난관리에 부적합한 법, 제도, 행정체제는 래드 플래그 발동시 신속하고 유기적인 대응책을 펴기에 역부족이었다. 지방자치제에 기반한 재해대응방식은 상호협조의 구조를 이끌어 내기에 아무래도 하참 모자랐다. 게다가 복잡한 의사결정 구조는 관계기관과의 조정 자체가 불가능하기까지 했다.

-원활하고 정확한 커뮤니케이션의 부재는 긴급한 상황에서 정보전달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게 한 요인이다. 결과적으로 유관기관간의 커뮤니케이션 혼선은 피해를 더욱 가중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무라야마 수상의 안이한 대처와 리더십 부재는 국가적 위기에 대응해 신속한 초동대응을 가져오지 못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래드 플래그시 사태의 심각성을 알고, 신속히 대응했더라면 결과는 현격히 달라졌을 것이다.

 

 

래드 플래그 제13법칙: 인재(人災) 확산의 법칙

-우리는 경영에서 최악의 상황을 상정하지 않는 안일한 태도로 위기에 직면해 기업이 무너지는 결과를 종종 목격하곤 한다. 외환위기 전까지 우리 기업들이 환차손에 대해 관심을 가진 예는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다. 위험에 대한 대응은 현실의 수위를 훨씬 뛰어넘는 최악의 상항을 염두에 두고 실행되어야 한다. ‘훈련은 실전처럼 하라’는 조언은 기업들이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비해야 하는 것의 중요성을 일깨운다. 가장 단순한 충고를 무시할 때, 그 충고에 내포된 수많은 경험적 상황은 아무런 교훈이 되지 못하고 묻혀 버리고 만다. 우리의 조직은 어떤 상황대처 방식을 염두에 두고 경영해 나가야 할까?

 

<징후 예측과 위험 발생에 효과적으로 대처하는 방법들 >

-어느 기업에서나 발생하는 문제는 개별적인 것이 아니라, 경영상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문제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래드 플래그 발동시 초동대응이 미비하면, 이에 대한 댓가는 비용 면에서 뿐만 아니라, 기업 이미지에 결정적인 타격을 입힌다. 하지만 많은 기업들이 문제의 전면에 나서서 진화하려 하기보다는 문제를 축소하고, 회피하려는 경향을 보이다 문제를 더 불거지게 한다. 요즘에는 초동 대응이 72시간 내가 아닌, 발생 후 실시간으로 절어져야 한다. 이미 그때를 놓치면 네티즌들은 온갖 억측으로 실시간 보도를 하며 기업에 치명상을 입힌다. 초동대응 자체가 위험발생과 함께 실시간으로 진행되어야 할 이유이다. 한때 CNN 뉴스의 현장성을 두고, “전쟁이 벌어지는 곳에 CNN이 가는 것이 아니라, CNN이 있는 곳에 전쟁이 벌어진다.”고 한 적 있다. CNN을 세계 최고의 뉴스 채널로 만든 이유이다. 마찬가지로 부정적인 뉴스에서도 기업들은 실시간 대응력을 항시 갖추어야 한다.

-평소 기업들은 적극적으로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다양한 요건들을 갖추어야 한다. 사ㆍ내외 커뮤니케이션이라든가, 예방훈련의 중요성 부각, 관련부서간의 긴밀한 협조 같은 것들은 기업경영에서 반드시 실행되어야 할 부분들이다. 자연재해와 마찬가지로 기업 경영상에 돌발변수로 나타나는 위험요인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 자체의 위험성보다는 그것이 몰고 오는 대응방식에 따라 향후 전개방식이 달라지는 것을 알 수 있다. 문제를 푸는 방식은 문제가 잘못 다루어졌을 때의 파급효과를 염두에 두고 찾아져야 한다. 쉽게 꺼질 수 있는 문제를 더욱 키우는 원하지 않는 방식 또한 사람들의 손에 달려있다. 우리의 기업현장은 이런 대응력을 갖추고 있는가? 한번 점검해 보자.

 

<참고자료>

신명철, 『지진재해 수습체계 및 대응능력 연구』, 재난방재연구소 연구보고서, 1998.

김경동, 『일본 사회의 지진관리』, 서울대학교 출판부, 19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