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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관리/위기관리 _레드 플래그(Red Flag)

주판알 튕기며 처음으로 금융을 접하다

by 전경일 2013. 4. 15.

주판알 튕기며 처음으로 금융을 접하다

 

상점을 운영하며 주판알을 튕기던 구인회. 이제 그가 본격적으로 금융상품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면 이는 상전벽해와 같은 변화이다. 하나의 성공을 발판으로 장사꾼에서 경영자로훗날 한국 재계 2위 그룹의 창업자가 되는 구인회는 하루가 다르게 진화해 나갔다. 자고 일어나면 매일 한 뼘 씩 자라는 죽순처럼 구인회 상점도 경영자 구인회도 계속 커나갔다. 기업의 크기는 경영자의 크기에 달려 있다. 스스로의 그릇을 크게 하기 위하여 구인회는 사업의 다방면에 깊은 관심을 가졌고 새로운 도전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그가 새롭게 눈을 뜬 분야는 '금융'이었다.

 

재무는 경영자가 반드시 알아야 할 영역이다. 구인회가 돈을 불리는 금융 방식을 처음으로 알게 된 것은 식산은행 전주지점의 손해진이라는 외무 행원을 만나게 되면서부터이다. 손해진은 구인회 상점에 들러 5천 원짜리 적금 권유차 방문한다. 3년 만기 적금으로 6개월 불입하면 계약금의 반을 대출해 주고, 1년 치를 불입하면 전액을 대출해 준다는 조건이었다. 구인회는 괜찮은 조건이다 싶어 한 구좌를 들게 된다. 이 야심찬 창업자는 이걸 통해 뜻하지 않게 저축과 금융의 묘미를 터득하게 된다.

 

적금가입과 은행 융자의 묘미를 알게 되자 그는 계약금을 6만원, 7만원으로 늘려 나간다. 광목 한 통에 2원, 쌀 한 되에 10전 할 때이니 그가 은행 적금을 장사에 얼마나 크게 활용했는지 알 수 있다.

 

구인회는 예금 상품에만 관심을 가진 게 아니었다. 돈을 불리는 데에는 돈을 불려 주는 은행 사람들을 알아 두어야 한다. 사람이 돈을 불리게 하고 사람에게서 돈을 불리는 정보 를 얻는 것 아닌가! 그런 까닭에 구인회는 융자관계로 은행을 찾을 때나 은행원들의 회식자리에도 꼭 아우 구철회를 데리고 참석했다. 이런 방식으로 금융권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서서히 알아 나갔고 신용을 얻고 자금동원 능력을 확보했다. 이를 통해 기업 성장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금융의 중요성을 체감한다.

 

구인회가 이때 터득한 금융 경험은 장사에서 사업으로 용틀임하며 성장해 가는 사업가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었다. 훗날 그는 수많은 기업을 키워내며 금융을 제대로 활용하고 심지어는 해외 차관까지 빌려오게 된다. 그것은 장사꾼에서 사업가로 기업가로 발전하는데 긴요한 경험의 축을 이뤘고, 크고 작은 성공 경험은 더 큰 성공을 가져온다.

 

이 무렵, 구인회는 돈뿐만 아니라 사람도 얻게 된다. 일기일회(一期一會)라고 하던가? 한 번의 만남이 평생을 결정하는 인연이 될 수 있다는 말이겠다. 인연이란 참으로 묘한 것이다. 훗날 해방이 되고 나서 구인회가 락희화학을 만들어 국산 화장품인 '럭키크림'을 한창 만들 때 원료인 글리세린이 완전 바닥나 제품을 생산하지 못하는 상황에 이른다. 이때 예전 식산은행 진주지점에 근무하고 있던 손해진의 친척 벌 되는 손중행으로부터 글리세린 16드럼을 결정적으로 확보하면서 다시 공장이 가동되는 대전기를 마련하게 된다.

 

만일 락희가 원료 부족으로 고객 요구에 오랫동안 부응하지 못했다면 어렵게 닦아 놓은 국산 화장품 시장은 다시 미제나 일제에 내 주는 상황이 벌어졌을 것이다. 적금을 붓던 인연으로 구인회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모면하게 된 것이다. 이때 구인회가 손중행으로부터 얻은 정보로 사들인 글리세린은 럭키크림이 2년간 쓸 수 있는 엄청난 양이었고, 이 같은 물량은 락희가 욱일승천해 나가는 데 결정적인 결과를 가져온다. 이처럼 사람 관계는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모든 위기 상황에도 귀인이 나타난다. 이는 분명 경영자의 인덕과 복이 작용하는 결과일 것이다. ⓒ인문경영연구소, 전경일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