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 역사학계 일각에서는 '임진왜란'을 '임진전쟁'으로 명칭 변경을 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2012년부터 고등학교 교과서 ‘동아시아사’ 과목 2종(교학사, 천재교육 출판사 간행 예정)이 바로 그것인데, '임진왜란' 명칭 변경 시도에 대해 나는 학자이자, 이 분야에 대한 오랜 팀침으로 최근에 출간한 <남왜공정: 일본 신왜구의 한반도 재침 음모>라는 책의 일부를 옮김으로써 본격적으로 한국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역사의 자의적 해석과 이들이 추구하고자 하는 역사 해석의 지향성을 한국판 '역사 전쟁'이라 정의하고 반박하고자 한다. 학계는 이에 대해 충분한 학술적, 역사적 반론이 있길 바란다.




2011년 한국 교과서 사건의 본질

2000년대 첫 10년을 갓 넘긴 시점에서 ‘임진왜란’과 관련되어 일고 있는 문제점을 살펴보기로 하자. 한일간 역사적 사건에 대한 명칭이나 용어는 국가의 위상과 역사적 사건에 대한 의미의 총체성을 담고 있다. 그런데 이 같은 명칭(용어)문제를 다시 생각해 보게 만드는 ‘사건’이 2011년 대한민국에서 진행되고 있다. 즉 2012년부터 고등학교 교과서 ‘동아시아사’ 과목 2종(교학사, 천재교육 출판사 간행 예정)에서 ‘임진왜란’을 ‘임진전쟁’으로 ‘병자호란’·‘정묘호란’을 ‘병자전쟁’·‘정묘전쟁’으로 바꿔 기술해 가르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는 점이다. 이 같은 명칭 변경에 대해 학계의 주장은 대체로 다음과 같다.14)

[‘임진왜란’ 명칭 변경에 대한 한국 학계 일각의 변辯]
■ 조선과 일본, 명明이 7년간 전쟁을 벌였고, 그 결과 명이 쇠망하고 청淸이 중국 대륙을 차지하는 등 ‘동아시아의 판도 변화를 일으킨 역사적 사실’을 표현하는 학술용어로 ‘왜란倭亂’이란 용어는 부적절하다.
■ 왜란이란 표현은 ‘왜인(일본인)이 일으킨 난동’이란 의미로 동아시아 3국이 싸운 국제 전쟁의 성격을 표현하지 못한다.
■ 임진왜란은 우리 입장이 강하게 담긴 용어인데 한국사가 아닌 동아시아사를 편찬하면서 자국 중심적 용어를 고집할 수는 없었다.
■ 임진왜란이나 병자호란이란 용어는 피해자의 적대감이 깃든 용어로 조선왕조실록에서 그렇게 기술한 게 굳어져 온 것(이다).
■ 왜구들이 개항장에서 난동을 일으킨 사건을 뜻하는 삼포왜란에는 적절한 표현일지 모르나, 7년 임진전쟁에도 왜란이란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학술적으로 적절한 용어가 아니다.
■ 학술적 견지에서 임진전쟁이라 바꿔 부른다고 해서 일본이 한반도를 침략한 사실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 개인적으로는 역사적 실체에 보다 근접해진 표현이라 생각해 큰 무리가 없을 것으로 본다.
■ 민족주의적 성향이 강한 보수단체 등에서 어떤 반응을 보일지 예상할 수 없다.

이런 주장은 ‘임진왜란’의 명칭 변경이 과연 합당한 것인가 하는 문제점을 자연스럽게 지적하게 된다. 이 같은 명칭 변경은 학계가 ‘동아시아사’ 차원에서 고려한 것으로 시대적 간극과 변화하는 국제관계를 고려했을 것으로 본다. 그러나 이와 별개로 오래 전부터 일본이 ‘임진왜란’이라는 명칭에 대해 강하게 반발을 해왔다는 점을 무시할 수 없다. 전前 도쿄대 강사였던 고무로 나오키小室直樹 같은 일본인들은 이 같은 논리로 ‘왜란’이란 표현에 대해 극력 반발하고 있다.

‘왜란’이라니 이게 대체 웬 말인가? 더욱 중대한 것은 ‘난亂’이란 말이다. ‘난’이란 신하가 군주에 대해 폭력을 사용하는 것을 말한다… 한국인이 ‘임진왜란’, ‘정유재란’이라고 부른다면, 이것은 ‘조선 전쟁’을 전쟁으로 보지 않고 일종의 반란으로 보는 것이 된다. 즉 일본을 조선의 신하로 취급하는 것이 된다. 이것은‘조선 정벌’보다 더 심한 말이 아닌가? ‘정벌’이라고 말하면, 어쨌든 국외 전쟁을 의미한다. 이와 같은 이유에서 볼 때, 한국 측이 ‘왜란’이라는 실례되고 있는 말을 사용하고 있는 이상, 일본 측이 ‘조선 정벌’이란 말을 사용한다 하더라도 불공평한 일은 아니지 않는가? 이렇게 논하면, 왜 (한국인이) ‘히데요시의 조선 정벌’이란 말에 그토록 집착하고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길 것이다. 그것은 바로 이것을 일례로 하여 한일 간에 장애물이 되고 있는 용어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필자가 주장하고 싶은 바는 다음과 같은 것이다. ‘히데요시의 조선 정벌’에서 교과서에 있어서의 ‘침략’문제에 이르기까지, 한국 측으로부터 강한 용어상의 요구가 제기되면 일본인은 곧 당황하고 만다. 그 결과 어떻게 되는가 하면, 매스콤 등에서 사용하는 공식 용어에서는 거의 한국 측의 요구대로 되고 만다. 그러나 일본인끼리 이야기할 경우에는 한국인이 가장 싫어하는 용어를 태연하게 사용한다.15)

우리 학계가 ‘왜란’이란 용어 대신 ‘전쟁’이란 용어를 취하려는 이유와 일정 정도 일치하는 바가 있는 이 같은 주장은 다음과 같은 점에서 크게 오류를 범하고 있다. 우선 그의 주장은 ‘왜란’이라 함은 ‘조선이 일본을 신하로 보는’ 용어로 ‘불공평한 것’이고, 따라서 ‘한일 간에 장애물’이 되며, ‘공식 용어에서 결국 한국 측 요구대로 되고 만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형평성이 크게 어그러져 일본도 똑같이 ‘일본인끼리는 한국인이 가장 싫어하는 용어를 태연하게 사용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고무로는 ‘왜란’이라는 용어로 인해 일본이 대단히 피해를 보고 있는 피해자인 양 위장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임진왜란을 통해 조선과 조선민중이 겪은 처참한 전란의 피해상은 완전히 생략되어 있다. 또한 그로 인해 왜에 대해 갖고 있는 한국인의 정신적 각인도 배제되어 있다. 고무로의 주장은 마치 원폭 투하로 인해 2차대전의 가장 큰 피해자가 일본이라고 주장하는 일본 극우주의자들의 논리와 다를 바 없다.

역사 이해는 당대성當代性을 전제로 하여야 한다. 근대 이전 동북아 질서에서 조선과 일본은 동북아 유일의 강국[上國]으로써 명明을 인식하는 상황이었고, 조일간, 조여진간 관계는 명明과 조선간 관계와 상당 부분 같은 것이었다. ‘왜란’, ‘호란’이라는 명칭의 배경은 적국의 광포한 살육 만행과 함께 당대의 국제질서에 대한 인식이 작용한다. 만일 이 점을 부정한다면, 일본이 주장하듯 상호 대등성을 주장하는 듯하면서도 속내는 일본의 우위성을 획득하려는 교묘한 일본식 논리의 함정에 빠져들게 된다. 이런 교활하기 그지없는 논조는 일본이 한일관계에서 항시 갈등을 점화시킬 때 써온 술책이라는 점을 알 필요가 있다.

그 예로 일본은 1869년 1월 대마도주를 통해 조선의 동래東萊 부사府使와 예조참판에게 보내는 국가 간 외교문서인 국서國書에서 방자하게 ‘황皇’이나 ‘제帝’, ‘칙勅’이라는 용어를 씀으로써 일본 ‘천황’이 조선 ‘국왕’위에 군림한다는 식으로 양국 관계를 상하관계로 바꾸려고 시도했다. 이는 명백히 침구 목적에서 나온 책동이었다. 조선 정부는 이를 조선 국왕에 대한 일본 국왕의 서열상 우위를 확립하고, 조선의 국가적 위상을 낮춰 보려는 시도로 파악해 단호히 거부하였고, 이는 일본이 당초 목적으로 한 바처럼 재침의 빌미가 된다. 오늘날에조차 일왕을 천황으로 호칭하는 행위가 있을 수 없는 것은 양국간 상호 대등성을 종속 관계로 규정하려 드는 일본 측의 저의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일왕이 천황이 된다면, 일본의 조선침략은 근대 이전의 동아시아 세계관인 천황국이 제후(왕)국을 ‘관리’한다는 명분에 부지불식간 동조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한국 학계의 주장이 고무로와 같은 인식하에 전개되고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명칭 변경에 대한 이들의 주장은 대체로, ‘삼국 전쟁이 동아시아의 판도 변화’를 가져왔고, ‘국제 전쟁의 성격을 표현하지 못하며’ ‘동아시아사에 자국 중심적 용어를 고집할 수는 없고’ ‘조선왕조실록에서 기술한 게 굳어져 온 것’이며, ‘역사적 실체에 보다 근접한 표현이라 큰 무리가 없을 것’이라는 데 기인한다. 그래서 ‘학술적 견지에서 임진전쟁이라 바꿔 부른다고 해서 일본이 한반도를 침략한 사실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임진왜란’은 ‘학술용어’로써 ‘적절한 용어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처럼 ‘임진왜란’이 ‘임진전쟁’이 될 수 있는 것이며, 이 같은 전제하에 바꿀 수 있는 것일까? 즉 명칭 변경은 타당한가? 이는 전혀 그렇지가 않다. 한일간 용어는 그 상징적 의미가 명칭 자체에만 있지는 않다. 임진왜란과 이를 둘러싼 모든 한일관계의 역사성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

알다시피 전전戰前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침략 협박을 담은 서계書契 전달과 일본 내 전쟁 준비 징후 등 일련의 사건들은 ‘전쟁’을 암시하고 있었다. 더구나 왜사倭使 다이라 시게노부平調信·겐소玄蘇가 서울에 왔을 때, 겐소는 김성일에게 “중국에서 오랫동안 일본을 거절하여 조공을 바치러 가지 못하여… 전쟁을 일으키고자 한다”며 “조선에서 먼저 임금에게 알려 조공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달라는 패려悖戾한 언사를 늘어 놓는다.16) 이는 전란이 시간만 남겨 놓은 불가피한 것이라는 것을 통보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조선 조정은 이를 위협을 가하는 것으로 파악해 예禮로써 위무할 생각이었지, 조선 침략의 직접적인 선전포고로 간주하지는 않았다. 이는 선전포고가 없으면 전쟁이 아니라는 식의 해석을 하려는 게 아니라, 전쟁으로써 국가간 개전이라고 할지라도 임진왜란은 그 본질이 오랜 왜구 침구사가 보여주는 바처럼, 왜(구)에 의한 침략·침구가 그 원형이며, 연장선상에 있다는 것이다. 만약 ‘임진왜란’이 명칭상 ‘임진전쟁’이 된다면, 일본 개전에 명분을 실어주게 될 여지는 얼마든지 있다. 즉 명분상 상호 대등한 관계로 전쟁을 치렀다는 의미가 되는데, 여기서 말하는 ‘상호 대등성’이란 우리가 생각하듯 사전적 의미가 아니라 일본의 역사 해석 방식으로 조일 관계에서 항시 ‘일본이 우위’를 지니고 있다는 식의 일인日人들의 인식관을 반영할 수 있다.

한국 학계가 ‘국제 전쟁의 성격’으로써 ‘임진왜란’을 표현하려면 일본도 당시 연호를 따서 부르고 있는 ‘분로쿠文祿·게이초의 역慶長の役’ 대신 ‘(임진)전쟁’으로 불러야 마땅하다. 마찬가지로 중국에서도 ‘만력동정萬曆東征’, ‘임진왜화壬辰倭禍’, ‘만력의 역萬曆之役’이라 칭하지 않고 ‘전쟁’이라고 명기해야 한다. 하지만 한국이 명칭 변경을 하더라도 타국이 쓰고 있는 명칭에 구속력을 갖기란 어렵다. 이는 국제관계가 ‘자국 중심’의 역사적 배경과 인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요는 그것이 일본처럼 침략적이었느냐 조선처럼 평화 지향적이었느냐의 문제인 것이다.
역사에서 형평성을 견지하기 위해, 또는 ‘동아시아사’이기 때문에 ‘자국 중심적 용어를 고집할 수는 없다’면 이는 역사의 몰이해에서 나온다. 한국사에서 전개된 가장 첨예한 사건의 명칭을 ‘삼국’, ‘국제’, ‘동아시아사’ 차원에서 타자他者의 눈으로 바라 볼 때, 객관성과 포괄성을 획득할 수 있다는 주장 또한 근거가 미약하다. 물론 앞서 ‘전쟁’ 용어로 변경을 추진하는 이들이 나름 국민의 여론을 의식한 듯 ‘민족주의적 성향이 강한 보수단체에서 어떤 반응을 보일지 예상할 수 없는’ 것 따위의 발언과도 상관없다. 객관적으로나 역사적으로 그것이 옳다면, ‘전쟁’ 용어를 취하면 된다. 그런데 문제는 그게 아니라는 점이다.

최근 역사 문제에서 이 같은 주장이 나오는 배경은 경영 분야에서 맹위를 떨쳤던 지나친 ‘글로벌화’ 현상이 무분별하게 한국사 역사 전개 방식에 그대로 얹혀진 결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행태는 일견 대단히 포괄적으로 임진왜란을 보는 듯하나 실은 그렇지 않다. “‘임진전쟁’이라 바꿔 부른다고 해서 일본이 한반도를 침략한 사실이 바뀌는 것은 아니”듯, “‘임진왜란’이라 부른다고 해서 ‘삼국 전쟁으로 동아시아 판도 변화’를 가져온 ‘국제 전쟁의 성격을 표현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이는 오히려 일본이 원하는 바를 ‘자가自家 희석’하는 것으로 일본 주장에 동조화 되는 결과를 가져올 위험이 크다. 대체 ‘임진전쟁’이란 명칭이 ‘임진왜란’보다 ‘역사적 실체에 보다 근접한 표현’이라는 주장은 어디서 나오는가?
당대 피비린내 나는 전란을 직접 겪은 선조들이 지칭해 온 명칭에 무슨 하자라도 있다는 것인가? 1592년에서 1598년까지 직접적으로 전란을 겪은 선조들보다 ‘왜란’의 성격을 더 잘 규명할 수 있는 ‘역사적 실체’는 없다. 이를 부정한다면 전란을 겪은 실질 주체를 도외시한 채 상대방이나 타국 내지 후세의 관점에서나 전란의 성격을 규정하는 것이다.

더구나 우리 역사 기록의 정사正史인 ‘조선왕조실록’에서 기술한 게 굳어져 온 명칭이어서 무슨 오류라도 있다는 것이 아니라면 이 같은 근거는 매우 취약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뒤에서 다시 다루겠지만, 임진왜란의 성격 규정에 대해 왜倭가 쳐들어 온 날인 1592년(선조 25년) 4월 13일자 《선조실록》 기사는 그 첫머리를 이렇게 적시摘示하고 있다.

왜구倭寇가 침범해 왔다.17)

이보다 더 명확하게 ‘임진왜란’의 정의를 드러내 주는 말은 없다. 이는 당 시대 사람들이 끊임없는 왜구 침구의 연장선상에서 이 전란을 바라봤다는 것을 뚜렷이 드러내 준다.
용어 변경을 추진하는 이들이 주장하듯 ‘임진왜란’이란 명칭이 ‘학술용어’로 ‘부적절’하며, ‘적절한 용어도 아니’라는 주장은 올바른 역사 인식이 아니다. 첨언하자면, ‘임진왜란’은 ‘학술용어’가 아니다. ‘역사적 사건’을 지칭하는 말이다. ‘역사적 사건’이 ‘학술용어’로 국한되어 사용된다면 역사는 현재를 설명하는 생생한 교훈이 되지 못하고 그저 역사의 본령에서 떨어져 나간 박편薄片에 불과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선조들의 피비린내 나는 국란극복사의 교훈은 의미를 갖지 못하거나 저감될 우려마저 있다. 이 같은 점에서 ‘임진왜란’은 ‘임진전쟁’이 아닌 것이며, ‘병자호란’·‘정묘호란’의 명칭도 마찬가지이다.

2011년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이 문제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것은 용어 변경을 시도하는 2종의 교과서가 이미 “국사편찬위원회와 동북아역사재단의 교과서 검정에서 합격 판정을 받았다”18)는 점이다. ‘합격’ 기준은 무엇이었을까? 이들 조직의 역사 인식은 대체 어디에 기인하는 것일까? 이 점은 대단히 의아스럽기만 하다. 나아가 이와 관련 없을 것이라 믿고 싶지만, 다음의 두 사건이 자연스럽게 연상되는 것은 막을 수 없다.

우선 2011년 현재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역사교과서 왜곡 현상이 놀랍게도 일본의 ‘식민지 근대화론’ 주장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현대사학회’가 교육과학기술부에 보낸 <역사교육과정 개정안에 대한 건의안>을 보면, “근대사에서 일제 강점기를 ‘경제성장’이라는 이름으로 미화하고, 임시정부를 뿌리로 삼은 대한민국의 국가 정통성을 부정하고 있음”19)을 알 수 있다. 식민지 근대화론은 “식민지배는 식민지가 근대화할 수 있는 발판”이라는 일본 식민사관과 맞닿아 있어 그동안 꾸준히 비판을 받아 왔다.20)

이 같은 주장은 1948년 전前 경성제국대학 교수로 ‘대륙병참기지론’이나 ‘북선北鮮 루트론’을 제창한 조선론의 권위자 스즈키 다케오鈴木武雄의 주장과도 맞닿아 있다. 이 자는 다음과 같은 망언을 내뱉은 바 있다.

조선경제가 그토록 처참한 상태에서 병합 후 불과 30여년 사이에 지금과 같은 일대 발전을 이룬 것은 분명 일본이 지도한 결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21)

이어 1965년 1월 7일 제7차 한일회담시 일본 측 수석대표로 참여한 다카쓰기 신이치高衫晋一의 망언도 같은 맥락하에 있다.

조선의 산에는 나무가 한 그루도 없다고 한다. 이것은 조선이 일본에서 떨어져 나갔기 때문이다. 우리의 노력은 패전으로 좌절됐지만 아마 20년쯤 더 일본과 붙어 있었다면 그렇게는 되지 않았을 것이다.22)

언론에 의하면,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주로 “한나라당을 중심으로 한 여당 정치권, ‘뉴라이트’ 간판 아래 모인 각종 극우 정치·시민단체들, 그리고 낙성대사단·교과서포럼 등이 주도하는 극우역사학계 등”으로 알려진다.23) “이는 일본 극우파들의 역사관이자 극우 정치인들이 ‘망언’ 때마다 단골로 사용해온 레파토리 가운데 하나”24)라는 점에서 더욱 우려되는 부분이다.

대한민국에서 어떻게 이런 ‘식민지 근대화론’과 같은 국가 정통성을 부정하는 역사 인식이 전개될 수 있는 것일까? 이런 논조라면 일제에 맞서 싸운 독립투쟁이나, 해방은 참의미를 잃고 만다. 실로 참담한 현실이 지금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
졸저 <남왜공정>의 일부를 인용한 것이나, 이에 대해 일부 역사 학계는 명칭 변경에 대한 뚜렷한 근거를 내놓아야 할 것이다. 나아가 낙성대사단·교과서포럼은 ‘식민지 근대화론’의 구체적 증좌를 제시해야 할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역사 인식이 크게 본질이 호도되어 가는 작금의 상황은 일본의 역사 왜곡에 대한 대응뿐만 아니라, 내부적 차원에서 벌어지고 있는 '왜곡'을 바로잡아야만 하는 필요성과  절박함을 급박하게 요구하고 있다. 끝으로 이 논쟁에 인용하고픈 한 구절이 있다. 미국 법정 증인 선서문의 내용이 바로 그것이다.

                                                        "진실을 말하되 전체 진실을 말할 것."

부분적 사실이 아닌 전체 진실을 근거로 역사에 접근하기를 바란다. 학계의 대응 논리를 기다린다.

인문경영연구소 전경일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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