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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45년 일본은 한반도를 침공할 것이다" [서평] <남왜공정>, 왜구를 '글로벌 콘텐츠'로 개발하는 일본

by 전경일 2012. 3. 5.
"2045년 일본은 한반도를 침공할 것이다"
[서평] <남왜공정>, 왜구를 '글로벌 콘텐츠'로 개발하는 일본


남왜공정 책표지

2008년 5월, 대통령의 형이자 당시 국회 부의장 이상득 의원은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국대사에게, '이 대통령은 뼛속까지 친미, 친일이어서(pro-U.S. and pro-Japan to the core), 대통령의 시각(vision, 대미·대일관)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말한 사실이 위키리크스를 통해 드러났다.

이어 같은 해 7월, 일본 <요미우리> 신문은, 이명박 대통령이 홋카이도에서 열린 주요 8개국 정상회의에서 후쿠다 야스오 총리에게 '중학교 사회과 학습지도요령 해설서에 다케시마(독도의 일본명)를 일본 땅이라고 명기하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을 통보받고, "지금은 곤란하다. 기다려 달라"고 말했다고 보도한다.

이 보도로 인해 논란이 빚어지자 청와대는 "사실무근"이라고 즉각 부인한다. 당시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은, "한국 내부를 분열시키고 독도 문제의 본질을 왜곡시키기 위한 일본 언론 측 보도라면 용납할 수 없다"고 유달리 언성을 높인 바 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지난달 2월 19일 <경향신문>이 입수한 '위키리크스'의 미 외교전문에는, '2008년 7월 16일 강영훈 주일 한국대사관 1등 서기관은 교과서 문제에 대해 이 대통령이 후쿠다 야스오 총리에게 "기다려 달라"고 부탁했다'고 말한 것으로 나와 있다.

<남왜공정>(전경일 지음, 다빈치북스)은 이러한 일들이 기실 얼마나 무지하고 위험한 것인지를 역사적으로 실증하는 책이다. '남왜공정(南倭工程)'에서 '남왜'란 글자 그대로 '남쪽 왜구'를 지칭하며, '공정'이란 '동북공정'의 '공정'처럼 '완성되기까지 거쳐야 하는 단계적 작업'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가왜', '부왜' 그리고 친일파

주지하듯이 임진왜란은 일본이 한반도에 전면적으로 침공해 온 '일대사건'이었다. 그런데 이 엄청난 사건을 전하는 우리 역사 기록의 첫 문장은 놀라울 정도로 간명하다. 1592년 4월 13일 자 <선조실록>은 '왜구가 침범해 왔다'는 외마디 문장으로 시작된다.

그런데 저자는 바로 이 외마디 문장이야말로 일본의 한반도 침략사를 가장 명확하게 표현하는 '아포리즘(aphorism)'이라고 말한다. 일본의 한반도 침략은 그 주체가 특정세력이든 공식국가든지 간에, 또한 그 시기가 고대든 근세든 현대든지 간에, 그것은 모두 '왜의 구(도둑)가 일삼은 노략질'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 책은 왜구의 침범이 414년 고구려 광개토왕 시대부터 2011년 이명박 시대에 이르기까지 무려 900여 차례나 진행되어 온 일련의 '공정'이었음을 실감 나게 일러준다.

이 책에서 특히 흥미로운 지점은 왜구의 발생 기원을 일본의 역사 기록을 통해 고증하는 대목이다. 저자에 의하면 왜구는 일본 왕실 즉 정통 국가주도세력에서 떨어져 나온 무리의 후예라는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이 책을 단순히 과거를 고찰하는 수준에 머물게 하지는 않았다. 저자는 작심하고서 한일간의 현재와 미래를 주관, 독창적으로 분석, 투시하려는 노력을 보인다.

경영 전문가이자 정치인이기도 한 저자 전경일에게는 부친과 조부가 둘 다 일제징용에 끌려간 특이한 가족사가 있다. 그는 징용에 다녀온 부조(父祖)의 이야기를 무수히 들으며 성장했다. 어린 시절부터 그는 자기 가족이 겪은 불행은 일본 극우주의자들의 소행 때문임을 깨우쳤다고 한다. 이후 그는 본격적으로 역사를 공부하면서 일본의 극우주의자들이란 바로 '현대판 왜구'라는 사실을 각성하게 된다. 저자는 서문에서 '역사는 되풀이될 수 있다는 절박감에서 책을 썼노라'고 밝히고 있다.

왜구는 414년 광개토왕 시대 이래 최근까지 무려 1620년 동안 900여 차례나 한반도를 침략했다, 부끄럽게도 이런 왜구의 발호 이면에는'가왜', '부왜' 등으로 명명할 수 있는 우리 측의 '친왜세력'이 있었다고 한다. 현대에 들어 그들은 '친일파'로 명명된다. 그리고 1910년 경술국치 당시 이용구, 송병준, 이완용 등의 핵심 친일파는 하나같이 이 나라의 지도층 인사였다. 더욱이 식민지 지배와 분단이라는 현대사의 배경에는 강대국 미국의 대한(對韓)무지와 친일성향이 작용했다. 이런 점에서 저자가, '뼛속 친미·친일'을 운운한 이상득 의원이나 일본의 독도 침탈을 경원시한 이명박 대통령류의 지도층 인사를 한심한 수준으로 치부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인 것 같다.


임진왜란, 경술국치... 일본의 3차 침공은 2045년(?)

일본이 막부 체제의 봉건제도를 타도하고 천황제의 절대주의 국가를 수립한 것은 1867년 메이지유신(明治維新)에 의해서였다. 메이지유신은 대외적으로는 제국주의로의 이행을 의미하는, 우리에게는 매우 불길한 조짐이었다. 이어 불과 9년의 시차인 1876년 한일 간에는 강화도조약이 체결된다. 이로부터 조선의 국체는 급격히 붕괴한다. 그리고 일본의 조선 침공이 완성된 것은 강화도조약 체결 34년 후인 1910년이었다.

2002년 일본은 '유사법제(有事法制)'를 제정했다. 이것은 전후 일본이 집요하게 추구해 왔던 재무장의 완결판으로서 '일본의 군사적 독립'이라는 의의를 가진다. 유사법제로 때문에일본은 군대를 해외에 파병할 수가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달리 말해서 일본 군대에 타국을 침공할 권한이 공식적으로 부여된 것이다. 이로써 '교전권 부인'을 명시한 전후 평화헌법은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다.


저자는 일본의 유사법제와 9년 시차인 2011년 한반도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직시하라고 경고한다. 이보다 앞서 2006년 4월, 일본이 독도 근해 수역조사계획을 발표하여 한국이 긴장하고 있을 무렵, 토머스 시퍼 주일미국대사는 야치 쇼타로 일본 외무성 사무차관과 면담한 자리에서, '한국이 미친 짓을 하거나(do something crazy),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까(causing a major problem) 우려된다'고 한국을 비하하는 발언을 한 바 있다.(<경향신문> 2011. 9.15자)


앞에서 말했듯이 2008년, 일본수상이 독도를 일본 영토로 표기하겠다고 치고 나왔다. 그런데도 한국의 국가원수라는 사람이 '지금은 곤란하니 기다려 달라'는 식의 통사정을 했다니 정말 믿을 수 없는 사태가 초래된 것이다. 2008년 7월 15일 이 보도가 나오고 나서 불과 열흘 후 미국은 공식적으로 독도를 '분쟁지역'으로 바꿔 버린다. 뿐만아니라 미국은 3년 후인 2011년 동해를 '일본해'로 단독 표기하는 일본 측 안에 지지를 표시해 주었다.

마침내 유사법제 9년 시차인 2011년 8월, 세 명의 왜구(저자 표현)가 한반도에 출현한다. 일본 자민당 의원 셋이 한국의 독도 영유권 강화 조치를 견제하기 위해 울릉도에 가겠다고 나선 것이다. 이 왜구들의 면면을 보자면, 신도 요시타카(2차대전 당시 일본 육군 대장 다다미치의 외손자, '한국에 있는 일본 문화재도 돌려받아야 한다'고 주장), 사토 마사히사(일본 자위대 학교 교관 출신, '만주와 한반도는 일본의 통치로 풍족해졌다'고 발언), 이나다 도모미(일본의 전쟁 책임을 제기한 언론사와 기자를 번번이 제소한 변호사 출신, '남경대학살은 허구, 신사참배 저지 행위는 배은망덕한 짓'이라고 주장) 등이다.

저자는 2011년의 이 사건을 1876년의 강화도조약에 빗대고 있다. 요컨대 독도는 일본이 조선 침공의 빌미로 이용한 강화도와 거의 유사하다는 관점이다. 강화도조약 체결 34년 후인 1910년 일본은 조선을 강탈해 버렸다. 그렇다면 일본은 2011년과 34년의 시차를 둔 2045년 즈음에 독도 문제를 빌미로 삼아 조선을 침공할 것이라는 시나리오가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이다.


'왜구'를 '글로벌 문화 콘텐츠'로 둔갑시키는 일본

일본 텔레비전 방송에서 극우적 프로그램의 시청률은 예외 없이 높게 나타난다. 2006년 후지TV가 방영한 '태합기'에서 조선을 침략한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침략자의 성향을 전혀 풍기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전쟁을 싫어하는 온화하고 선량한 인물로 그려진다. 일본 대중문화의 역사 왜곡은 '다이가 개선'에서도 드러난다. 이 드라마에서는 고구려·백제·신라가 일제히 일본에 조공하는 속국으로 허구화되어 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동안 왜구와 일정한 거리를 두면서 애써 왜구를 객체화해 왔던 일본이 이제는 노골적으로 왜구를 주체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들어 일본인들은 약탈, 살인 집단이었던 왜구를 '국제적 해양활동세력'으로 이미지를 쇄신(?)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조만간 일본은 왜구를 마치 '캐러비안의 해적'처럼 낭만과 모험에 가득 찬 모습으로 미화하는 콘텐츠를 개발할 가능성이 높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남왜공정>의 핵심 주장은 '일본의 전면 재침공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1945년 패망 후 조선 총독 아베 노부유키가 한반도를 떠나며 남긴 말은 섬뜩할 정도로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우리는 패했지만, 조선은 승리한 것이 아니다. 장담하건대 조선민이 제정신을 차려 찬란하고 위대했던 조선의 영광을 되찾으려면 100년 정도의 세월이 걸릴 것이다. 우리 일본은 조선민에게 총과 대포보다 무서운 식민교육을 심어 놓았다. 조선민은 결국은 서로 이간질하여 노예적 삶을 살 것이다. 보라! 조선은 실로 위대했고 찬란했지만 결국 식민교육의 노예로 전락할 것이다. 그리고 나 아베 노부유키는 다시 돌아온다."

마지막 총독 아베 노부유키는 조선에 돌아온다고 했다. 근대판 전형적 왜구였던 그가 지목한 재침 시점은 공교롭게도 1945년 해방 기준 100년 후인 2045년이다. 

덧붙이는 글 | 남왜공정 | 전경일 (지은이) | 다빈치북스 | 16,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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