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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경영/통섭과 초영역인재

크로스 오버를 필요로 하는 다중경력 시대

by 전경일 2012. 3. 30.

크로스 오버를 필요로 하는 다중경력 시대

 

정보화 시대 이전까지만 해도 전공개념은 어느 정도 선을 긋고 있었다. 대학에서 일반 전공영역으로 치부된 문과대, 상경대를 제외하고 이공계, 예체능계, 의대 등은 주로 전공 분야별로 해당 사회의 산업군, 직업군으로 편입되어 들어갔다. 물론, 전공을 불문하고 이른바 대학 간판을 따기 위해 좀 더 지명도 있는 대학을 선택한 사람들도 부지기수였다.(이런 현상은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전공에 대한 관심이 낮다보니 이들이 상급 학교 진학을 통해 방향 잡은 분야는 주로 사회적으로 효용성이 높은 경영학 분야였다. 1990년대 이후 급성장한 경영학 전공 대학원이나, 각종 경영자 과정 교육 프로그램의 확산, 해외 MBA 학위자들의 급증은 이 같은 현상을 잘 보여준다.

 

특정분야에 대한 선호는 경제 경영적 마인드를 제고한 면은 있으나, 다른 분야에 대한 상대적 무관심, 소홀, 박탈감으로 나타났다. 전공에 대한 몰개념과 마찬가지로 한쪽으로 치우친 학문적 편식은 복잡한 경영 현상을 포괄적으로 해석해 내는데 그간 한계로 작용해 왔다. 서구가 학제간 연구를 통해 통합적 시너지에 학문적 지향을 하고 있을 때 우리는 기껏해야 복수전공 개념이 도입됐다.

 

전공에 있어서도 대학 선택시까지 구체적으로 어떤 학문을 하겠다는 생각보다는 막연한 전공 선호, 보다 나은 대학으로 가겠다는 기준이 지배적이었다. 현재의 입시 시스템은 자신의 뇌의 구조나 특성에 맞는 전공보다는 갈수록 힘들어 지는 경제 여건을 반영하듯 보다 유리하게 직장을 잡는 일로 자연스럽게 귀결되며 심각한 전공쏠림 현상까지 벌어지고 있다. 그들을 막는 건 관심이 아닌, 점수에 의해 정해진 학과, 계열 선택이다. 한국 대학에서의 상상력의 부재는 단순 지적 기능인을 키워 내는 식이지, 미래의 창조인으로 청년들을 키워 내고 있지 못하다. 엄연히 직장을 잡게 하는 게 웬만한 대학 교수들의 하나의 직무인 판에 이론과 현실의 차이라고 주장할 수 있겠지만, 이것은 우리 스스로 창조의 씨앗을 짓밟는 결과가 되고 있다.

 

기업이 단순히 경제경영 영역에 국한해 사업을 영위해 나가는 것이라면 모든 임직원을 경영학도로 다 채울 수는 있겠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경제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타방면의 지식이 요구되고 있고(must requirement), 단순조립 공정상의 일이 아닌 한, 다양성은 가치 증진에 절대적으로 중요한 몫을 차지한다. 개인의 경력에 있어서도 단일경쟁력보다 복수경쟁력이 부각되고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과거와 달리 앞으로는 더욱 단일 경력으로 자신의 직업을 유지할 수 없게 된다. 개인들 역시 지속적인 자기계발을 통해 연관분야, 타분야와의 연계성을 모색하게 되고 그것이 실질 업무 성과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방식으로 인식한다. 이를 반영하듯, 새로운 경력을 찾거나, 다수 경력을 찾고자 하는 시도는 과거 어느 때보다 각광받고 있다. 한 개인이 지닌 크로스 오버는 여러 개의 지식, 경험을 보유하는 다중경력으로 자리매김 되며 복잡성의 경영환경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가는 인재형을 요구하고 있다. 조직도 변화적응력을 키우고 빠른 의사결정을 위해 조직구조를 수평적ㆍ평면적 조직, 네트워크 조직, 매트릭스 조직, 학습조직 등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다양한 경력, 직무 능력, 지식경험을 통해 다중경력을 확보하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전통적 경력경로와 네트워크 경력경로>

 

                                                          <도표1>                         (도표2> 

 

<도표 1>에서 보는 바와 같이 과거에는 자신의 전공을 통해 경력 경로가 진행되며 단일한 궤적을 밟아왔다. 심지어는 주로 인문, 경상계열은 직장 내에서 맡은 바 업무가 전공이 되기도 했다. 여기서 좀 더 진화한 모델이 복수전공으로 불리는 전공-부전공의 경우다. 예컨대, 사범대 전공자가 경영학을 부전공으로 하는 경우는 이미 일반적인 교과이수과정이 되고 있다. <도표2>는 과거에는 철저하게 개인적 영역으로 맡겨졌던(앞으로도 통섭형 자기계발이 진행되기에는 적지 않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교육 시스템 전체가 뜯어고쳐져야 할지 모른다. 물론 사회적 합의도 선결과제로 남아 있다.) 다중경력이 기업 내 교육 프로그램, 직무 전환에 사용되고 있는 흐름을 예시하고 있다. 단일한 전공, 경력 유관 지식, 새로운 직무를 추가 배치함으로써 보다 생산적인 인재상을 구현한다는 얘기다. 물론 직무 순환 배치상의 효과를 노리는 인재교육 및 운영전략의 일환이다.

 

다중경력은 통섭형 지식과 궤를 같이 하고 있다. 다만, 그것을 고무하는 기업 내 활동은 적지 않은 저항과 비용의 문제라는 현실에 부닥칠 위험이 있다. 다중경력에 대한 관심은 지속적으로 높아져 이와 비슷한 의미로 프로틴 경력(protean career)과 무경계 경력(boundaryless career)이 제시되고 있다.

 

“프로틴 경력은 경력변화의 시간적 측면을 강조한다. 즉, 시간이 진행되면서 개인들은 지속적인 학습을 하고 이러한 학습의 과정에서 여러 단계에 따라 여러 개의 경력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반면, 무경계 경력은 공간적 개념에서 다중경력을 설명한다. 즉, 조직 내에서의 경력을 조직 간에서의 경력이라는 개념으로 확대한다. 하나의 조직에서만 경력을 갖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여려 개의 조직에서 경력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다중 경력의 또 다른 측면을 설명한다. 다중경력은 한 개인이 다양한 복수의 경력을 시간과 공간속에서 확보하게 되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과거에는 하나의 조직에 포함되어 그 조직 내에서 경력의 이동과 계획에 따라 자신의 삶을 경영해야 했던 개인은 이제 스스로 자신의 경력을 경영하고 개발하는 주체적인 입장으로 변화되는 경력 상의 변화를 겪게 된다.“

 

그간 우리의 성장을 촉진시켰던 전공분야는 새로운 통섭의 시대를 맞이해 ‘묶인 지식’ ‘다발 지식’을 요구하고 있다. 장미꽃으로만 구성된 꽃다발이 아닌, 경영 생태계가 고스란히 반영된 수많은 꽃들이 묶인 꽃다지이어야만 한다. 죄뇌 기반의 사고는 이제 우뇌기반내지 좌우뇌의 결합형 직무, 직업으로 변하고, 통합되며 균형을 맞추어야 한다. 창의력, 직관력, 감각적 기능이 강조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디지털 분야는 좌뇌 중심에서 출발해 우뇌로 이동하고 있다. 고객과 참여자의 감성 가치를 높게 평가하는 것은 이런 배경에서이다.

 

창의력이 중시되는 시대에는 좌우뇌의 결합이 필요로 하고, 특히 통합분야에서 새로운 유형의 산업이나 직업이 창조될 것으로 보인다. 지적 경계가 무너지고, 무경계의 지식 생태계가 펼쳐지는 세상이 오고 있는 것은 우리 사회가 창조기반의 사회로 이전하고 있는 한 단면을 잘 보여준다. 이럴 때 지식 간 벽을 허물며(또한 지식을 대하는 사고의 편견이 해체되며) 통섭의 역량은 강화된다.

 

앞으로의 기업은 그간 파편화된 지식 유형의 직원들을 필요로 하기 보다는 지적 통합을 이뤄낼 인재들을 필요로 한다. 고도로 분석적이고 통찰력이 넘치면서도 감성적인 직원이야말로 고객의 이성과 감성 모두를 잡아낸다. 변화하는 고객의 인식과 감성 패턴을 읽어 내기 위해서도 경영자들은 감성능력을 보다 강화해야 한다. 전공에 정통하되, 인문학적ㆍ문화예술적 소양을 전공 수준으로 쌓아야 한다. 그럴 때 기업은 통섭의 힘을 경영에 반영할 수 있고, 개인도 다중경력을 갖춤으로서 미래형 경쟁력을 쌓을 수 있다. 미래를 이끌어 나갈 인재들의 역량을 배가시키는 것은 경영자의 본분이다. 경영자 한 사람이 지닌 품격 있는 취향, 지적 깊이, 다름과의 조화, 통섭 역량이 전체 조직의 역량을 결정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경영자의 성장은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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