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인문경영/통섭 / 초영역인재

부분을 넘어 전체를 보는 기회의 합(合)

부분을 넘어 전체를 보는 기회의 합(合)

미 법정 증인 서약 중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진실을 말하되, 전체 진실을 말할 것.” 이는 개별이 지닌 한계를 정확히 지적한 말이라고 할 수 있다. 개별적 진실이나 오류가 전체 진실에 판단 착오를 가져오는 것이 아닌, 전체에 기여할 때 의미를 지닌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것을 오늘날의 크로스 오버형 지식내지 인재유형에 비유하자면, 개별지식을 갖되 전체 지식에 부합하는 사고를 할 것을 요구하는 것과 같다. 전체를 읽고, 재해석해 내는 인재상을 요구하고 있는 셈이다.

 

오늘날 경영은 유사 이래 가장 큰 변화의 시기를 맞이하고 있다. 이는 사상적으로 인간의 본질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던 르네상스 시기와 흡사하다. 또한 화약이 보급되며 인류의 전쟁 전략이나 전사(戰史)가 근본적으로 바뀌었던 시기나, 증기기관의 등장(정확하게는 엔진의 등장)과 함께 시작된 산업혁명의 시기, 라디오 TV 인터넷 등 미디어의 발달이 가져온 20세기 이후의 시기와도 비슷하다. 이 모든 시기를 이끈 공통점은 무엇일까? 다름 아닌 창조다.

 

산업 혁명 이후로 우리는 기술변화가 임계치에 도달한 이후 사회 전반이 따라서 변하는 기술주도의 시대, 변화의 일대 파급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기업의 부침도 여기에 지대한 영향을 받아서《포춘(Fortune)》지에 따르면, 미국 100대 기업 중 10년 주기로 30%에 해당하는 기업이 도산하는데, 그 이유가 시대의 변화에 부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글로벌 위기가 가중되는 시대에 이 같은 현상은 더욱 두드러질 것으로 보인다.

 

기업의 환경적응이라 함은 주어진 환경에의 적응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 보다는 환경을 보다 주도적으로 이끌어 가는 창조적 결과가 드러나야 한다. 기업 환경의 변화가 광속으로 치닫는 요즘, 분석적인 사고만으로는 시대를 앞서나가는 탁월성의 경영을 이뤄내기 힘들다. 과학적 사고도 중요하지만 핵심을 꿰뚫는 통찰력, 즉 직관은 창조성이 요구되는 시대에 가장 주목해야 할 경영자의 조건이다.

 

과거의 지식이 직선적이고, 즉시적 해법중심의 전공영역을 통한 정공법이었다면, 모든 면에서 상호작용의 밀도가 높아지는 지금은 직선이 아닌 곡선으로 문제를 푸는 슬기가 필요하다. 가장 빠른 것이 살아남는다는 속도경영을 얘기하는 시대에 역으로 정서적 느림경영을 얘기하는 것과 다른 한편, 다방면에 대한 접점을 통해 곡선미를 살리는 경영은 기업이 궁극적인 가치에 이르게 한다. 나아가 속도 면에 있어서도 훨씬 빠르다. 관찰, 통찰, 해찰, 성찰은 21세기 경영의 키워드인 ‘꿰뚫음'과 ’살핌[察]’을 가져오고, 이는 창조경영의 한 방법론이 될 수 있다.

 

창조 경영의 시대에 경영자들에게 요구되는 덕목은 무엇일까? 창조적 리더는 우선 업무 구석구석을 파악할 수 있는 충분한 지능을 갖추어야 한다. 나아가 분석과 통합이 어우러진 시각으로 미래를 통찰하고 과감한 결단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 인간 심성에 호소하는 미세한 감성력(感性力)도 경영자가 갖추어야 할 필수요소다. 또한 전체로서 누락 없는 부분집합을 이뤄내는 통섭능력이 요구된다. 이러한 인재상은 파편, 절편, 단절된 절음발이형 지식 단계인 ‘낱ㆍ홑ㆍ홀의 지식’을 넘어서 ‘겹ㆍ짝ㆍ묶의 지식’으로 새로운 지식토대를 만든다. 정보가 차단된 세상이 아닌 무한 접근 가능한 시대에는 지식을 통합해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 넣는 인재상이 요구된다. 경제학자 케네스 볼딩(Kenneth Boulding)은 세상에 단 두 가지 유형의 사람만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모든 것을 두 가지로 나누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창조시대의 경영자는 어떤 유형에 해당되어야 할까? 파커 J. 파머는 “우리가 본질적인 어떤 것을 알려고 한다면, 우리는 이 세상을 파편화하는 방식으로 보지 말고 전체로 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의 주장은 통섭시대에 매우 설득력 있는 주장으로 다가온다. 요는 전체를 보는 눈이자, 그 같은 안목을 지닌 경영철학이다.

 

창조의 시기였던 세종 시대든, 만능형 인간의 시대였던 르네상스 시기든 창조적 인재들의 특징은 다방면적 지식경험을 통해 지식의 궤를 꿸 줄 알았던 사람들이다. 그들은 낮은 단계의 기술 수준에서부터 수준 높은 이론에 이르기까지 무한한 지식간, 경험간, 그리고 양자간 연결고리를 갖고 있으며, 그것이 상호 밀접한 관련성을 지니고 확장되도록 계발된 사람들이다. 간(間)학문적, 초(超)학문적, 다(多)학문적, 대(大)학문적 경험은 그들의 위대한 창조적 활동의 지적 배경이 된다.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기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다(多)학문적 지식과 실험으로 원근법, 명암법, 부드러운 필치, 희미해지는 윤곽, 음영(陰影)이 뚜렷한 얼굴 등을 그리는 기법을 구사해 인물을 생생하게 그릴 수 있었다. 그는 그림 공부를 위해 식물을 데상하기 시작했는데 나중에는 이것이 발전해 아예 식물학에 대한 연구로 뻗어 나갔다. 또한 천문에 대한 관심을 통해 인류역사상 최초로 망원경을 고안해 냈다. 또 조각가인 벤베누토 첼리니는 조각가도 병사, 음악가, 정치가의 상을 만들려면 전쟁, 음악, 수사학에 대해 알아야 한다고 주장하며 대(大)학문적 태도를 취했다. 미켈란젤로의 경우에는 그 자신을 예술가의 성역(聖域)에까지 끌어 올린 건축, 회화, 조각 등 전 영역에서 지식과 창조활동을 통합해 냈다. 이는 마치 에디슨이 “특정한 취향에 나 자신을 가두고 싶지 않다.”고 말 한 바와 맥락을 같이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다 빈치나 미켈란제로 같은 역사적인 창조자들은 대단히 멋진 일에만 손댄 게 아니다. 그들은 공방(工房)이라는 피렌체의 생산현장에서 회화나 조각의 제작에만 관여한 게 아니라, 축제에 사용하는 깃발, 장식, 장신구, 대규모 건축물의 도면 디자인, 금ㆍ은ㆍ구리를 녹이는 일 등 무슨 일이든 가리지 않고 해댔다. 이렇게 쌓은 다양한 경험은 대형 프로젝트에 요구되는 통합적 지식을 가져왔다. 그리하여 그들은 회화, 조각, 도시계획, 인체 해부, 기계공작 등 전문 분야로는 구분할 수 없는 만능형(uomo universale)인재가 되었다. 시오노 나나미에 의하면, 이런 그들의 전인적(全人的) 역량은 “화가는 그림에만, 건축가는 건축에만 전념한 베네치아인과는 전혀 다른 방식”이었다. 이들의 공통점은 어느 하나가 다른 것에 영향을 미치며, 각기 분리되어 있던 지식이 통합적 결과물로 궁극적으로 작용했다는 점이다.

 

이와 같은 통섭형 인재가 들끓던 시기가 우리나라에서는 세종 시대이다. 우리 역사상 가장 창조성이 드높게 펼쳐진 이 시기에 신숙주, 성삼문 등 집현전 학사들은 어떻게《훈민정음》창제의 이론적 토대를 제시할 수 있었을까? 파스파 문자의 권위자인 황찬(黃瓚)의 도움과 태조 8년에 전래된 명나라의 홍무정운(洪武正韻)의 음운학적 지식이 적잖은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이는훈민정음》창제에 세종은 어떻게 또 하나의 철학적 원리인 ‘천지인(天地人)’의 삼재(三才)를 녹여 부을 수 있었을까? 그리하여 국가경영 철학과 구강계(口腔系)의 발성 원리를 통합해 낸 전무후무한 사고를 통해 하나의 독특한 ‘문자체계’로 발전시킬 수 있었을까? 이런 ‘간(間)학문적’ 지식연계 능력은 수없는 학습과 연구의 결과였음을 알 수 있다.

 

현대 들어 페덱스의 프레드릭 스미스가 항공사들의 항공노선을 대도시 터미널에 집중시킬 때 이용하는 허브&스포크 시스템을 생각해 낸 것은 결코 하나의 바퀴살만 보고 떠올린 생각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는 부분으로써 바퀴살이 전체 바퀴를 연결하는 원리를 통해 가장 빠른 운송수단을 머릿속에 그렸을 것이다. 그의 전체를 보는 아이디어는 오늘날 지상에서 가장 강력한 항공 택배 시스템을 창조해 냈다. 물론 여객 분야에서 사우스웨스트 항공은 페덱스나 여타 항공사의 이 ‘혁신적’인 허브&스포크 시스템을 과감히 버리고 저렴한 요금에 인기노선을 주로 운항하는 방식을 취하며 과거의 성공 방식조차 일신해 내지만 말이다. 이는 리처드 브랜슨이 이끄는 버진 애틀랜틱 항공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버진은 전 세계 교통량이 많은 도시만 연결하는 직항 노선을 도입해 대성공을 거뒀다.

 

창조를 만들어 내는 ‘전체지식’에는 부분 지식의 연결과 통합이 매우 중요하다. 부분은 전체의 일부를 이루지만, 그것이 경계 지어져서 따로 존재한다면 ‘따로국밥’이 말 그대로 따로 없다. 부분의 합은 전체를 넘어선다. 거기에는 우리가 모르는 물리적 합(合)이 아닌, 화학반응이 함께 한다. 부분집합의 합이 촘촘하게 짜여져 전체를 이룰 때 창조는 질적 변환되는 순간을 맞이한다.

 

인류 역사는 끊임없는 가상이론(加上理論)하에 움직여 왔다. 즉, 하나의 지식 위에 다음 지식을 쌓으면서 문명을 이룩해 왔다. 지금으로부터 대략 700년 내를 살펴보면 금속활자본의 등장과 함께 전 세계적으로 약속이나 한 듯이 인쇄술이 폭발적으로 증가해 나간다. 어느 한 지점에서 시작된 기술적 혁신은 각기 떨어져 있었어도 우후죽순식으로 생겨났다. 예컨대, 15세기 조선의 세종시대는 세계제국 원의 유산과 연계되었지만 지역적으로는 국지적이었다. 15~16세기 이탈리아의 르네상스도 피렌체를 중심으로 한 협소지역에서 일어난 문예대부흥이었다. 반면 18세기 후반 인류는 전세계적인 창조시대를 맞이하며 증기기관에 소용되는 엔진을 개발했고, 이어 20세기 초에는 전기의 발명이 이루어졌다. 발명과 발견의 역사는 계속되어 20세기말에는 인터넷이 등장했고, 그에 따라 지식은 폭발적으로 증가하며 보편화됐다.

 

과학문명의 전이를 살펴보면, 이는 문명개화가 서쪽으로 이동해 궁극적으로 동(東)으로 향한다는 서진론(西進論)을 뒷받침한다. 우리가 맞이하는 창조시대가 이 같은 선순환적 흐름 속에 있다는 것은 대단한 행운이다. 때마침 미국식 합리주의나 신자유주의 체제의 결함이 만천하에 드러나며, 새로운 통합적 사고가 글로벌 리더십으로 부상할 전망이다. 이 절대절명의 시기에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강력한 유산은 통합ㆍ통섭의 경험이다. 내부에 골몰하던 이전 시대의 유산을 극복하고, 외부로 향해야 한다. 부분에 국한된 시각을 털고, 전체를 통합해 내며 새로운 르네상스를 꿈꾸어야 한다. 지금 성장과 발전에의 해답은 우리 내부에 있다. 묘법을 찾아내기란 어렵지만, 그것을 찾아냈을 때의 결과란 그 어떤 단순한 합보다 월등한 결과를 가져온다. 부분을 넘어서며 전체로서 기회가 다가온다.ⓒ인문경영연구소, 전경일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