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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관리/LG,GS동업비결_구씨,허씨이야기

발 딛는 곳이 사업이 시작되는 곳

by 전경일 2013. 4. 8.

발 딛는 곳이 사업이 시작되는 곳

사업에 뜻을 보인 구인회는 처음에는 승산리 협동조합 일을 맡아보게 된다. 그는 곧 소비협동조합운동을 전개한다. 이것이 앞으로 그를 기업가의 반석 위에 올려놓는 계기가 된다. 기업가로서의 유연성이 발휘된 결과이기도 하다.

 

이때 마을에는 무라카미(村上)라는 상술에 능한 일본인이 잡화류 따위를 팔고 있었다. 처음 승산 마을에 발을 들여 놓을 때 빈주먹이었으나 그는 눈깔사탕 장사로부터 시작해 차츰 사세를 키워나가고 있었다. 점차 연필과 성냥, 양초 같은 물건을 팔기 시작하다 지수보통학교가 들어선 다음에는 아예 문구점으로 키워나갔다. 작은 시장에 불과했지만 다루는 품목과 사업이 계속해서 늘어갔다. 집집마다 남포등이 보급되면서 석유도 함께 팔기 시작했고 이내 돈을 모았다. 마을에서 석유를 파는 가게는 무라카미 가게가 유일했고 따라서 독점의 이득을 고스란히 누리고 있었다.

 

구인회는 가까이 있는 벤치마크 대상이자 경쟁자인 무라카미를 겨냥했다. '가까이 있는 시장부터 먹어라!'는 현실적 전략이었다. 구인회는 무라카미에 대응하기 위해 소비협동 운동을 전개한다. 목표를 무라카미가 누리는 독점을 해체로 잡았다. 그는 석유, 비누, 비단, 광목 등을 공동구매하면 일본인 가게에서 개별적으로 사는 것보다 훨씬 이득이라는 점을 마을 사람들에게 설득해 나갔다. 비록 작은 시도였지만 동네 사람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이 작은 성공을 기반으로 1929년 구인회는 허남석과 함께 지수협동조합을 조직하게 된다. 마산과 진주 등지를 돌아다니며 석유와 포목, 비누, 잡화 등을 공동구매해 주민들에게 팔기 시작했다. 구인회가 본격적으로 포목의 유통경로와 마케팅 기법을 체득하게 된 것도 이때부터이다. 그러자 지금까지 쌓아놓은 무라카미의 사업 기반은 송두리째 흔들리고 만다. 기왕이면 값싸고 실속 있는 조선 사람의 물건을 많이 팔아주자는 여론이 널리 퍼져 나갔던 것이다.

 

구인회는 이때 처음으로 주판알을 튕기며 수입과 지출 항목을 장부에 빼곡히 적어 나간다. 훗날 시가총액 4조원(LG 그룹 분리 전) 대의 엄청난 기업군이 형성되는 회사의 첫 장부를 창업자 구인회는 이렇게 기록해 나갔다. 얼마 후 구인회는 포목상을 열게 되는 데 그 때까지만 해도 그는 자신이 머잖아 보다 혁신적인 마인드로 사업을 하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시대를 불문하고 '기업(起業, 업을 일으키는 것)'이란 누적의 산물이라고 하던가? 구인회는 돈을 번 것보다 더 큰 것을 얻게 된다. 첫째, 경쟁사가 누군지 파악하는 눈을 갖게 되었다. 둘째, 바위를 겨냥한 계란이 경쟁관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어떤 전략을 세워야 할지 알게 되었다. 셋째, 유통 및 마케팅에 대해 초보적이나마 가장 밑바탕이 되는 지식을 얻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그는 이 작은 경험을 통해 기업 경영에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재무와 회계 관련 지식을 얻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은 협동조합을 그저 '운영' 수준이 아닌 '경영'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데 크게 이바지했고 그의 기업가적 사고 및 행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대기업이든, 조그마한 구멍가게든 규모와 상관없이 경영엔 이 같은 요소들이 작용한다. 구인회는 처음부터 매우 소중한 사업 경험을 협동조합 운영을 통해 터득해 나갔던 셈이다. ⓒ인문경영연구소, 전경일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