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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관리/LG,GS동업비결_구씨,허씨이야기

구씨ㆍ허씨의 운명적 만남

by 전경일 2013. 5. 8.

구씨ㆍ허씨의 운명적 만남

 

부산에서의 야심찬 첫 도전이 무참히 실패로 돌아가고 사업에 대한 열의가 시들해져 갈 무렵 구인회에게 사업 전반을 바꿀 변화가 찾아온다. 기업가로서의 인생에 새로운 전기이자 활력을 불어 넣는 계기가 찾아온 것이다. 오늘날 LG와 GS 그룹의 전신인 그룹 분리 전 LG의 구씨ㆍ허씨 양 집안 간 동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이로써 두 집안은 사돈 관계를 넘어 기업가로서 화학적 결합을 이루게 된다.

 

1946년 1월 어느 날, 부산에서 사업 구상을 하던 구인회에게 기별도 없이 장인 허만식의 6촌뻘인 허만정이 불쑥 찾아온다. 그 옆에는 한 젊은이가 다소곳이 서 있었다. 허만정은 만석꾼 거부(巨富)로 구인회와 마주 앉자마자 다짜고짜 찾아 온 목적을 밝힌다. 구인회가 구상하는 사업의 발전 가능성을 간파한 그는 다짜고짜 놀라운 제안을 한다. 하지만 목소리나 어조는 한없이 낮았다.

 

 

"사돈, 내 사돈의 사업역량을 익히 알고 있는 터라 오래 전부터 생각해 온 일이니 청을 하나만 들어 주소. 이 아이는 맡기고 갈 터이니 밑에 두고 사람 만들어 주소. 내 사돈이 하는 사업에 출자(出資)도 좀 할 생각이오."

 

허만정은 얼마 전 일본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3남 허준구의 경영수업을 부탁하고 사업자금을 내놓으며 그 자리에서 동업을 제안한다. 구인회는 고향의 만석꾼인 사돈에게서 그런 인정을 받는 것이 겸연쩍었으나 한편으로는 기분 좋았다. 금의환향을 한다고 해도 고향에서는 쉽게 인정받기 어려운 게 세상인심인데, 고향의 실력자가 찾아 와 목전에서 자신의 사업적 수완을 인정하고 있지 않은가! 더구나 누구보다 어려운 사돈 사이에 사업 제안까지 하면서 말이다.

 

구인회는 사돈의 요청에 그 자리에서 허준구를 흔쾌히 받아들인다. 허준구는 첫째 동생 구철회의 맏사위였다. 구인회는 사돈이 제안한 투자도 흔쾌히 승낙한다. 이때 만석꾼인 허만정이 출자한 금액은 조선흥업사 자본금의 4분의 1에 달한 거금이었다. 한쪽은 사업가로, 다른 한쪽은 벤처투자자로 운명적인 만남이 이루어진 것이다. 25년 전 허씨 집안의 만석꾼 허준이 기증 한 땅에 세운 학교에서 공부한 구인회가 이번에는 허씨 집안의 투자를 받은 것은 물론, 아들까지 맡아 사업 동반자로 키워 나가게 되는 실로 뜻 깊은 순간이었다.

 

이 일을 계기로 구씨ㆍ허씨 간에는 사돈으로부터의 자본참여와 인적 투여의 파트너십이 형성 된다. 사돈에서 동업자로 새로운 관계가 형성되고 발전하게 된 것이다. 훗날 럭키금성의 발전에 혁혁한 공을 세우며 그룹 통합 부회장 및 금성전선 회장까지 지내다 나중에 LG건설 명예회장이 된 허준구의 나이가 불과 스물넷일 때였다. 허준구의 합류와 더불어 뒤에 참여한 허만정의 2남 허학구와 4남 허신구까지 합하여 두 집안은 바야흐로 가족경영에 박차를 가한다.

 

그런데 이 두 집안의 결합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동업의 원칙은 차치하고라도, 초기 스타트 업(Start-Up) 컴퍼니인 락희가 집안 내에서 고급 인력을 공급받음으로써 창업 초기부터 인력 문제를 해결하고 맨 파워에서 우위를 점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는 기업이 커나가는데 인력 수급 면에서 대단히 중요한 전기가 된다.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을 수족처럼 쓸 수 있다는 것, 그것은 구인회의 복이자 동업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의 혜택이었다.

 

이후 양 집안 사람들은 LG를 훗날 그룹으로 키우는데 혁혁한 공을 세우게 된다. 칭기즈칸이 창업 초기에 형제들과 손을 잡고 세력을 키워 나갔듯이 자본과 인력의 결합, 기업가 마인드와 창업 정신의 결합이 이루어 낸 강력한 맨 파워가 LG의 사업을 이끈다. 사업 규모에 있어서도 상점을 넘어 기업 꼴을 갖추는 임계치에 서서히 오르게 된다. 이 조직에는 임금에 대한 부담도 전혀 없고, 따로 동기부여가 필요치도 않았다. 모두가 자발적 창업 과정을 내면에 품고 있는 기업가 정신으로 똘똘 뭉친 사람들이었다. ⓒ인문경영연구소, 전경일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