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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관리/LG,GS동업비결_구씨,허씨이야기

사소한 인연이 불러 온 대변화

by 전경일 2013. 5. 10.

사소한 인연이 불러 온 대변화

 

여러 동업자들이 의욕적으로 달라붙었지만 처음 기대와 달리 조선흥업사의 사업은 별로 신통하지 않았다. 잘 될 줄 알았지만 하루하루 지지부진해지자, 구인회는 난감했다. 그렇다고 수장이 의욕 잃은 모습을 보일 수도 없었다. 모두가 실의에 빠져 있을 때, 오늘날 LG그룹의 윤곽을 드러내게 해 준 우연한 만남이 찾아온다. 그 행운은 놀랍게도 당구장에서 찾아왔다.

 

사업이 신통찮을 무렵, 무료한 시간을 보내고자 동생 구정회가 당구장에 들락거리다 흥아화학공업사(興亞化學工業社)의 화장품 기사였던 김준환을 알게 되었다. 그를 통해 구정회는 흥아 화학이 도청 상공과(道廳 商工課) 지정 업체에 크림과 머릿기름 등 화장품을 공급한다는 정보를 얻게 된다. 구정회는 즉시 이 정보를 형인 구인회에게 알린다.

 

구인회가 인생에서 처음으로 화장품 얘기를 들었던 해는 그의 나이 불혹인 41살일 때였다. 원숙한 사업가로서 사업 전반을 읽고 미래를 내다보는 눈이 어느 때보다 확대되었을 시기였다. 구인회는 쉽게 스쳐 지나 갈 수 있는 이야기에도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그 순간 그는 머릿속에 전깃불이 번쩍 들어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가치 발굴의 안목이 작용한 것이다.

 

LG가 훗날 대기업의 반열에 오르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한 귀인을 꼽으라면 이때 당구장에서 만난 김준환일 것이다. 사업은 사람과의 인연이 빚어내는데, 그가 누구냐에 따라 화를 불러 오기도 하고 복을 불러오기도 한다. 복을 불러 오는 이를 가리켜 귀인(貴人)이라고 부른다. 성공하는 기업가는 귀인을 만나게 되고 결정적인 시기에 그의 도움을 받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람 복'이 있어야 사업을 한다는 말은 예나 지금이나 진리이다.

 

구인회가 알게 된 흥아화학공업사는 일제 강점기에 쿠니가다라는 일본인이 경영하던 것을 해방과 함께 종업원이었던 박성수라는 사람이 인수해서 운영하는 조그마한 공장이었다. 해방 전에 존재했던 귀속사업체(歸屬事業體)의 인수자로는 종전 전에 근무하던 한국인 종업원이 꽤 많았다. 그 대표적인 예가 오늘날 선경(SK), 한국화약(한화), 두산 같은 회사였다. 흥아 화학도 규모는 작았지만 그런 예에 해당된다. 공장에서는 화장 크림, 도란(Dohran, 무대화장용 분), 머릿기름 따위를 만들고 있었다. 구인회는 박성수에게 물었다.

 

"만드는 것을 공장에서 하면 파는 것은 어떻게 합니까?"

 

박성수는 도청 상공과에서 허가를 내 준 업체가 판매 대리점을 운영한다고 대답했다. 구인회는 무릎을 쳤다.

 

'그렇구나! 아마스 구리무(天津 크림)는 이렇게 만들어 지고 이렇게 팔리는구나!'

 

 

구인회는 미군정 치하의 부산에서 늘어나기 시작하는 미용 수요를 동물적 감각으로 간파한다. 사업 구상을 마치고 그는 1946년 2월 동생 구정회와 허윤구를 데리고 흥아 화학을 찾는다. 그 자리에서 거래를 튼다. 유통은 70만원어치 크림을 서울로 보내면, 현금으로 1백 만 원을 받을 수 있는 사업이었다. 30 퍼센트의 유통 마진이 그대로 구인회의 손 안에 굴러 떨어지는 것이었다. 서울에는 창신동에 구입해둔 가옥이 있고 학병에 갔다 온 구태회와 구정회가 살고 있어서 크게 도움이 됐다.

 

포목점을 하던 구인회가 바야흐로 화장품 업계에 뛰어들게 된 셈이다. 포목점, 수산물 사업 경험으로는 생소하기만 한 화장품 사업에 뛰어 들어 과연 승산이 있을지, 쏟아져 들어오는 외제와 경쟁해서 이길 수 있을지 많은 의문이 들었다. 그러나 구인회의 머릿속에는 한 가지 확신이 들어 차 있었다. 지구상에 여성이 존재하는 한 화장품 시장은 영원할 것이다. 그 시장을 먼저 뛰어들어 움켜잡지 못하면 평생 후회하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이런 예측과 결단이 적중해 훗날 LG는 누구도 잡지 못한 기회의 앞 얼굴을 잡게 된다. ⓒ인문경영연구소, 전경일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