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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관리/구씨이야기 허씨이야기(동반성장)

헌신, 참여, 혁신이 들끓는 용광로 정신

헌신, 참여, 혁신이 들끓는 용광로 정신

 

LG 초기 역사상 부산공장에서 '럭키크림'을 만들던 시기야말로 창업자와 그의 동료들이 가장 다이내믹하게 활동했던 시기였다. 생산현장에 투입된 구인회는 물론, 금전을 관리한 허준구, 섭외업무를 하던 구정회 등 모두가 한 덩어리가 되어 뛰었다. 이들은 빠른 성장을 추구하기 위해 일에 매진했고 성장 가도에 있는 회사를 본궤도에 올려놓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했다. 그 시절 전형적인 벤처기업이었던 셈이다.

 

부산에서 교편을 잡던 구자경도 이따금 프레스 일을 도와야 했고, 미군 수송부대에 근무하던 차남 구자승도 틈틈이 스테아린 산을 젓는 일을 해야 했다. 부산중학교에 갓 들어간 구자두도 회사의 잔심부름은 물론, 밤중에 숯불을 피우고 졸린 눈으로 스테아린 산을 저어야만 했다. 공장장 구자경과 영업을 맡은 허신구가 실무 2인자로서 달리는 말에 채찍을 가하며 질주하게 된다.

 

이 무렵 창업자 구인회는 무엇을 했을까? 현장을 지키고 앉아 묵묵히 일만 했다. 아무런 불평 없이 일 년을 하루같이 일에 몰두했다. 당시 모두가 하나같이 락희에 달라붙어 뛰고 있을 때, 그는 미군 야전용 파커를 입고 신나게 크림을 만들고 나서 리어카에 싣고 나가 영업을 한 적도 있다. 플라스틱 사출기를 들여다 놓고 신기해하며 이리 저러 기계를 조작해 보기도 했다.

LG 초기 역사에는 허준구 말고도 다른 허씨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허학구는 락희화학 전무로 일하면서 구자경 상무와 함께 부산 범일동 공장에서 먹고 자며 밤낮으로 일하는 통에 막일꾼이나 다름없는 생활을 했다. 밤에도 비좁은 다다미방에서 군용 슬리핑백 하나로 새우잠을 자야했고 새벽 5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빗은 천개 단위로, 칫솔은 5백 개 단위로 포장을 해야만 했다. 아침이면 상인들이 공장 문 앞에 들이닥쳐 물건을 사갔다. 그렇게 모두들 한 생각으로 열심이었다.

훗날 맏아들 구자경이 그룹 회장이 되었을 때, 그는 젊은 시절 공장에서 보낸 온갖 궂은일을 통한 고생이 가장 큰 힘이 되었다고 고백한 바 있다. 그만큼 LG 창업 1세대들은 혹독한 경영수업을 밑바닥에서부터 쌓아 갔던 것이다. 그런 부지런한 습관 때문이었을까? 구자경은 회장 시절, 일과 전인 이른 아침에 회의를 여는 '조기소집형' CEO로도 유명했다. 구자경은 창업 시기 고된 과정을 이렇게 회고하기도 했다.

 

"그때부터 나에게 맡겨진 일은 고향 선배 한 분과 함께 새벽마다 몰려드는 상인들에게 제품을 나눠주고 낮 동안에는 종일 공장에서 일하다가 밤이면 하루씩 번갈아 가며 숙직을 하는 것이었다. 추운 겨울이면 판자 방에서 군용 슬리핑백 속에 들어가 몸이 녹을 때까지 잠을 설치곤 했는데 이 생활이 무려 4년 가까이 계속되었지만 창업회장께서는 고생한다는 위로의 말 한마디 없으셨다. 우습게도 삼 십 줄에 들어선 그때의 나의 간절한 소망은 창업회장으로부터 칭찬 한마디 들어보는 것이었다. 그러나 창업회장께서는 단지 겉으로 표현만 하지 않았을 뿐 자식의 이런 심정을 헤아리고 계셨다. 병상에서 운명을 앞두고 투병하시던 어느 날 이렇게 나를 위로하는 것이었다.

 

"너, 나 원망 많이 했제. 기업을 하는 데 가장 어렵고 중요한 것이 바로 현장이다. 그래서 본사 근무 대신에 공장 일을 모두 맡긴 거다. 그게 밑천이다. 자신 있게 키워 나가라."

 

병상을 지키고 선 나에게 말하신 창업회장의 이 한마디는 결국 유언이 되고 말았다. 그 후 내가 그룹을 책임져야 하는 2대 회장으로 취임하여, 그나마 대과 없이 오늘에 이를 수 있었던 것도 하나같이 창업회장의 귀한 가르침 덕분이 아닐 수 없다.

내가 최고경영자로서 어려운 의사결정을 내릴 때마다 창업회장의 존영을 바라보는 버릇이 생긴 것은 과연 창업회장이 살아 계셨다면 이럴 때 어떤 결정을 내렸을 것인가 하는 생각과, 창업회장과의 과거 일을 되새겨 봄으로써 조금이라도 흐려진 지혜를 밝힐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절박한 심정 때문이었다."

 

그런 까닭에 구자경 회장은 특히 벡텔사의 CEO가 기억에 남는다고 하는 것인지 모른다. 벡텔사는 미국 대륙 횡단철도 공사를 시작으로 일어난 회사이다. 창업자인 벡텔1세는 기차의 객차 칸을 집으로 삼고 그 속에서 가족과 생활하며 옮겨 다니는 등 갖은 고생으로 사업을 일으킨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LG의 창업자들은 동고동락의 과정을 거쳐 무쇠처럼 단련되었다. 그들은 열심히 일했기에 회사를 그룹으로 발전시킬 수 있었다. 여기에는 무엇보다 강한 헌신, 참여, 혁신의 용광로와 같은 정신이 함께 한다. 이들은 모두 가족 경영의 참여자들이자 '리틀 창업자들'이었다. 하나같이 자신의 특별한 기여와 헌신으로 그룹 성장의 밑바탕이 됐다. 구씨ㆍ허씨의 한결같은 동업 정신은 이처럼 초창기 LG의 눈부신 성장의 밑바탕이 된다. ⓒ인문경영연구소, 전경일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