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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경영/해녀처럼 경영하라

물과 뭍의 멀티 플레이어, 해녀

by 전경일 2013. 12. 5.

물과 뭍의 멀티 플레이어, 해녀

해녀들의 세계는 1인 4역, 5역의 프로세계이다

 

바다는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곳이다. 가냘픈 여인들은 파도 일렁이는 거친 바다를 무대 삼아 물질하면서 삶을 일궈 낸다. 자칫하다간 목숨을 빼앗아 버리는 죽음의 바다지만, 생존에의 문제 때문에 해녀들은 물질을 그만둘 수 없다. 그러기에 누구보다도 삶에 악착같다. 그런 도전 의식은 해녀들의 세계를 프로들의 세계로 환치 시킨다.

 

해녀들의 세계가 얼마나 고된 프로들의 세계인지는 해녀의 노동을 살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해녀는 바다 속에서 물질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자녀양육, 물긷기, 밥하기 등 주부로서 집안의 모든 일을 꾸려나간다. 그것도 밭일과 병행한다. 채취한 해조류를 말리거나 정리하는 것도 해녀인 여성의 몫이다. 밭에 나가 일을 하거나 집안일을 하다가도 물때가 되면 도구를 챙겨들고 모두들 해변에 모여 물질을 한다. 1인 4역, 5역을 억척스럽게 소화해 내는 것이다.

 

예전에 해녀들은 임신 중에는 물론이고 산달(産月)이 닥쳐도 웬만해선 물질을 그만두지 못했다. ‘친정집보다 낫다’는 바다 소득이 아까워서 그렇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삶의 환경이 척박했기 때문이다. 하루 종일 뛰지 않고는 삶이 제대로 영위될 수 없던 게 제주도의 삶의 조건이었다. 그러다보니 더욱 치열하게 삶과 대면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해녀 삶의 애환><사진자료: 해녀박물관>

해녀들은 한 달에 약 15일간 물질을 하는데, 물때가 좋은 일주일간 연이어 일한 후 약 8일간 쉬고 다시 일주일 정도 물질을 한다. 썰물이 가까워지면 밭일을 하다가도 물때에 맞춰 바다 밭으로 내달린다. 마치 물때에 맞춘 생체 시계가 따로 있는 듯하다. 물때는 삶에 들고 나는 때를 알린다. 이렇게 무자맥질해서 해산물을 캐내고, 가계에 보탬을 가져왔다. 그런 의미에서 뭍의 밭과 바다밭을 부단히 오가며 농사를 짓는 멀티 플레이어들인 셈이다.

 

나아가 원정 물질도 억척스레 해 돈을 모으고 스스로 혼수를 장만하기도 했다. 해녀 마을에 물질해서 밭을 사고 송아지를 사들여 집안을 일으켜 세웠다는 얘기가 많은 건 이런 배경 때문이다.

 

해녀들의 일거리는 실로 엄청나다. “제주의 남자들은 집에서 애나 보면서 한가히 놀며 지낸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해녀들의 고단한 삶을 극명하게 대비시킨 말이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남자들의 일이 적은 건 아니다. 그 만큼 제주도는 척박한 삶의 조건을 지녔다. 해녀들의 삶이 일의 연속이라는 것은 힘겨움의 농도가 그 어느 지역의 여인네들보다 진하다는 것을 뜻한다. 자신의 삶을 소에 비유하는 민요는 삶에 그을린 그들의 모습을 한눈에 보게 한다.

 

불 탄 밭에 소 닮은 년아

무슨 벌이로 품팔아 먹으리

모진 벌이로 품팔아 먹는다.

 

거친 삶의 조건에서 1인5역을 해내야만 했던 제주 해녀의 절박한 삶이 느껴진다. 소처럼 일해야만 먹고 사는 척박한 경영환경에서 해녀들은 부지런히 살 수 밖에 없었다. 그것이 생존에의 조건이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함께 사는 세상을 위해 마을공동체를 이끌어 나갔다. 그러기에 그들은 물과 뭍의 밭을 오가며 “바다는 매양 우리집 뜰과 같으나 같은 밭에서 일을 하며 따로 살아야하네(海國都是吾庭際 同田爲業各生涯)”라고 노래했는지 모른다. 마치 새벽부터 혼신을 다해 뛰는 경영 리더의 투혼을 보는 듯하다.

 ⓒ인문경영연구소, 전경일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