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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 강의/이순신 | 경제전쟁에 승리하라

전략적 판단은 모든 것에 우선한다

by 전경일 2014. 10. 10.

전략적 판단은 모든 것에 우선한다

 

성공하는 기업들, 초우량 기업의 조건은 무엇일까? 그것은 시장에서 벌어지는 매 경쟁국면마다 승리를 이뤄낼 조건을 찾고, 이를 실현해 낸다는 점이다. 여기서 말하는 보다 큰 승리는 단순히 영업력 강화를 통한 일시적 시장점유율이나 매출 상승만을 뜻하지 않는다. 보다 궁극적으로는 경쟁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남다른 전략적 우위를 갖는 것을 뜻한다. 이 점에서 개별 전투의 승리와는 분명 차이가 있다.

 

장군의 핵심경쟁력 중 하나는 전략우위에 있고, 이는 전략실행의 기초를 이룬다. 예컨대, 조선 정부는 수시로 전략적 판단 착오를 일으킨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10개월 전, 조정에서는 수군을 폐해야 한다는 논란이 인다. 육군 장군 신립(申砬)이 주장한 방왜육전론이 그것이다. 삼면이 바다인 나라에서 지상군 위주로만 전략을 짜겠다는 것이었다. 바다에서 물밀듯 몰려오는 적을 육지에 끌어들여 화를 자초하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장군은 곧 수군 폐지의 부당성과 수군의 효용성을 알리는 주장을 알리며 분명한 반대의 입장을 취한다.

 

바다에서 오는 적을 막는 데는 수군이 아니고 누가 한단 말입니까? 수전, 육전의 어느 한 쪽인들 없앨 수 없습니다.

 

육지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제해권(制海權)을 상실하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이처럼 해양지배적 판단을 한 장군은 싸움의 거점을 적이 닿기 전, 적이 다가오는 바다 한가운데로 정한다. 그럼으로써 전란의 피해를 줄임과 동시에 근 100여간 일본 전국시대를 통해 육지전, 백병전에 능한 왜군의 경쟁력을 무력화시키고자 했다. 판을 바꾸어 놓고 적을 상대한 것이다. 장군이 평소 해전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은 해전 경쟁력을 통해 육전 승리의 조건을 만들려는 차원에서 나온 것이다. 장군은 해양 경영전략을 이렇게 간파했다.

 

왜놈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해군인데, 해군으로서 싸움에 나서는 자가 하나도 없고 감사(監司)에게 공문을 보내어도 감독할 생각을 하지 않으며, 군량조차 의뢰할 길이 없어, 온갖 생각을 해 봐도 조처할 도리가 없으니, 해군의 일은 부득이 폐하게끔 되었습니다. 순신(舜臣) 저 같은 한 몸이야 만 번 죽어도 아까울 게 없지만은, 나라 일을 어찌하오리까.

 

그런데도 조정은 조선수군이 약하니 폐하라고 명했다. 조정의 이 같은 전략부재는 원균이 칠천량 해전에서 대패한 후 다시 장군이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되고 나서도 반복된다. 이때 조정에서는 우리 수군이 무척 약하여 적을 막아내지 못할 것이라 하여 장군으로 하여금 육지에서 싸우라는 명령을 내린다. 전략개념으로 보았을 때, 조선수군이 없다면 적군의 기동력은 돛에 바람을 안은 듯할 테고, 서해를 끼고 북상하면 서울이 순식간에 유린되는 상황은 피할 길이 없다. 명량해전에 앞서 장군이 선조에게 올린 상소문 중에 나오는,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전선이 남아있나이다. 죽을힘을 다해 막아 싸운다면 오히려 할 수 있는 일입니다(令臣戰船尙有十二 出死力拒戰 則猶可爲也)”라는 저 유명한 결의는 이런 배경에서 나오는 것이다. 새로 판을 짜고 전열을 가다듬어 적과 맞서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명이었다.

 

임진년 이후로 적이 감히 충청, 전라 등 남방을 겁탈하지 못한 것은 실상 우리 수군이 그 세력을 막았기 때문인데, 이제 만일 수군을 폐하면 적이 반드시 호남을 거쳐 한강으로 올라 갈 것이요, 다만 순풍에 돛을 한 번 달면 될 것이니, 그것이 신이 두려워하는 바입니다.

 

이순신이 올린 장계는 서울로 올라간다. 장군이 이때 피력한 전략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하나는 수군의 존재, 즉 존속가치에 대한 것이다. 그 다음은 수군효용론이다. 임란 전 조정이 방왜육전론을 주장한 것은 전략적 착오더라도, 미약한 군세로 적을 대적하기 위해 나름 선택과 집중의 원리를 취하려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수군·육군 어디도 폐할 수 없다는 장군의 주장이다. 90년대 말 외환위기를 겪으며 우리는 너무 흔하게 선택과 집중이라는 말을 써왔다. 서구 경영 컨설팅 회사들이 무차별적으로 쏟아내는 무책임한 수사(修辭)가 경영의 만병통치약인양 받아 들여져 왔다. 선택을 통해 기업의 군살을 빼고 선택된 자원에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런 미명 하에 국내 유수 기업들은 외국 자본에 헐값에 팔려 나갔고, 기업들은 구조조정의 칼을 빼들었다.

 

지난 15여 년간 대한민국 경영계를 지배한 이념인 구조조정의 광풍이 불었지만, 그간 세계적인 기업과 맞먹는 초우량기업이 대한민국에서 탄생했다는 얘기는 들어 보지 못했다. 선택과 집중이 아닌, ‘집중화된 선택을 취해야 한다. 임란이 일어나기 10개월 전인 15917월 조정의 이 같은 군사운용 흐름에 대해 장군은 육전, 해전 다 버릴 수 없지만, 특히 전략상 해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집중화된 선택을 해야 한다고 피 끓는 호소를 한다. 양쪽은 서로 순망치한과 같은 관계이기 때문이다. 전술적인 면에서는 전투력의 각 요소를 적절하게 결합하여 결정적인 시간과 장소에 우세한 전력을 집중하는 것을 말한다. 수륙 양쪽을 다 살리면서도 기동성과 상호 협동성을 발휘해 대처능력을 높이는 것은 장군의 군사경영의 원칙을 이룬다. 오늘날 복잡계 경영에서 기업들에 필요한 것은 이분법적·분절형 사고가 아니라 통합적 사고여야 한다. 어느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하나를 내버려야 하는 사고보다는 다 같이 살릴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게 경영의 궁극적인 해법이다. 우리는 너무나 쉽게 남의 말에 솔깃하다. 글로벌 자본이 노리는 것도 바로 이런 것 아닐까. ⓒ인문경영연구소, 전경일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