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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인문역사/남왜공정

막부의 공모(共謀)와 왜구 지원

by 전경일 2017. 2. 10.

막부의 공모(共謀)와 왜구 지원

 

일본 막부시기, 무용(武勇)을 과시하며 할거한 봉건 영주들은 더 많은 토지와 인민을 차지하기 위해 해적단을 해외로 내몰았다. 그리하여 왜구는 고려를 비롯해 명나라와 동아시아 여러 국가에 출몰해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재난을 가져왔다. 나아가 일본 봉건 영주들과 상인들은 해적떼를 지지하고 조직하기도 했다. 왜구는 이처럼 일본 지배계급과 연관된 해적떼이며 침략 집단이었다. 왜구는 우연적이고 일시적으로 발생한 약탈집단이 아니라, 일본 봉건제도와 상업자본의 발전이 왜곡되며 나타난 필연적 현상이자, 침략의 첨병이었던 것이다.

 

1380년대 중반 이후에 접어들면 왜구는 점차 줄어들고 있다. 여기에 무슨 까닭이라도 있는 것일까? 이는 일본 내 민간 활동인 잇키(一揆)’야토(夜討해적(海賊) 금지조항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본래 잇키는 이치미도신(一味同心)이라는 연대감을 가진 사람들의 집단이었다. 이들은 일상생활에서 이룰 수 없는 일상성을 초월한 문제나, 현실적 수단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불가능한 문제에 맞닥뜨렸을 때에 잇키를 결성했다. 때문에 현실적 조건을 뛰어넘는 존재가 되고자 했다. 잇키는 일본 사회 내부의 문제를 풀기 위해 만든 것이지만, 그 간접 여파로 왜구 문제까지 규제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일종에 민간 차원의 자성적 움직임이라고나 할까?

 

왜구가 감소한 원인으로 잇키는 이렇게 일부 작용하고 있다. 비록 방법은 미신적이며 종교적 성격을 띤 것이지만, 왜구를 금구시키는 데에는 나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셈이다. 일종에 요즘 시민단체 활동과 같은 것으로, 현재 일본에서 벌어지고 있는 우경화 경향에 대해 양식 있는 시민사회 단체들이 자성의 목소리를 요구하고 있는 것과 성격이 같다 볼 수 있다. 이 점에서 일본 우경화의 해법으로 일본 내 평화 지향의 시민사회 단체 활동을 기대해 본다.

 

오늘날 왜구는 가해자이거나 피해자로서 한중일 각국의 자국사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그런 면에서 불행한 과거지만, 역으로 동아시아 공존의 해법을 찾는 열쇠가 될 수도 있다. 왜구 문제가 동아시아의 미래사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은 이미 20세기 들어 우리가 지난한 고통 속에서 경험해 본 바다. 더구나 이들 근대 왜구“2차 대전을 통해 세계사적인 문제로까지 확대되었다는 점에서 보다 근본적인 해법을 찾아야만 한다. 그럴 때 미래의 불안요인을 사전에 제거할 수 있다.

 

근대 일본이 지향한 제국주의의 뿌리에는 항시 왜구 근성이 내재되어 있다. 일본이 생산해 낸 왜구 시스템은 실로 면면(綿綿)한 역사성을 지니고 있다. 왜구는 특히 한중 양국사와 이 지역 인민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쳐왔다. 왜구는 크거나 작은 도적떼의 잦은 출몰이 끝내 국가적 전란을 예고하고 확산·증폭시켜 왔다는 점에서 매우 중대하게 취급해야만 한다. ‘왜구문제가 과거사가 아니라, 21세기 생존 문제로 다급하게 다가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왜구 근거지 및 침구도

 

일본 내 왜구의 근거지가 어디인가에 대해서는 지금도 많은 이견이 있다. 대개 막부의 통제력이 약했던 일본 연해변의 삼도(三島)를 가리킨다. 삼도는 대마도(對馬이키(一岐마쓰우라(松浦) 세 곳을 가리킨다. 혹은 여기에 시모노세키(下關, 당시 亦間關)를 넣기도 한다. 근처의 고토(五島히라도(平戶북큐슈(北九州시코쿠(四國) 등지의 해적까지 포함해 삼도(三島)왜구로 통 털어 일컫기도 한. 지도 왼쪽 위에서 보는 것처럼 일본 서해 연변은 왜구의 직접적인 본거지였다.

 

오늘날 일본은왜구 진출지도라고 칭하고 있지만, 왜구의 동남아시아 침범도를 보면 한반도, 중국대륙, 일본열도를 비롯해, 멀리 러시아의 연해주와 동남아시아까지 약탈 무대로 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와 관련되어서는 특히 고려의 경우, 전 해역이 왜구 침구로 인해 국가의 존립 자체가 어려울 정도였다.

 

오랜 세월 왜구는 한중일 관계사에서 바다를 매개로 벌어지는 약탈사의 주요 측면을 이루며 삼국 관계를 바다로 확장시켜 바라보는 시점을 제공하고 있다. 또한 각기 자국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쳐왔다. 역사상 이처럼 바다를 배경으로 오랫동안 잔학무도하게 약탈을 한 특이한 존재도 없을 것이다. 왜구의 침구 지역은 이후 일본 제국주의 침탈 시기 침략과 점령을 했던 지역과 많은 부분 겹쳐진다. 과거사가 현재사와 분리될 수 없는 관련성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는 역사적으로 동아시아 바다가 왜 안정되고 평화스러울 수 없었는지에 대한 뚜렷한 방증이 되기도 한다. 일본 내 극우주의가 발호하고 있는 이즈음, 일본은 과거와 달리 이 지역에서 평화의 길을 선택하게 될까? ⓒ전경일 인문경영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