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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의 CEO 세종] R&D만이 살 길이다 고려를 대신해 조선이 창업되게 된 배경에는 피폐한 국가 경제가 큰 몫을 차지했다. 고려는 토지 정책에 실패해 국민경제가 피폐해졌고, 농업 생산성이 극도로 악화되었다. 고려의 국가 경영층들은 나라가 이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효과적인 개혁을 이루어내지 못했다. 이것이 고려가 망한 이유의 하나였다. 따라서 조선으로써는 창업 후 생산성 극대화 방안이 절대적으로 요구되었다. - 사실 예나 지금이나 이러한 실질적인 성과를 국민들은 기대하고 있지 않은가! - 그리하여 태조는 먹고 입고 사는 소위 생활에의 문제와, 교육문제가 신생 조선이 해결해야 할 가장 근본적이고, 근원적인 문제라고 생각하고 여기에 관심을 기울였다. 태조 이성계가 “농상(農桑)은 왕정(王政)의 본(本)이며, 학교는 개화의 원(原)이다.(태조 4년 1.. 2009. 2. 3.
[창조의 CEO 세종] 끈기와 노력이 함께 하면, 꿈은 반드시 이루어 진다(2) [편집증 환자들이 결국 뭔가를 이루어 낸다] 이렇듯 세종 자신의 노력과 각 프로젝트 진행 과정상에 드러나는 리더십은 실로 세종 자신뿐만 아니라, 신하들에게도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대표적인 예가 박연의 경우였는데, 그는 세종에게 발탁되어 관습도감 -조선 초기 음악을 가르치던 기관 - 의 제도라는 직책을 맡아 평생 음악에 관한 일을 맡아 보았다. 그는 “앉으나 누우나 늘 가슴 사이에 두 손을 포개고 악기를 다루는 시늉을 하고 입 속으로는 율려(12율) 소리를 내곤 하였다.”고 한다. 오늘날 기업에서 얘기하는 ‘편집증 환자만이 살아남는다.’는 말이 연상될 정도로 박연이 음악 제정 프로젝트에 기울인 정성은 실로 놀라웠고, 이에 대한 집중력은 가히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이러기를 십여 년 만에 그는 드디어 ‘.. 2009. 2. 3.
[창조의 CEO 세종] 끈기와 노력이 함께 하면, 꿈은 반드시 이루어진다(1) 우리 역사에서 세종만큼 확고한 국가 경영 마인드와 강한 의지로 국정을 밀고 나간 CEO도 없었다. 조선 초에는 실로 국가다운 국가를 만들기 위한 대역사(大役事)가 가장 중요한 시대적 요청이었고, 이러한 시대적 요구를 반영해 세종은 신생 조선의 골격을 당대에 온전히 갖춰 놓게 하는데 성공했다. 그것은 실로 한 사람의 시대에 이루어지기에 믿어지지 않는 위대한 업적이었다. 모든 다양한 분야에서 동시에 복합적으로 수많은 사업을 추진해 나가며 성공한 예는 일찍이 세계 역사에서 찾아 보기 매우 힘들다. 세종이 재임했던 32년 기간 동안 정력적으로 추진했던 사업들은 국가와 민생을 위해 하나같이 중요한 국가 인프라 구축에 해당되는 것들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같이 단기간에 이룩될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따라서 기간의.. 2009. 2. 3.
[창조의 CEO 세종] 성공이 쉽지 않음은 병이다 [성공을 측정하라] 세종은 실무형 전문가들을 발굴해 일을 맡겼다. 그래야 결과도 빠르고, 확실했다. 그는 새로운 인재들을 집현전과 여타 부서로 배치시 그들에게 ‘우리는 이미 성공한 팀이며, 너의 능력은 이 어려운 과업을 충분히 해 낼 만큼 인정받았다’는 점을 부각시키고자 했다. 따라서 누구도 낙오자나, 회의론자가 있을 수 없었다. 또한 세종은 그들 스스로 자신의 성공을 관리하도록 했으며, 자신의 능력에 대해 한계를 긋지 않도록 했다. 세종의 이러한 점은 실제 그들의 성과에 있어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그리하여 인재양성의 총사령관인 세종은 스스로 자기 일에 한계를 모르는 철의 두뇌 집단이자, 각 프로젝트를 위한 강력한 테스크 포스팀(TFT)을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것이다. 세종시대 음악업적에 절대적인 역량.. 2009. 2. 3.
[창조의 CEO 세종] 어떤 일이 있어도 경영 목표는 달성 한다! 세종이 신생 조선의 CEO가 된 다음에 조선에 달라진 것은 무엇이었을까? 한마디로, 그것은 ‘변화’였다. 과거의 형식뿐인 ‘위민(爲民)’ - 세계 어느 역사를 봐도, ‘국민을 위해!’라는 것은 정말 오래된 슬로건이 아닌가! - 은 이제 실질적 모습으로, 실생활 속에 구현되어야만 했다. 이것이 바로 세종 정부의 미션이었다. 세종이 추구한 ‘변화’란 백성들에게 새로운 생활 패턴을 제시하는 것을 의미했고, 한편 가장 중요하게 ‘삶의 질’을 개선시켜야 하는 것이었다. 세종이 이렇듯 삶의 환경을 개선하지 못한다면, ‘생생지락(生生之樂)’의 세상은 고사하고, 백성들로부터 이전 왕조인 고려에 대한 ‘향수’마저 털어 버릴 수 없는 것이었다. 따라서 경제적으로 풍요롭게 한다는 것은 세종으로서는 진정 ‘민주(民主) 경영’.. 2009. 2. 3.
[창조의 CEO 세종] CEO는 균형이 있어야 한다 (2) [‘균형 잡기’는 CEO의 필수과목] 세종의 이러한 ‘균형감’은 종교ㆍ철학 분야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세종은 새로운 시대의 유교적 정통성과 뿌리 깊은 불교적 전통 사이에서 공존을 이루었던 CEO였다. 세종의 이러한 면모는 음악 제정 과정에서도 드러나는데, 중국의 음악을 어느 정도 참고로 할 것인지에 대해 그는 신생 조선의 CEO로서 자신의 입장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세종은 “악무의 제도가 전적(典籍)의 내용과 상치하여 후대의 웃음거리가 되지 않을까”우려하면서도, 무조건적인 중국 모방이나 이전 사례의 재현에 매달리지 않고, 보다 실현 가능한 의례음악의 완성에 목적을 두고 이를 추진해 나갔다. [균형감 잃은 충성은 결코 달갑지 않다] 더불어 그는 균형을 잃은 과다한 충성을 견제하고, 이를 제지 했다. .. 2009. 2.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