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분류 전체보기1023

[창조의 CEO 세종] CEO는 균형이 있어야 한다(1) ‘극단(極端)’은 어느 시대나 혼란기에 일어난다. 이것은 국가나 기업 경영에 있어 어느 한쪽이 대안이 되지 못한다고 여겨질 때, 다른 방향으로 튕겨져 나가는 현상을 뜻한다. 예로부터 국가나 기업 경영의 묘(妙)는 바로 백척간두의 상황에서도 ‘균형’을 잡는 일이다. 최고경영자로서 세종의 경영 능력이 돋보이는 부분이 바로 이 점이다. 세종은 균형 감각이 탁월했다. 극단을 피하고, 어느 세력에도 치우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그는 추상같이 국가 기강을 지켰다. 세종시대에는 단 한번의 공신 책봉도 없었고, 동시에 정치적 보복도 없었다. 공신책봉이 없었다는 얘기는 역모 등의 혼란이 없었다는 얘기로, 신하들만의 도움으로도 나라가 유지될 수 있었다는 얘기다. 또한 합의에 의해 국가 경영이 ‘무난(無難)’히 이루어졌다는.. 2009. 2. 3.
[창조의 CEO 세종] 사실에 근거해 경영하라 세종의 경영 방식의 특징이자, 원칙의 하나는 사실에 근거한 경영이라는 점이다. 그는 모든 정책을 수립하거나 시행하기에 앞서 반드시 현장성과 사실성의 확인을 우선시 했다. 또한 조직의 목표를 달성하고, 일이 제대로 진행되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항시 ‘피드백 경영’을 실천하였다. 이러한 국가 CEO의 사실주의적 경영 원칙과 즉각적인 반응은 조직 내 효율적인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해주었고, 신하들에게 창의성을 부여했다. 그는 철저하리만치 조사와 연구에 근거해 업무의 기본 방침을 정했다. 그리하여 그는 진정으로 “증거가 되고 원용할 바를 살펴보면서 정밀함에 힘쓰고 다스리기를 도모함이 언제나 한결 같았다.”(『세종실록』 32년 2월 17일)고 주변으로부터 평가받게 되는 것이다. [사실주의 경영의 진수] 그의 이러.. 2009. 2. 3.
[창조의 CEO 세종] 비전의 창조자, 미래의 전도사가 되라 한 나라에 근본적인 변화가 있기 위해선, 변화에 앞서 변화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 다음으로 변화를 깨달은 사람들이 있었으며, 그것을 자기 식대로 다시 ‘변화’시키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물론, 이때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처음의 변화에 있던 사람들과 나중에 있던 사람들이 현저히 다르다는 것이다. 심지어 어떤 때에는 - 숫자로만 보면 - 맨 마지막에 단 한 사람만 남기도 한다. 세종은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그는 생에 끝까지 자신의 국가 경영에 대한 소신을 굽히지 않았고, 그로 인해 역사를 초월한 경영의 비전을 열어 젖혔다. 그것은 이 땅에 국가 경영을 하겠다고 등장했던 뭇 제왕들 중에서 그가 실로 유일무이하게 새로운 국가경영의 모델을 제시한 것으로 나타난다. 이것은 결코 성과에 기반한 ‘업적’.. 2009. 2. 3.
[창조의 CEO 세종] 프로젝트를 직접 관리하라 세종은 국가 경영에 있어 CEO가 직접 경영 전반을 총괄하는 형식을 취했다. 국가 CEO가 권력의 핵심에 있는 것은 당연하지만, 실무 행정 체제에 있어서는 두 가지 방식, 즉 총재(冢宰) 중심의 ‘선왕지제(先王之制)’와 군주 중심의 ‘시왕지제(時王之制)’가 있었다. ‘선왕지제’란 재상을 정점으로 하여 행정의 실무를 담당하고, 왕은 정치의 상징적 존재로 보는 것이다. ‘시왕지제’ 란 왕이 행정의 실무를 직접 장악하는 방식이다. 따라서 왕권의 행사를 견제하려는 신하들로써는 당연히 ‘선왕지제’를 취하도록 하고자 했음은 물론이다. 세종은 실무분야에서도 자신의 영향력이 줄어드는 것을 결코 바라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는 ‘시왕지제’의 방식을 취한다. 세종은 이처럼 전임 CEO인 태종이 취했던 방식과 마찬가지로 취임.. 2009. 2. 3.
[창조의 CEO 세종] 자신이 만든 원칙은 지켜라 “법을 세우기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법을 행하기가 어려운 것이다.”(『세종실록』22년 8월 경진) 이 말은 오늘날 누가 한 말이 아니다. 600여 년 전에 세종이 한 말이다. 세종은 자신의 원칙에 충실한 사람이었다. 그는 이러한 원칙을 만들어 놓고, 자신을 원칙 밖에 놓아 둔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그 원칙 속에 포함시켰다. 그리하여 그는 스스로 한 국가의 CEO였지만, 자신에게 조차 어떠한 특권의식도 용납하지 않았다. 이러한 세종의 ‘법’에 근거한 원칙은 철저하게 ‘준법정신’으로 나타났다. 그리하여 세종 8년 ‘금주령(禁酒令)’을 발동할 때에도 그는 “나는 술을 마시면서 다른 사람들에게는 술을 금하는 것이 옳겠는가?”(『세종실록』8년 5월 갑진)라며 스스로 준법을 결의했던 것이다. 자신은 술을 마시면.. 2009. 2. 3.
[창조의 CEO 세종] 회의와 비서실 운영에 강한 세종 세종은 회의와 비서실 운영에도 탁월한 수완을 발휘했다. 여론을 종합하는 기능과 더불어 정책 실시에 있어 충격을 완화하고 이견을 조정하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 세종시대 국정 운영의 방식의 하나는 의정부ㆍ6조ㆍ대간 등 정치의 핵심 기관으로부터 국사가 상달되고, 왕의 재가를 받아 시행하는 것이었다. 상달되는 상소ㆍ계의 내용은 바로 그 시대 국가 경영의 내용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안’이 밑에서부터 올라가게 함으로써, ‘밑’의 권한과 책임을 부여한다는 차원에서 커다란 의미가 있다. 세종이 취한 또 다른 방식은 CEO가 의정부ㆍ6조 및 중신들을 불러 국정을 직접 논의케 하는 것이었다. 이것 또한 군주의 독단에 의한 국가 경영이 아니라, 이견을 수렴하는 회의라는 차원에서 매우 열려있는 경영의 모습을 보여 준 것이.. 2009. 2.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