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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사보기고

처음은 언제나 아름답다

by 전경일 2009. 2. 3.
 
딸 아이 손을 이끌고 초등학교 입학식에 가던 순간은 기억에 새롭다. 아이가 흥분감을 감추지 못하고 새 친구들과 장난칠 때 나는 뒤편에서 고개를 뺀 채 아이의 행동을 바라보고 있었다. 순간, 나는 30여 년 전, 손수건을 꿰매달고 운동장에 서 있던 어린 나를 만나고 있었다. 세월은 흘렀지만, 그 기억은 아직도 내게 남아 있다. 대학을 들어갔을 때에는 젊음이 뿜어대는 열기로 온몸에 짜릿한 전류가 흐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본격적으로 인생과 철학과 연애를 꿈꾸는 특권이 내게 주어진 것이다. 그것으로써 나는 청년이 되었고, 성년이 되었다고 믿었다.


대학을 마치고 신입사원으로 입사를 했을 때, 상사들 앞에서 서툴고, 경직되기만 하던 나의 행동은 어느덧 직장생활 20년을 보내게 한 내 생애 직장생활 첫날의 기억이었다. 어디 그 뿐이랴. 군기가 바짝 들었던 이등병 시절 사진을 들여 볼 때마다, 결혼 전 아내와의 만남을 기억나게 하는 오래 전 사진을 들여 다 볼 때마다, 첫 아이가 태어난 직후 찍은 사진을 꺼내 볼 때마다, 인생에서 처음으로 맞이하는 낯선 환경이 나를 얼마나 바꾸어 놓았는지 깨닫곤 한다. 나는 세월 속에서, 세월과 함께 유영해 온 물고기였는지 모른다. 나를 키운 건 세월일 것이다. 실은 내가 시간을 살아간 것이 아니라, 세월이 나를 훑고 지나간 것인지 모른다. 돌아보면 삶에는 언제나 시작이 있었기에 아름답다.


서투름을 뒤로 하고 우리가 환경에 익숙해 질 즈음이면 나이가 들고, 세상살이에 물리가 트여, ‘더 이상 태양 아래 새로울 건 없지!’하는 권태감에 빠지곤 한다. 직장 생활에, 사는 데, 세상살이에 이골이 날 때쯤이면 이런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푹푹 찌는 여름날 같은 의미 없는 날들엔 더욱 그렇다. 그럴 땐 뭔가 색다른 시도를 하고 싶어진다. 식상함이란 나를 죽이는 독약 아니던가! 삶이 이렇듯 무료하다면, 나는 날마다 새로운 날을 나의 날로 받아들이지 못해 답답해하는 것인지 모른다. 이런 것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세상을 다 알 것 같지만, 삶의 모퉁이서서 불현듯 나를 깨우치는 어느 계기를 만나게 되면, 그만 일상에서 잊고 있던 일들에 대해 명상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된다. 삶은 온통 식상한 것 투성이지만, 가끔은 처음처럼 새롭게 다가오는 순간이 있다는 것을, 그것이 나를 더는 낡게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한다. 그것이 우리를 청년 시절 가졌을 법한 열정의 순간으로 안내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뒤늦은 깨달음이란 없다. 더구나 삶의 갈피갈피에서 묻어나는 진실의 순간들과 대면하게 되는 때라면, 더욱 그렇다. 


마흔 넘어 살아온 인생길이 어느 때에는 사회생활에서 우리가 매일 매일 자국을 남기는 출퇴근길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될 때면, 소스라치게 놀라곤 한다. 개미 길처럼 나는 같은 길만을 몇 십 년이고 습관적으로 다닌 건 아닌지... 그럴 때면 가끔은 출근길 버스에서 내려 교외선을 타고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어지기도 한다. 작으마한 파격도, 소심한 일탈도 꿈꾸지 못할 만큼 내 일상은, 내 의식은 이미 뻣뻣하게 굳어 버린 건 아닌지... 그런 생각이 들 때면 매일 내게 찾아오는 날이 결코 범상치 않다는 걸 알게 된다. 어제를 오늘도 그대로 반복하고는 싶지 않다는 절박감이 밀려온다. 마흔 증후군이란 이런 것인지, 어디에도 닻을 내리지 못하며 그렇다고 아직은 미지인 세계로 두려움 없이 나가지도 못하는, 그런 것이 아닌지 말이다.


세상이 변화의 파고를 높게 일렁일 때면, 우린 누구나 두려워한다. 우린 적잖은 파고를 겪어 본 사람들 아닌가. 각박한 취직 경쟁에서 어디든 뚫고 들어가야 하는 절박감에 사로잡혔던 대학 시절이 그랬고, 외환위기 때에는 누군가를 밀어내야 하는 암울한 사무실 분위기 때문에 우울함에 사로잡혔고, 글로벌 시대에는 앞뒤 전후 없는 전방위적 경쟁이 몰려와 그랬다. 어디서 무엇이 갑자기 날아올지, 솟아오를지 몰랐다. 어떤 때에는 예나 지금이나 나는 똑같은데 변하는 세상 앞에 벌거숭이인 채 내 맡겨 진 느낌이다. 그런데도 나는 그런 파고 속에서 익사하지 않고 용케 살아왔다. 가정과 사회에 대한 건전함은 나의 가장 강인한 뿌리였다. 낯선 것과의 만남에서 오는 두려움이 처음은 아니었으나, 그 모든 두려움은 처음같이 거세고, 항시 새롭게 우리에게 몰아닥친다. 그것들은 우리보다 훨씬 힘세고, 늘 다른 방향에서 몰려왔다. 그래서 예측하기도 쉽지 않았다. 그것이 지금까지의 경험이었다.


하지만, 첫날, 손수건을 꿰매고 입학식에 참석하지 않았더라면, 나의 소중한 어린 기억은 없었을 것이다. 떨리는 느낌으로 그녀에게 고백하지 않았더라면, 지금 나의 가정은 달라졌을 것이다. 흥분된 느낌으로 입사 하고, 새로운 업무를 맡고, 승진하면서 보다 야심찬 목표에 도전하던 날들이 없었더라면, 나는 지금 후회만 앞섰을 것이다. 처음은 늘 벅차고 떨리고 두려우나, 그것은 나를 있게 한 힘이다. 처음으로 내 디뎠던 발걸음을 잊지 않는 한, 어느 삶에 몰아치는 도전도 즐겁다. 그건 우리가 걷기에 만날 수 있는 놀라운 경험들이다. ⓒ전경일, <현대모비스> 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