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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사보기고

위대함이란 보통직원이 지닌 위대성을 찾아내는 것

by 전경일 2009. 2. 3.

“우리의 군대는 지구상의 찌꺼기들로 구성되었다.”


자신이 지휘하는 군대를 이렇게 무참히 깎아내리는 지휘관이 있다면, 그는 아마도 지휘자로서 자격이 없거나, 대단히 교만한 사람일 것이다. 하지만 같은 말이더라도 어떤 의도를 가지고 말했는지를 안다면, 이런 역설은 오히려 흔쾌히 받아 들일만 하다. 이 말은 1815년 워털루 전투에서 나폴레옹 1세를 격파함으로서 풍전등화의 영국을 구한 웰링턴 장군이 한 말이다.


이 위대한 승리자는 왜 자신의 군대를 이렇듯 지독할 정도로 낮추어 표현했을까? 그것은 다름 아닌, 그의 군대가 전유럽을 휩쓸던 나폴레옹 1세의 군대처럼 군사적 혁신과 현대전쟁전략이 뛰어나서 승리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 점을 그는 강조하고 싶었던 것이다. 보잘 것 없는 군대에 불과했던 영국군은 조국애와 열정으로 승리를 거두었다. 거기에는 지휘자의 강력한 의지와 그를 믿고 따르는 수많은 병사들의 열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웰링턴 장군은 영국의 보병과 나폴레옹의 군대가 마주쳐 싸움이 한창 치열하게 전개될 때면 싸움의 현장으로 달려가서 ‘나의 군대여, 굳게 일어서라. 영국에 다시 돌아간 후 이 싸움에 대해 너희들은 어떻게 말하려는가?’하고 격려의 말을 하곤 했다. 영국군 주력부대가 강력한 프랑스군에 밀려 후퇴하려 할 때에도 “나의 계획은 마지막 사람까지 여기 서는 것뿐이다.” 라며 단호하게 맞섰다. 이처럼 영국군 승리의 배경에는 군사력으로는 밀렸어도 강력한 리더십으로 병사들에게 승리의 비전을 낱낱이 심어 주고, 무한한 격려를 통해 병사들의 결전에의 의지를 불태운 지휘자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이 일화에서 무엇을 읽는가? 지휘자의 리더십이 보통의 병사들의 숨어 있는 능력, 영웅다운 요소를 불러내고, 이를 고무함으로서, 그들이 평소에는 드러내지 못했던 능력을 발휘케 했다는 점일 것이다. 리더십과 숨어있는 영웅성과의 놀라운 화학적 결합의 결과가 지상 최대의 적을 무찌르게 한 승리의 원동력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직장생활을 하며 매일 비슷한 얼굴을 한 수많은 보통의 직원들을 만난다. 그들의 얼굴은 대충 알지만 이름은 잘 모르며, 그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꿈을 간직하고 있는지는 더 더욱 모른다. 너무나 흔하게 보는 직원들이기에 심지어 때로는 정물과 같은 존재로 인식되기도 한다. 만일 그들이 그저 그렇고 그런 직원에 불과하다면, 그들은 월급이나 축내는 보통의 평범하기 그지없는 직원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그들의 숨어 있는 능력을 불러낼 수만 있다면, 그들은 자신의 잠재역량을 유감없이 드러낼 것이다. 숨어 있던 요소가 그를 알아주는 사람에 의해 픽업되어 세상에 선보이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영웅됨의 요소를 불러내는 작업은 모든 리더들이 해야 할 일 중 가장 중요한 일일 것이다.


흔한 예로 겉으로 보기엔 조직의 ‘찬밥’에 불과하던 지극히 평범한 직원들이 어떤 상사나 동료를 만나 확 달라지는 경우를 보게 된다. 혹은 어떤 특별한 일을 맡은 후로는 갑자기 눈부신 실적을 내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것은 다 무엇으로 설명될 수 있을까? 많은 사람들은 그것이 그에게 ‘잘할 수 있는 일’을 맡겼기 때문이라고 말할 것이다. 전적으로 옳다. 하지만 그 이면에 그에게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믿고 맡겨 준 상사가 있었기 때문에 그 직원은 자신의 발군의 능력을 드러낼 수 있었던 것이다. 숨어 있는 영웅성을 찾아내 웰링턴 장군처럼 병사들에게 조국애와 승리에의 확신을 들이부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요는 사람에 대한 믿음, 신뢰가 평범성을 비범성으로 탈바꿈시켜 버리는 매우 강력한 수단이라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우리가 매일 접하는 직원들은 눈에 잘 띄이지 않는 일상의 영웅이다. 다만, 아직 그 진가가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다. 아니면, 그들은 아직 너무 부분적으로만 자신을 드러낼 기회를 갖게 되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보통의 직원들에게는 우리가 주의하지 않으면 간과하게 되는 매우 훌륭한 인자들이 있다. 조직이 조직이게 만드는 요소들, 그들이 지닌 회사에 대한 기본적인 믿음 같은 것들은 돈 주고 살 수도 없는 진정한 가치에 해당된다. 그들은 성실, 솔직, 근면 같은 어느 시대 어느 기업에서나 요구되는 불변의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동시에 꾸준함이라는 기업이 굴러가게 하고, 장기적으로 목적을 이뤄내게 하는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들이 지닌 동료에 대한 의리, 동지애 같은 것들은 조직을 지키고 살찌우게 한다. 어느 누구도 쉽게 포기하고 말 일에서도 그들은 강력한 미래의 희망의 빛을 먼저 본다. 그런 의미에서 그들이야말로 조직의 비전, 미션, 계획에 동참한 진정한 현장의 백업어(back-upper)들인 셈이다.


이는 요즘 유행하듯 핵심인재론과 같은 희소성의 원칙에 따라 인재를 구분하는 방식과는 사뭇 다른 시각이다. 소수에 대한 선택시스템과 선택되지 않은 대다수를 방치, 좌절, 유기시켜버리는 과거의 패러다임에 근거한 인재선별법은 결국엔 인재고갈을 가져온다. 그런 틀 속에서는 선택된 인재들 또한 모두가 똑똑하기만 인재들 속에서 오히려 상대적 결핍감과 빈곤감을 느끼고 만다. 다시 말해 인재선별상의 제로섬 게임에 빠져들고 마는 것이다. 반면, 보통직원들에게서 비범함을 찾고 이를 육성하려는 포괄적 인재관은 철저하게 플러스섬 게임이다. 누구를 밟거나 밀어내야만 올라가는 게 아니라, 남을 어떻게 돕느냐에 따라 내가 부각되는 협력상생의 인재관인 셈이다. 우리는 흔히 후자의 가치를 멀리한 채, 제로섬 게임에만 빠져드는 인재관을 염두에 두고 있는 건 아닌지 자문해 봐야 한다.


어느 날, 내가 친구와 함께 있는데, 그가 내게 질문을 하나 던졌다. 천국과 지옥의 차이점이 뭔 줄 아냐는 것이었다. 궁금해 하는 내게 그는 천국이나 지옥이나 똑같이 손잡이 끝만 잡게 되어 있는 매우 길고 큰 숟가락이 주어지는데, 지옥에서는 서로 제 입에 밥을 퍼 넣으려고 야단이어서 결국엔 다 흘려버리고 말아 늘 허기져 상태인데 반해서, 천국에서는 앞에 앉은 사람에게 서로 경쟁적으로 밥을 떠먹여 준다는 것이었다. 내가 밥을 잘 떠 먹여 주면 상대도 자기가 잘 먹기 위해 잘 먹여 주니까 서로 정성을 더 쓰게 된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의 얘기를 들으며, 지옥에서의 인재관은 자신만이 선택된 자가 되어야 하는 밥먹기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천국에서의 인재관은 바로 보통직원을 서로 인재로 만들어 주는 천국식 밥먹기 방식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비유를 들으며, 모두가 가능성 있고, 인정받도록 그 길을 열어주고 키워주는 것, 그것이 진정한 인재론의 핵심이 아닐까하고 생각해 보았다.


이와 비슷한 예로 몇 해 전, 부도난 회사를 살린 보통의 직원들에 대한 이야기가 전해지며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린 적이 있다. 회사가 망하고 나자 소위 잘나가던 사람들은 재빨리 살길을 찾아 떠난 반면, 보통의 직원들은 내 직장을 살리겠다고, 우리 사주를 발행, 부채를 인수하고 회사를 기사회생시키는 데 성공했다는 미담이었다. 그들은 과연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회사가 잘 나갈 때에는 눈에 보이지도 않던 조직 내에 묻혀있던 직원들에 불과했지만 회사에 대한 로열티 측면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높기만 했던 직원들이었다. 그런 보통의 직원들이 회사를 살리고, 자신의 긍지를 한없이 드높인 것이었다. 어느 기자가 그들을 인터뷰했는데, 그때 누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회사에 뭐, 인정받기 위해 다니나요? 내가 열심히 일해서 밥 먹고 애들 학교에 보낼 수 있으면 되는 거죠. 남들이 보면 일하고, 남들이 안보는 데에서는 회사 욕하고 그러는 건 딱 질색입니다. 제가 하루 종일 내 일에 보람을 느끼며 일하고, 함께 밥 먹는 동료직원들이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거 아니예요?”


머리 회전이 어느 때보다도 빠른 오늘날 직장풍토에서 만일 이렇게 말하는 직원들이 있다면 그들은 과연 숙맥에 불과할까? 오히려 이렇게 얘기할 수 있는 직원들이 대한민국 기업을 이끌어가는 진정한 리더들이 아닌가? 마치 천국에서 서로 밥을 먹여주는 방식처럼 서로를 배려하고, 고마워하고, 그럼으로써 조직적 능력을 드러내는 직원들, 그들이야말로 이기주의가 팽배한 오늘날 조직에 단비처럼 스며야할 위대한 직원상이 아닐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통과 평범이 지닌 위대한 힘과 가능성은 무시된 채, 오늘날 한국의 경영자들은 여전히 무엇을 찾아 헤매는 것일까?


“소수의 인재들이 회사를 이끌 것으로 생각하면 그건 ‘거꾸로 된 생각’입니다. 보통 사원들이 얼마나 유능해 질 수 있는가 알고 그들을 칭찬해 주세요. 그럴 때 그들은 놀라운 일을 이룩해 냅니다.” 마케팅 전문가인 잭 스트라우스가 하는 말이다. 보통의 직원들을 위한 이보다 더 역설적인 표현이 어디 있을까. 위대함은 보통이 지닌 위대성을 찾아내는 데서 드러난다. 그것을 찾는 안목이 부재하다면, 조직은 겉만 화려하게 치장한 공작새만을 찾게 되고, 그러다 보면 결국엔 모든 새들이 깃을 다듬는 일에만 몰두하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새장에는 한번도 하늘을 날아보지도 못한 새들도 가득 차게 된다. 우리는 어떤 새를 키워야 할까? 날지 않은 새를 키우는 것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끝으로, 아마도 웰링턴 장군은 전투에서 승리하고 나서 이렇게 말하였을 것이다. “우리의 군대는 지구상의 찌꺼기들로 구성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위대한 찌꺼기들’이 없었더라면 우리의 군대는 승리하지 못했을 것이다.”
ⓒ전경일, 능률협회, <혁신리더>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