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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경영/맞벌이 부부로 산다는 것

속앓이, 이건 밑지는 장사예요

by 전경일 2010. 3. 23.

처음부터 잘못된 거다. 아무리 세상을 긍정하려 해도 강남집값만 보면, 세상이 잘못 돌아가도 한참을 잘못 돌아간다는 생각이 든다. 강남 집값이며, 애들 교육비며, 온 나라가 강남 스트레스, 서울대 스트레스에 쌓여 살아가는 꼴이다. 누군가는 어정쩡한 정부 정책 때문이라고 하고, 누군가는 있는 놈들이 죄다 강남에 모여사니 모든 정책이 강남 사람들 중심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냐고 말하기도 한다. 그런데도 사정은 나아지는 것 없이 서울은 미친듯이 팽창되고 있다. 그 속에 맞벌이들이 어엿한 계층 내지 부류로 살고 있다.

이런 대도(大都) 서울에 살다보니, 이젠 경기 일원으로만 이사 가도 밀려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사실상, 서울 인근에 산다는 것이 해법이 되지도 못한다. 오히려 재산세는 강남보다 적지도 않다. 게다가 공시지가는 내 의지와 무관하게 마구 올라간다. 팔 것도 아니고 살 집이어도 마찬가지. 학원비에, 치솟는 물가에 정말 사는 게 죽을 맛이다. 맞벌이도 뾰족한 대안이 되지 못한다. 둘이 벌어 봐야, 세, 네 식구 먹고 살기에 바쁘다. 뭐, 자주 외식을 하거나 그러는 것도 아닌데, 돈을 모은다는 건 글쎄 총수입의 10%나 가능할까 싶다. 워낙 쓰임새가 많으니, 소득이 좀 늘었다고 해도 나아질게 별로 없다. 게다가 줄인다고 해도 온갖 공과금에 별의별 경비가 보통이 아니다. 재벌이 되지 않는 한, 서울에서 산다는 것은 두 가지 방식으로 사는 도리 말고는 없어 보인다. 화를 삭히며 살거나, 체념하고 살거나.

아무리 하루 종일 나가 뛰어도 벌어들이는 데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 월말이나, 연말에 계산기를 두르려보면, 이건 영락없이 앞으로 남고 뒤로 밑지는 장사다. 헛장사만 하다 보니, 속앓이를 하게 된다.

점심 무렵, 가스 활명수나 소화제를 집어 삼켜도 쓴물이 올라온다. 나이 마흔에 아직도 내 집 하나 제대로 마련해 놓지 못했으니, 이걸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세상, 열심히 산다고 살았는데 살아 보니 바보 같은 인생이었다. 옆 동네 사람은 나보다 못해 보여도 완전 딴판이다. 70년대에 시유지에 불법으로 집을 짓더니 그게 아파트 단지가 될 때에는 딱지를 받고 다시 재개발되더니 지금은 50평대 아파트를 갖게 된 사람도 있다. 우리 동네 주민 중에 그런 사람이 있다.

밖에 나아가서는 경제 역군이니, 산업의 기둥이니 하는 말을 들어도 집에 들어오면 동네 앞부터 초라한 월급쟁이 신세가 된다. 오히려 차량 정비업소를 하는 김 씨나, 횟집을 하는 양 씨처럼, 동네 앞 슈퍼에서 여름에 평상을 펴놓고 맥주 한잔하는 자영업자들이 부럽다. 그것도 알고 보면, 한 두가지 어려움이 있는 게 아니겠지만, 그래도 속은 덜 답답할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우리보다 낫다. 누가 이래라 저래라 하는 소리 듣지 않아도 좋고, 정년도 없고. 정말 괜찮은 직업이라는 생각이 든다.

특별히 회사 얘기를 누구에게 하는 경우가 없는 나는 얼마 전 그 ‘아저씨’들이랑 슈퍼 앞에 펼쳐진 파라솔에서 맥주 한잔을 같이 하게 되었다. 얘기를 듣다보니 나야말로 영락없이 ‘쫄뜨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저씨’들은 일 년에 그래도 몇 번씩은 여행도 가고, 바다낚시도 다니고, 여기 저기 조금씩 사 둔 땅도 있단다. 이사라는 직함을 가진 나는 어떤가? 회사 일에는 전문가인지 몰라도 밖의 일은 전혀 모르는 월급쟁이 아닌가?

“둘이 벌어도 요 모양이니 이 장사를 언제 흑자로 돌리지?”

가게부를 적는다고 컴퓨터 앞에 앉은 아내 물으니, 곧바로 대답이 온다.

“그 아저씨들처럼 서너평 짜리 상가라도 하나 없으면, 군소리 말고 다녀요!”

그날 밤, 나는 밤새도록 주판알을 두드리는 꿈을 꾸다가 새벽이 되어 잠에서 깨어났다. 아직 신문이 오지 않아 아파트 단지나 산책할까하고 나갔는데, 나는 그만 현관에서 아연질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평소 회사 위치가 비슷해 알게 된 옆 동에 사는 젊은 남자가 새벽 전단지를 돌리고 있는 것이었다.

‘무섭군!’

나는 속으로 이렇게 말하고는 얼른 집에 들어와 바로 옷을 껴입고는 회사로 출근했다. 벌서 그 시간에 지하철에는 출근길에 오른 사람들이 적잖이 눈에 띄었다.

‘이 사람들은 아침부터 어디로 가는 걸까?’

나는 지하철 사람들이 예의 전단지맨 같이 억척스럽게 사는 사람들일까 봐 한편으로는 덜컥 겁이 났다. 나는 맞벌이로는 한참 뒤떨어진 자신을 발견하고는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전경일, <맞벌이 부부로 산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