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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경영/해녀처럼 경영하라

뭣이 중헌디

by 전경일 2014. 7. 3.

내 사업영역은 목숨을 걸고 지킨다

해녀 사회처럼 의무와 권리가 철저히 신뢰와 보상이라는 시스템으로 정착된 조직은 얼마나 될까

 

해녀집단에는 고유한 관행이 있다. 스스로 만든 규율을 법 이상으로 지켜나간다. 규율에서 벗어나면 아무리 친한 동료일지라도 철저히 규제된다. 흥미로운 사실은 물질이 극성스런 마을일수록 규범이 더욱 세다는 점이다. 물에 드는 것에서부터 공동 어장을 관리하는 것까지 모든 게 적용된다.

 

해녀들이 물질을 위해 물에 뛰어드는 것을 ‘입어(入漁)’라고 한다. 물질하는 권리는 당연 ‘입어권(入漁權)’이라고 하는데, 여기에는 오랜 기간 암묵적인 합의가 적용돼 왔다. 조직 내 암묵지가 규율로 정착된 것이다.

 

해녀의 입어권은 결혼 여부에 좌우된다. 미혼 해녀가 다른 마을 총각과 결혼할 경우에는 결혼하는 그날부터 입어권이 상실된다. 반대로 다른 마을 처녀가 시집오면 그날부터 입어권을 갖게 된다. 만일 이혼을 해서 친정으로 되돌아오면 어떻게 될까? 이런 경우에는 입어를 허락하지 않는다. 그래도 막무가내로 바닷물에 뛰어들려고 할 땐 제재가 가해진다.

 

다른 해녀들이 아니라 피붙이가 이를 가로막는다. 대개 이모나 고모가 그 해녀를 물에서 끌어내 테왁망사리를 땅바닥에 내팽개치고 욕을 퍼부어 내쫓는다. 수모를 당하는 쪽도 울지만, 수모를 주는 해녀도 눈물을 흘린다. 하지만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기에 결국엔 가까운 피붙이가 하는 것이다. 멀리서 이 장면을 지켜보는 해녀들도 안쓰럽기만 마찬가지지만, 이런 규율은 반드시 지켜진다.

 

 

법적으로 이혼했을 경우엔 입어권이 회복된다. 다만 유예기간을 둔다. 약 2~3년을 두고 지켜본다. 다른 곳에 생활터전을 두고 가끔씩 마을에 와서 권리 행사만 하려 하는지, 마을 주민으로서 품행이 고운지 등이 판단 기준이 된다. 충분한 시간을 두고 행동을 지켜본 후에 해녀들은 논의를 거처 입어권을 부여한다. 이처럼 물질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너무 야박하지 않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해녀 사회의 규율은 분쟁을 막는 긍정적 면이 있다. 권리 의무를 명확히 하자는 얘기다. 또한 좁은 섬의 정해진 자원에 의존하는 인구수를 줄임으로써 자원 활용의 효율성을 높이고자 하는 것이다. 즉 적정 인원의 해녀를 유지함으로써 자원의 무차별적 채취를 막고, 일정 해녀들의 소득도 보장해 주려는 효율적 경제 시스템에서 나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권리 의무와 경제 시스템은 물질 영역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대개 바다에서 한 사람의 작업공간은 대략 반경 약 5미터 내외이다. 물속이지만, 내 사업 영역은 철저히 정해져 있다. 물질하는 동안 다른 해녀의 영역을 침범하게 되면 징계를 받는다. 영역 침범 행위를 ‘물숨 빼앗는다’고 하는데, 바람이 세거나 조류의 흐름이 예측불허라 본의 아니게 영역을 침범하면 문제가 되지 않지만, 고의일 경우에는 문제가 된다. 만일 상습범일 경우에는 1~2개월, 심하면 5개월 정도의 작업 정지 처분을 받는다.

 

잠수기선이 공동어장 내로 침범해 해산물을 채취해 갈 때에도 모든 해녀들이 뒤웅박을 타고 헤엄쳐 나가 잠수기선을 물리치는 것도 철저히 자신의 사업영역을 지키기 위해서이다. 

 

이처럼 해녀 사회는 자기 사업 영역이 철저하다. 결과적으로 시장은 균형을 맞춘다. 자신의 사업 영역을 나타내기 위해 해녀들은 무리지어 ‘테왁’의 색깔을 달리 표시하기도 한다. 같은 마을의 해녀라는 의미이다.

 

바다 밭은 넓기만 하다. 뭍과 달리 구획이 명백하지도 않고, 개인 소유도 아니다. 그러기에 공동선(共同善)을 위한 노력은 중요할 수밖에 없다. 마을 공동 재산이다 보니 권리를 주장하기 전에 의무부터 다해야 한다. 의무를 다한 해녀만이 자기 주장을 할 수 있고, 그것이 인정받는다. 그만큼 솔선수범의 리더십이 요구된다.

 

의무를 다하지 못하면, 심지어는 어장을 이웃마을에 빼앗기기도 한다. 만일 마을간 경계수면(境界水面)에 시체가 떠올랐을 때 이웃 마을에서 이를 처리했다면 그 수역은 그 마을의 어장이 된다. 요즘엔 바다를 측량하고 결과에 따라 바다경계를 확실히 획정하므로 분쟁이 없지만, 예전에는 심각하기만 했었다. 그 만큼 내 사업 권역을 지키는데 치열하다. 나아가 바다 밑 해산물을 절도하는 행위에 대해서도 철저히 관리한다.

 

 

많은 기업들이 경영에서 나의 사업 권역, 시장점유율을 지키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사회에 대한 의무를 다하기보다 당장 눈 앞에 보이는 이익에 급급하다. 그러다보니 사회적으로 공감대를 얻지 못하고 눈살을 찌뿌리게 하기도 한다. 출시제품의 리콜이나, 부도덕한 면이 밝혀지면 여론은 급격히 나빠진다.

 

 

1982년 타이래놀 독극물 주입사건이 발생했을 때, 존슨앤존슨은 고객과의 솔직한 커뮤니케이션으로 위기를 반전 기회로 삼았다. 고객들이 사회적 책무를 다하는 기업으로 신뢰라는 보상을 돌려주었기 때문이다. 선진 기업들은 대사회 공헌도를 기업의 윤리강령에 포함시키고 이를 지켜나가고 있다. 당장엔 비용으로 보일 수 있지만, 장기적인 이익을 보장하고, 기업 이미지가 제고되기 때문이다. 선진국으로 갈수록 기업의 사회기여도는 보다 중요하게 평가받는다.

 

 

<바다밭 다툼>

바다는 망망대해일 뿐이어서 가시적 경계가 있을 수 없다. 예로부터 제주바다 공동어장의 경계선은 마을과 마을 사이의 경계를 기준으로 설정되었다. 하지만 마을과 마을사이의 경계선과 공동어장의 경계선이 일치하지 않아 분쟁의 요소가 되곤 했다. 게다가 소라와 전복 등이 상품 가치가 높아짐에 따라 경계바다에 대한 분규는 왕왕 벌어졌었다.

 

그러다보니 경계획정이 쉽지 않고 경계나 입어권을 두고 이웃끼리 싸움이 일었는데, 이를 ‘바당싸움’이라고 한다. 바다싸움에는 가깝게 지내는 친인척일지라도 진저리 칠 정도로 싸운다. 생존을 위한 생업에 대충주의는 없다. 기업들은 내가 장악한 시장을 지키려는 노력을 치열하게 한다. 그런데 시장의 가변성은 도덕성, 헌신과 연동돼 시장확대와 연결된다. 이 점에서 해녀 사회는 철저한 공헌도 중심의 사회인 셈이다. ⓒ인문경영연구소, 전경일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