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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경영/이끌림의 인문학

확산을 부르는 밑바탕에 깔린 힘, ‘바탕력(力)’

by 전경일 2016. 10. 13.

 

확산을 부르는 밑바탕에 깔린 힘, ‘바탕력()

 

모든 일은 바탕에서부터 결정 나 있다.

 

일본 도쿄대학 대학원의 조교수 가토 요코 씨가 지은 근대일본의 전쟁논리를 읽다보면 불현 듯 색다른 생각이 든다. 이 책은 근대 일본이 어떻게 군국주의로 치닫게 되었는지 밝히고 있는데, 그가 쓰는 키워드는 다소 생소할 수 있는 소지(素地)라는 개념이다. ‘소지란 어떤 사람이나 대상의 본바탕에 깔려 있는 어떤 일을 일으키거나 이루게 될 가능성을 말한다. 사전적 정의가 이렇다. 비슷한 뜻으로, 어떤 까닭으로 생긴 일을 뜻하는 (所致)가 있다. 전자가 가능성에 초점을 맞춘다면, 후자는 원인에 따른 결과를 뜻한다. 이 점에서 엄연히 차이 있다.

 

가토 교수는 이 이론으로 근대 일본이 취했던 극적 전환기를 분석해 내고 있다. 그에 의하면, 어느 날 갑자기 사람들의 인식에 극적 변화가 생겨나는 순간이 있다. 어느 특정 시기, 그 사회를 구성하는 사람들의 인식이 급작스럽게 변하는 순간이 분명 있고, 그 근저에 일어나는 변화는 현재의 시점에서 보면 비록 황당무계해 보일지라도 당시에는 일종에 어떤 논리나 관념을 매개로 이루어진 것이라는 것이다.

 

즉 알 수 없는 심연 지점에 아직 누구도 인지하지 못한 변화가 일고 있다가 어느 순간 확! 표출되는 것이다. 그럴 때 그 사회를 구성하는 사람들의 인식도 한 순간에 바뀐다. 그 결과, 과거에는 전혀 예상치 못한 논법으로 어떤 사고나 일이 분출되고, 정당화되며, 심지어 합리화되어 간다. 근대 일본의 침략 논리가 확산되어 간 과정도 이와 비슷하다.

 

같은 논리로 미셀 푸코는 권력, , 역사에서 어떤 특정 시기, 어떤 특정한 학문 영역에 급격한 인식의 변화가 생기는 것은 과연 무엇 때문인지 묻는다. 그는 18세기와 19세기 의학서를 꼼꼼하게 비교하는데, 분석에 의하면 1750년에 출판된 의학서는 거의 민속학 수준이지만 70년이 지난 1820년경이 되면 의학서는 크게 변해 현대와 같은 형태의 지식에 속한다는 것이다. 푸코는 이 두 가지 의학적 간극을 가져온 원인을 단층이라고 분석한다. 지식이 어떤 하나의 형태에서 다른 형태로 이행하는 데에는 어떻게든 변환 작용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단층이라는 설명이다. 물론 단층 변화를 겪은 전과 후는 전혀 다르다

 

이런 저변에 깔린 변화를 우리는 산업혁명 시기에서 찾을 수 있다. 상업적 거래와 경쟁이 격화되던 시기, 주요 사회 변화와 사람들의 인식에서 차이가 드러나게 되는데, 사람들이 하게 된 거짓말이 바로 이것이었다. 작가 업튼 싱클레어에 의하면, 당시 등장한 거짓말들은 무척 다양하고 복잡해 한권의 백화 사전에 실릴 정도였다. 이런 전문적인 속임수들은 이후 자본주의 질서와 함께 유럽의 각 도시와 국가, 나아가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대표적인 격언과 명언은 우리도 잘 아는 늦으면 손해”, “해치우지 않으면 당한다”, “자기 방어가 첫째 가는 자연 법칙”, “비즈니스는 비즈니스”, “가장 좋은 것만 골라라”, “골육상쟁과 같은 말들이었다. 이런 표현들은 사람들 인식에 뿌리박혀 이후 자본주의 질서하의 상행위의 하나의 인식이 되었다. 이것은 과거와는 다른 종류의 불신 정서였다. 이런 사회적 현상을 통해 알 수 있는 건 산업혁명 이후에는 사람들 인식이 그전과 완전한 차이를 가져 오는 단층을 보인다는 것이다. 그런데 단층을 만들어 내는 이 같은 힘은 대체 어디서 오는 것일까? 어떤 근본적인 경험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다시 사토의 논리에 의하면, 역사에는 어떤 문제가 있는데, 그 문제는 시대의 추이에 따라 사람들의 인식이나 지식형태가 확 바뀌는 것에 연유한다. 그 같은 현상이 왜, 그때 나타나게 된 것일까? 이 경우 많은 사람들의 복잡한 행동을 낳은 심층적 힘은 무엇인가? 즉 급격한 변화를 가져온 바탕력()은 무엇인가 그는 질문한다.

 

이 질문에 그는 현대에서 벌어진 일상적인 예를 하나 들고 있다. 즉 일본에서 포도주는 그저 밍밍한 술로 인식되어 별로 인기를 끌지 못했는데, 갑자기 포리페놀(항산화 물질)이 좋다고 하자, 폭발적으로 인기를 끈 것이다. 이런 현상은 우리나라에서도 나타나, 몇 해 전에 갑자기 누보와인(Nouveau햇포도로 담근 포도주)이 좋다고 하자 어제까지만 해도 상품 가치가 전혀 없던 햇포도주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지금은 언제 열풍이 불었느냐는 듯 쑥 들어 가 버렸지만 누보와인이 그때 왜 그렇게 인기를 끌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이런 현상은 영국의 산업혁명 시기, 산업의 연료였던 코크스 개발·사용의 경우에서도 찾아진다. 1709년 아브라함 다비라라는 한 영국 철공소 주인이 석탄을 코크스로 바꾸어 공업적 규모로 철을 녹이기 시작하면서 코크스는 산업 혁명을 돌리는 연료가 됐다. 코크스는 공장은 물론 곳곳으로 활용도가 넓어지며 1815년까지 가정용 수도의 목관(木管)을 철관(鐵管)으로 바꾸며 철을 이용하는 현대 산업의 길을 열어젖혔다. 건물의 골조나, 교량, 학교시설, 자동차 등 현대 문명의 소지는 철광이었고, 그 소지야말로 코크스 사용에 있었다. 이처럼 소지소치를 알면 다른 면에서 드러나지 않는 발견을 이뤄 낼 수 있다.

  

 

와인 같지도 않은 술누보와인은 소지소치마케팅의 예에 속한다. 어느 시대 사람들의 인식이 급격히 변하는 그 지점을 파악하는 능력은 세상의 변혁을 파악하고 꾀하는데 주요 방법론이 된다. 이 같은 통찰의 힘은 비즈니스 영역에서는 물론 정치, 사회, 문화 등 모든 면에서도 적용될 수 있다. 또한 한 국가에 독재가 출현하거나, 한 사회에서 혁명이 일어나거나, 어느 예술분야나 예술가들이 갑자기 부상하거나 하는 등등 이전까지는 눈에 두드러지지 않았으나 갑자기 비상하는 분야에서도 엿보인다.

 

현대 마케팅은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지만 소지와 소치를 의도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대중의 인식을 자신들의 의도로 환기 시키고, 은연중에 주입시킨다. 이런 방식은 정치 이데올로기가 일반 시민들, 국민들의 인식을 바꾸려 할 때 주로 추구하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둘 간의 차이는 별로 없어 보인다.

 

바탕에 이는 근본적인 힘, 바탕력을 꿰뚫어 볼 수 있다면 여러 분야에 끌어다 쓸 수 있다. 역사분야에서는, 사람들 사이에 거대한 인식 변화가 일어날 때, 그것이 어떤 역사적 경위와 논리 하에 일어나는지 파악할 수 있다. 근대 시기 일제의 침탈 과정은 일본이 근대화 과정에서 탈아입구(脫亞入歐, 아시아에서 탈피해 서구의 편입하고자 한 사상)를 외치며 무차별적으로 서양 문물을 받아들인 점과, 역사적으로 침략을 정당화하였던 저들의 정한론(征韓論)사상이 대두되었을 때 이미 조짐을 보인 것이다. 일제의 한반도 침략의 소지가 바로 이것이다.

 

현대사로 눈을 돌려보면, 80서울의 봄때 신군부 정권이 들어섰던 것은 박정희를 오랫동안 추앙해 온 군부 세력이 권력이 민간으로 넘어 오는 평화적 공간을 혼란으로 폄칭하며 5.16군사 쿠데타를 흉내 낸 권력 탈취를 시도한데 있다. 이 두 사건은 지리적 및 역사적 맥락에서 다르지만 공통점을 들자면 국기를 흔든 권력 찬탈이라는 점에 있다. 둘 다 당대 대다수 국민들의 바람과는 무관하게 벌어진 사건이었지만,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야만적 폭거는 국가 권력 탈취의 바탕력이 되어 독재정권을 구축하는 데 쓰였다. 이 점에서 보면 5.16으로 탄생한 군부 정권은 80년 신군부의 소지인 셈이다.

  

어떤 변화든 변화를 낳은 매우 근본적인 힘이 있다. 역사를 알려면 그 심층적 힘이 밑바탕에 꿈틀대는 근원을 찾아내야만 한다. 심저에 내재한 힘을 정확히 알고 변절점(變節点)내지 원초적 동인(動因)을 파악하는 건 세상을 해석하고 움직이는 원리를 파악하게 해 준다. 이 점을 제대로 파악할 때 미래 예측의 단초를 찾을 수 있다. 통찰의 힘을 얻는 건 어려울 수 있으나, 역사 자체가 특정한 패턴을 띠며 반복된다는 점에서 변화의 힘과 방향을 예측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물론 어떤 정해진 힘의 크기와 방향만 보고 전적으로 옳게 예측할 수만은 없다.

 

역사적 변화는 거시적 변수 요인(예측성 면에서 꽤나 높은 편인)과 상수 요인이 맞물려 작용한다. 전자는 끊임없이 전진해 온 인류사적 족적이고, 후자는 인간이 만들어 내는 무한히 가변적인 요소로 이루어져 있다. 이 양자가 만나 빗어내는 세계는 어떤 알 수 있는 전체 그림을 해석해 내는데 열쇠가 되어 주곤 한다. 하지만모든 이에게 전체 그림을 다 보여주는 건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화석 한 조각으로 인류의 현생대 조상을 찾는 작업에 성공해 왔듯이, 예측 가능한 한 두 조각의 퍼즐만으로도 대략적으로 전체를 조망해 낼 수 있다.

 

학습과 경험은 보다 근본적인 것을 보게 하는 통찰의 힘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이런 예를 생물학 분야에서 찾으면, ‘긴 목을 가진 기린을 연구하려면 목을 보아야 하는 게 아니라, 체세포 내에서 변인을 찾아야 하는 것과도 같다. 또한 치타의 빠른 속도를 알기 위해서는 강력한 탄성을 지닌 등뼈가 형성되어 가는 세포 분열 과정을 조장하는 유전자에 대해 살펴봐야 하는 것과 같다. 바탕력에 근거를 두고 볼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변화의 동인을 읽는 힘은 기업의 경영 분야에도 적용해 볼 수 있다. 과거 제품 개발 경험을 통해 지금 시작하려는 신제품 개발에 새롭고 급격한 변화를 부여할 방법은 무엇인가? 시장 요구와 이전 상품 간의 단절 요인을 찾아내 메울 방법은 무엇인가? 고객의 기대에 부응하는 것은 진정 고객이 원하는 기대에 부응하는 것인가? 등등. 푸코 말대로라면,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후발자가 새로운 제품을 성공리에 출시하는데 있어 밑바탕에 깔린 요인을 찾아내는 데 도움이 된다.

 

어떤 상품이나 관심이 발화되는 소지가 무엇인지 아는 것은 사업의 비밀을 아는 것과도 같다. 이런 발견력을 이뤄내는 것이 경영 분야에 쓰일 때 사업적 통찰로 이어진다. 새롭게 생겨나는 상품, 서비스, 비즈니스 모델을 유심히 살펴보면, 예상 가능한 것 외에도 어떤 혁신적인 것들은 이전에 일어난 어떤 현상, 행위, 제품, 사건 등 발생 지점으로부터 전혀 예상할 수 없던 방식으로 등장하는 걸 알 수 있다. 대부분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무의식중에 하고 있는 작업에서 그 가능성과 까닭을 찾아 전체적인 포괄성을 지닌 지식 체계를 만들어 내는 건 틀림없이 기회 요인이 될 것이다. 보다 다양한 영역, 즉 마케팅이나 홍보, 선전 캠페인 같은 분야에도 이런 것들은 끌어 다 쓸 수 있다.

 

학문의 여러 분야를 살펴볼 때마다 생각하게 되는 게 있다. 어떤 특정 시기에 어떤 특정한 학문 영역에 인식의 변화는 왜 급격히 일어날까? 이 점은 지식 체계를 파악하고, 그 인식 체계가 미치는 사회 구조를 간파해, 새로운 질서로 수립하는 데 쓰일 수 있다. 남들이 보지 못한 소지소치를 아는 건 모든 면에서 기회의 창세기를 접하는 것에 버금간다.

 

어둠으로부터 빛을 분리해 내고 어둠 자체를 삼켜 버리게 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만 물어보자. 그대 삶을 이전과 전혀 다르게 폭발시킬 내면의 소지는 대체 무엇인가? 그대는 어떤 삶을 살고자 하는 소치로 몸부림치고 있는가? ⓒ인문경영연구소, 전경일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