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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사보기고

부수는 건 21세기 기업의 최고 가치

by 전경일 2009. 2. 3.
 
요즘엔 집안에 경조사가 있으면 무슨무슨 피로연이라든가, 하객들ㆍ조문객들을 위한 음식 마련이 식장(式場)에서 일괄적으로 준비된다. 간편하다는 이유 때문. 따라서 주최측으로서는 돈만 준비하면 일단은 모든 게 끝이다. 하지만 내가 어렸을 때만 하더라도 무슨 잔치라도 벌어질 양이면 온 동네가 들썩했다. 심지어는 길 가던 걸인도 목에 낀 때를 벗기는 연중 몇 일 안되는 날이었다. 그 만큼 잔치의 의미는 풍성했다.


그런 잔치는 흔적을 남겼다. 동네방네 빌려온 그릇들은 빌려올 때와 똑같이 성한 모습으로 주인을 기다리고 있지 않았다. 깨어지기도 하고, 이 빠진 것들도 적잖이 눈에 띄었다. 그렇다고 잔치의 의미가 퇴색된 건 아니었다. 어떤 식도 없었다면 그릇은 장식장에 그대로 놓여 있었을 테고, 마을은 떠들썩할 일도 없었을 테니까. 잔치는 이처럼 흔적을 남기며 삶의 나름의 변곡점이 되기도 했다.


우리는 이 같은 잔치를 1990년대 구소련의 해체와 자본주의 승리에서 읽는다. 이념을 통해 평등한 세상을 이루려던 시도는 채 100년도 가기 전에 인간의 무차별적 욕망에 의해 무너져 내렸다. 균형이 무너지자 어느 일방은 급속도로 세상을 지배하는 유일한 이념으로 굳어졌다. 또한 인류의 삶을 다른 방향으로 일관되게(현재까지는) 이끌어 갔다. 주주이익은 최소자원의 최대효용이라는 경제법칙을 가장 잘 드러내 준 자본주의 절대불변의 원칙이 되었다. 그에 따라 우리 사회도 급변하며, 경영환경도 새로운 시대의 흐름에 맞게 보다 유연하게 변모하며, 이득에 밀착해 적응해 왔다. 달러화를 앞세운 미국자본주의의 승리는 이후 세계를 지배하는 이데올로기가 되었다. 냉전을 버리고 얻은 결과였다. 


그 이후 경영학에서는 이른바 변화ㆍ혁신의 가치가 두드러지게 등장했다.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지는 와중이었다. 적응하지 않으면 죽는 룰렛 경기 하에서 지상 최대의 명제는 생존하는 것이 되었다. 여기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을 보인 곳이 기업이다. 현실을 읽는 주장에 다소 과장된 측면이 있다 할지라도 생존을 무시한 어떤 행태도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상황에서 어느 일방의 사고는 강력한 흡착제 역할을 했고, 그로 인해 마오쩌뚱이 얘기했듯, 궁즉변 변즉통(窮卽變 變卽通)의 상변(常變)의 세상에 대한 적응은 룰로 정착된 듯하다. 물론, 변화하는 환경에 따라 우리의 의식도 변해야 했다.


변화의 노력은 각 방면에서 다양하게 나타났다. 주지하듯, 뭔가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려면 기존의 것을 해체하고 달리 조합해 보아야 하는 수가 있다. 예컨대 관습, 관성, 타성, 기득권, 아전인수, 복지부동, 철밥통 같은 말들은 우리 사회를 풍미한 고정불변의 용어들이었으나, 그 마저 역사 앞에 물러나야할 판이다. 물론 이런 말들은 다른 한편 더 강화되며 실효성을 거두지 못한 채 우리를 족쇄 채우는 방편으로 작용해 오기도 했다. 그 결과 우리 사회에는 비효율과 비합리가 교묘한 기득권 유지와 맞물려 한국사회의 지배구조를 공고히 해 온 면이 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에 몸담고 있는 기업들도 당연히 지대한 영향을 받아왔음은 극히 당연하다. 외적 조건에 따라 생존을 위해 자가 내지 타가 발전하는 혁신을 꾀해내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 어느 것보다 생존이 지속적으로 위협받는 상황이 도래했으니까.  


흔히 경영학에서는 현재의 국면을 뛰어 넘는 무엇을 존속의 조건으로 주문하는데 이를 가리켜 패러다임 전환이라는 말을 쓴다. 현재와 같은 방식으로 살 수 있다면 누가 불편하고 성가싫은 변화를 지속적으로 주창하겠는가? 생존 자체가 마음대로 안되니까 환경에 맞추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이다. 여기에는 신자유주의 등장 이후 탐욕스럽게 이윤을 추구하는 주주자본주의가 시스템으로 뿌리 내린 영향이 크다. 기업의 주인이 과연 주주이기만 한 것인가는 다시 진지하게 생각해 볼 문제다. 그 성과만큼이나 폐해도 적지 않게 작용하고 있고, 오늘날 한국사회의 양극화, 비정규직의 양산과 같은 불균형을 양산해 내는 진인(眞因)이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현실의 어려움은 그렇다 치고, 이에 대한 사회적 합의나 제도적 보완은 지속적으로 요구되고 있다. 기업이 경영활동을 하는데 있어 사회적 불안은 가장 큰 위험요소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접하는 현실의 어려움은 이 같은 양극화의 딜레마와 더불어 성장엔진의 고갈내지 부재에 그 원인이 있다. 새로운 먹거리를 찾지 않으면 기업은 세계화에 밀려 당장 표류할 판이다. 직장인으로서 우리가 감지하든 못하든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이 그렇다.


현실이 벽에 부딪치면, 벽을 부수고 나아가거나 뛰어 넘거나 우회하는 방법 밖에 없다. 이마저도 포기해 버린다면 벽에 이마를 찧고 선혈이 낭자한 채로 죽음을 맞이하는 수밖에 없다. 지금 우리는 과거의 적과는 전혀 다른 강적을 만나 초고도의 긴장에 휩싸여 있다. 이것을 뛰어 넘을 방법을 찾아내지 않고는 좀처럼 거기서 벗어나기 어렵다. 한마디로 어디를 둘러봐도 사면초가 신세다. 몇몇 (초)우량기업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역사상 가장 강력한 도전 앞에서 휘청거리고 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이런 상황을 타개해 나갈 가장 적확한 방법을 꼽는다면 무엇이 있을까? 다름 아닌, 창조다. 창조를 하지 않으면 현 국면에서 좌초하고 말며 영원히 밟혀 버린다. 이제는 과거의 유산인 회사 내 그릇을 깨뜨리는 기업과 경영층과 직원이 되어야 한다. 쉽게 깨질 사업기반을 들고 있다가는 기업 자체가 증발해 버린다.
세계화 시대의 특징은 글로벌이 단일 네트워크로 이어지며 사업기회, 자산이동, 부의증감이 모든 면에서 ‘신출몰 급이동 초증발’ 한다는 것이다. 기업의 사업 기회는 부지불식간 출몰해 구글, 유투브 등 세계적 기업이 생겨나기도 하고, 부는 국경을 무시한 채 공간이동하며, 하룻밤 만에 시가총액 100조가 날아가는 초증발의 경험을 겪게 된다. 초강력 휘발성이 오늘날 세계와 한국사회를 휩쓸고 있는 것이다. 세계화에 따른 양극화는 과거의 ‘있는 자’와 ‘없는 자’간의 경제적 쌍방향 교류도 사라지고 어느 일방으로만 부가 흘러가는 현상이 상시적인 게 된다. 승자승의 원칙, 승계의 원리, 세습의 법칙이 부-학벌-기회-직업-삶의 모든 면에 철저하게 적용되는 것이다. 즉, 과거에는 반(半)도체적 성격을 지녔던 부유층(우량기업)과 서민(중소기업)과의 경제구조가 이제는 철저하게 도체와 부도체로 나뉘고 있는 것이다. 어느 한쪽으로 흘러간 부는 반대편으로 이동이 쉽지 않다.


이런 신경제 조건에서 생존을 위한 우리는 현실 인식은 어떠해야 할까? 우선, 피치 못하게 깨질만한 그릇은 먼저 알아서 다 깨버려야 하는 즉시직시(卽時直視)의 현식인식이 필요하다. 깨질만한 그릇을 깨버릴 때 무쇠 그릇을 생각하게 될 것은 자명하다. 변화가 곧 탈바꿈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 가능성을 향한 선택이라는 점에는 공감해야 한다. 자기 전염성이 높아지며, 변화를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번영은 커녕 생존조차 보장키 어렵다. 기업의 여건은 불문가지이고, 세계 경제 자체가 ‘시계 0’의 상태이기 때문이다.


나는 얼마 전 생물학 관련 책을 일독했는데, 거기에는 가물치의 생존기법이 실려 있었다. 흙탕물이 심하게 일면 다른 물고기들은 견디다 못해 배를 허옇게 드러내고 떠오르는데, 가물치만이 용케도 흙탕물을 빠져 나온다. 가물치의 이 같은 원천경쟁력은 무엇 때문일까? 흙탕물 속에서 시계를 확보하는 것은 가물치의 생존조건 중 가장 우선순위에 있어 보인다. 이처럼 우리에게는
아무리 혼탁하고 어지러운 흙탕물 속에서라도 시계 7.0을 확보하려는 가물치 경영학이 필요하다. 세계화와 우리 기업이 처한 현실은 적응이며, 생존조건으로는 필수적으로 부수고 깨뜨려 버리는 창조적 사고와 결단이 요구된다. 그것이 혁신이다. 하지만 우리는 얼마나 더 수업료를 낸 다음에야 ‘자파자생(自破自生)’의 슬기를 터득할 것인가? 계기판이 고장 난 시계 0인 상태에서 조종사들은 어떻게 비행을 할까? 분명히 이전 상황에 대한 모든 계기적 분석을 바탕으로 당면 국면을 창조적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전혀 다른 국면에로 비행기가 진입해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그에 맞는 사고의 전환, 행동 패턴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 안정적인 랜딩은 창조적으로 적응하는 조종사의 역할에 큰 영향을 받는다.


어느 기업이나 이제 본격적으로 인류가 이제껏 겪어 본 적 없는 세계화의 초대형 태풍권 중심에 진입해 있다. 앞으로의 세계는 모든 면에서 선진국-후진국, 저가품-고가품, 노동집약-자본중심, 가치중심-가치 몰이해 등의 갈등이 극심하게 벌어진다. 이를 타개할 마땅한 방책을 마련키 위해 새로운 생존가시권을 창출하는 것은 기업필생의 조건이다. 새로운 환경하의 사업조망권을 확보하려는 노력이 뛰따라야 하는 이유이다. 이제부터라도 깨뜨리고 부수고 난 다음에, 그곳에서 새로운 생존에의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나의 지인 한 분이 말하듯, 성당의 아름다운 스테인 글라스 장식은 깨어진 유리를 꿰맞춰 만든 것들이다. 깨지는 창조적 발상을 통해 새로운 조건을 창조해 낼 때 우리는 다른 지평에서 살아남은 채 아침을 맞이할 수 있다. 부수는 능력은 21세기 인재상의 필수조건이다. 스스로 깨지지 않는 경영자이거나, 직원들에게 깨뜨리는 것을 용납치 않는 기업이라면, 그 기업의 미래는 보다 분명해 진다. 그것은 당연히 생존과도 거리가 멀며, 사라지는 가장 확실한 이유가 된다. 부수고 깨뜨리며 터진 곳에서 새 출발을 하자. 손에 쥔 것이 나를 죽이는 독약이다.
ⓒ전경일, 능률협회, <혁신리더>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