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칼럼|사보기고

기업의 주춧돌이 되는 현장의 보통 직원들

by 전경일 2009. 2. 3.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우리 회사 현장은 ‘찬밥’들이 모이는 곳이었습니다. 업무는 고되고, 일은 많아도 성과급이나, 승진 면에서 본사 사람들과 비교하면 턱없이 불이익 받았죠. 그때 우리들은 본사 사람들을 가리켜 ‘펜대 맨’들이라 불렀습니다. 머리만 쓰지 실제로는 팔 다리는 움직이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본사 사람들에 대해 우리가 쓴 이런 표현엔 좀 자학적인 면이 없지 않았나 합니다. 피해의식도 강했을 거구요. 아무래도 현장 사람들은 가방끈이 짧은 것은 부정할 수는 없는 사실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우리는 그렇다 치고 본사 사람들은 우리를 어떻게 불렀는 줄 아십니까? ‘기름닭’이라고 불렀습니다. 기름밥이나 먹고 사니 당연히 그런 얘기를 들을 법도 했죠. 그런데 누구도 거기에 화를 내거나 그러지 않았습니다. 너희들과 우리들은 신분부터 다르니 그 선만 긋고 살자. 이런 생각을 누구나 했던 거죠. 그런데 새로 현장소장님이 오시면서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그 분은 누구를 만나든 이렇게 말씀하시곤 했죠.


‘자네 덕분에 우리 회사가 이익을 내고 있네.’ ‘회사가 좋은 성적을 내는 건, 현장에 있는 우리들이 골몰해서 제품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네.’ ‘어디 내가 도와줄 건 없나?’ ‘나도 좀 자네들 막걸리 파티에 끼워 주게.’


격의 없고 소탈하신 성격뿐만 아니라, 직원들을 칭찬하고 포옹하는 자세에 현장 사람들은 변해 갔습니다. 그 전까지는 하루 종일 프라스틱 사출만 해 대는 자신에 어떤 존엄성도 발견하지 못하고 있었으니까요. 회사 내 누구도 자신을 진심으로 대하고 있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소장님은 제가 못난 놈이 아니라, 잘난 놈이라고 치켜 세우더군요.


‘너는 잘 났다. 왜냐하면, 지금 당장 거울을 봐라, 인생이든, 회사에서 가장 믿을 만한 친구가 거기 있지 않느냐?’


처음에는 농담이라고 생각했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니, 맞는 말이더군요. 저는 그때 뭔가를 깨달은 것 같았습니다. 고졸이라는 학벌로 늘 치이고, 아는 게 있어도 나서지 못하고 했는데 그게 아니더군요. 누구나 자신을 드러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내가 내 몫을 확실히 해 내면, 누구 앞에서나 꿀릴 게 없는 법이죠.”


경북 구미시에 있는 K산업 생산1라인 반장인 김우태 씨는 요 몇 해간 현장에서 벌어진 일이 상전벽해와 같다고 술회한다. 현장일수록 일도 거칠고, 사람들도 생산직에 맞는 인력만 뽑다보니 자연히 여러 면에서 본사 직원들보다 능력도 떨어지고, 사기도 처져 업무의욕이 오르지 않았었다고 한다. 그런데 새로 부임한 현장소장이 시작한 ‘직원들의 자기 존엄성 살리기’ ‘서로 칭찬하고 일단은 발목부터 잡지 말고 밀어줘 보기’같은 캠페인에 의해 조직 분위기가 일신되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이게 무슨 장난이냐고 누구나 수군거렸지만 효과는 곧 드러났다. 생산성이 날로 향상되어 갔던 것이다.


김씨가 느꼈을 현장에서의 소외감은 실제로 우리나라 어느 기업에서나 거의 똑같을 것이다. 현장 직원은 생산직이라는 이유로 입사 때부터 학력에서 밀리고, 승진이나 상여금에서도 뒤처지는 느낌을 갖는다는 연구조사도 있다. 그러다 보니 자신들이 하는 말이란, ‘변방에 우짖는 새’ 꼴이라고 자조 섞인 농담도 한다. 모두가 퇴행적인 마인드에 해당된다.


그러나 이제 기업들은 많은 면에서 현장의 중요성을 과거보다 더 절실히 받아들이고 있다. 생산 라인에서 움직이는 직원의 손이 제품의 품질을 결정하고, 이는 곧 회사 경쟁력의 기준이 된다는 인식 때문이다. 회사와 고객간 상품을 매개로 한 관계에서 항시 첫 대면에는 그들의 손길이 들어간다. 현장직원들이 사기가 떨어지면 그만큼 업무 효율성이라든가, 성과도 오르지 않는다. 따라서 기업의 경쟁력은 먼 나라 얘기가 되어 버리고 만다. 많은 기업들이 ‘혁신’을 부르짖지만, 그것이 구두선에 불과하고, 과거의 관성으로 곧 되돌아가버릭 마는 것은 현장을 강조하면서도 시스템이 밑받침 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경영컨설턴트 회사를 경영하고 있는 문재수 대표는 현장의 중요성과 평범해 보이기만 하는 현장의 주인들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오늘날 우리가 가진 모든 문제의 답은 현장에서 찾아져야 합니다. 기업의 문제도, 이를 풀기 위한 열쇠도 모두 현장에 속한 것들입니다. 현장은 일이 이루어지는 곳입니다. 일 있는 곳에 문제와 해법이 상존할 거는 너무나 자명한 것이죠. 우리는 현장의 파이프라인을 움켜쥐고 가야 합니다. 기업을 살찌우는 현장은 본업뿐만 아니라, 파생적인 사업거리도 계속 제공하는 사업의 공장입니다. 수원지를 가리키고 파이프라인을 대라고 지시하는 것은 사장이나 본사 사람들이 하는 일일 테지만, 그 파이프라인을 가설하는 것은 현장직원들입니다. 70년대 우리 기업들이 중동에 진출했을 때 그들이 궁극적으로 부여한 가치는 사막을 관통하는 파이프라인을 건설한 것입니다. 그것이 놓여진 다음에야 플랜트가 들어선 것이죠. 그 무렵 한국 경제는 철저히 현장에 있었고, 열사의 현장에서 일하던 직원들을 온 국민은 영웅으로 대했기 때문에 고도성장의 엔진을 달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지금 새로운 도약을 위해서 다시 현장에 주목해야 합니다. 사업이란 궁극적으로 시작과 끝이 현장에서 이루어집니다. 그 가치에 주목할 때 회사 전체에는 긴장감과 전운이 감돕니다. 현장의 직원들과 함께 하려는 자세보다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그들이 결국엔 일을 해낼 주역들일 테니까요.”


오늘날 기업들이 안고 있는 문제는 본질적으로 가장 평범한 것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기 때문이다. 현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 현장에서 묵묵히 일하는 직원들에게 힘과 용기를 북돋아 주는 것, 현장의 고객에게 자문을 구하고 그들을 통해 회사 발전의 전망을 살펴보는 것, 현장에서 나오는 고객의 불만을 경청함으로서 기업이 나가야 할 바를 분명히 깨닫는 것 등등. 이런 평범한 것들은 너무나 당연할 뿐, 자극적이고, 두드러지지 않는다는 이유로 묻혀버리거나 후순위로 밀려나고 만다. 하지만 문제에 대한 인식과 해답은 멀리 있는 게 아니다. 평범해 보이던 일상을 뒤집으면 비범한 내일을 맞이하게 되고, 평범한 사고를 역발상하면 획기적인 아이디어로 벌전시킬 수 있다. 이는 우리의 의식이나 조직 풍토만 그런 것이 아니다. 자신이 지닌 습관에 대해서도 새롭고 신선한 자각을 통해 우리는 목표로 했던 바에 보다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우리가 무엇을 실현한다는 것은 그것으로부터 새로운 도약을 향한 비전을 찾는다는 것을 뜻한다. 수많은 평범 속에서 가치를 찾아내는 것을 오늘날 지식경영은 가장 중요한 테마로 삼고 있을 정도다. 묻혀버리거나, 잊혀져 버릴 만한 것들에 관심과 주의를 기울이면 찬란한 빛을 드러낼 수 있다. 앞서 K산업의 김반장이 털어 놓은 현장에서의 고충과 그가 힘을 얻게 되는 과정은 현장에 뿌리내린 경영철학, 인간적 유대 같은 것이 바탕에 깔렸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이처럼 현장에 있는 보통의 직원들의 가치를 안다면, 오늘날의 경영자들은 현장을 그 어느 곳보다도 가장 튼튼하게 움켜쥐고 가게 될 것이다.  

어느 위대한 경영자도 현장의 소리를 외면하고 더 크게 성공할 수는 없다. 생산현장과 영업현장을 양 날개로 하여 기획과 마케팅이 추진력을 쏟게 한다면 효과만점이다. 이것은 너무나 자명한 사업상의 원칙이다. 현장 직원들의 애환을 몸소 듣고, 그들의 언 상처를 어루만져 줄 때 그들은 분발심을 낸다. 그들이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와 움직여 줄때라야 기업은 가장 밑바탕이 되는 곳에서부터 연료가 타들어 가는 것이다. 젖은 연료로는 불을 지피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그들이 자발적으로 불꽃을 내기 시작할 때라면, 적어도 더 많은 기름을 부어주어야 하지 않을까? 


21세기 들어 전 세계적으로 리더십 홍수에 우리는 살고 있다. 경영현장에 요구되는 수많은 리더십은 일일이 세기도 어렵다. 이처럼 수많은 리더십이 등장했고, 앞으로도 쏟아져 나올 것이지만, ‘현장리더십’ 만큼 감동을 주는 것은 없을 것 같다. 조직 내 수많은 직원들을 쭉정이가 아닌, 알찬 볍씨로 길러내려면, 오늘날 우리는 사업의 기본인 현장으로 다시 컴백해야 한다. 그나마 한국경제가 처한 불확실한 경영 환경에서의 생존가능성을 찾고, 믿고 달려갈 곳은 현장과, 거기서 만나게 될 직원들뿐이다. 그들은 지금도 맡은 바 소임을 다하고 있다. 생긴 모습이나, 풍기는 면모는 옆집 아저씨 같기도 하고, 우리 집 아이와 같은 학교를 다니고 있는 학부모일 것 같으며, 내가 일하는 곳에서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간단히 처리한 경험이 있는 베테랑 엔지니어들일 수도 있고, 내게 소주잔을 내밀 친근한 벗 같기도 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극히 평범한 직원들이다. 그들이 기업의 주춧돌이라는 사실을 아는 데에는 그리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저 오늘 현장을 들르면 된다. ⓒ전경일, 능률협회, <혁신리더>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