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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지금 광개토태왕인가? 고구려를 세계제국으로 확장시킨 우리 역사상 최대영토를 개척한 태왕의 이름은 ‘담덕(談德)’이다. 중국 측 기록인 『진서(晉書)』에는 ‘안(安)’이라고 적혀 있다. 태왕은 374년에 태어나 제 18대 임금인 고국양왕 재위 3년(386년)에 태자로 책봉되었다가, 6년 뒤인 392년 5월에 제19대 국왕으로 즉위하게 된다. 태왕의 큰아버지는 소수림왕이며, 아버지는 소수림왕의 동생인 고국양왕이다. 기록에 의하면 그는 “태어날 때부터 체격이 웅위하고 기상이 늠름했으며, 뜻이 고상하고 성인(聖人)의 풍모를 지녔다.”고 전해지고 있다. 『삼국사기』「고구려본기」나 권근의 『양촌집』에도 태왕이 “허우대가 매우 크고 활달한 뜻을 가졌다”, “어렸을 때의 모습이 체격이 웅위하고 뜻이 높았다.”고 동일하게 전하고 있다. 기록.. 2010. 4. 6.
세상에, 산이 달라졌네 올랐던 산이 낯설어질 때는 산 아래에서 어떤 변화를 겪은 것이다. 몇 해 지나 올랐던 산을 다시 올랐을 때, 뭔가 낯선 느낌에 젖을 경우가 있다. 대체 무엇이 달라진 것일까? 세월에 따라 산도 달라졌겠지만 사실 산이 달라진 것이 아니라 내가 달라진 것이다. 산은 늘 그랬듯 그 자리에 우뚝 서 있지만 산꾼은 산 아래에서 무수히 많은 변화를 겪고 다시 산을 오른다. 인생사에는 숱한 변화가 찾아들고 산꾼의 삶과 사업은 그 회오리에 휘둘리게 마련이다. 어느 것 하나 제자리에 머물지 않는다. 산만이 홀로 제자리를 의연히 지키고 있을 뿐이다. 산이 달라졌는가, 아니면 내가 달라졌는가? 산꾼 경영자는 산행을 하면서 산 아래에서 던졌던 화두를 다시 끌어안고 간다. 답을 찾지 못한들 어떠랴. 그들은 이미 산행만으로도 제.. 2010. 4. 3.
큰 나라 고구려: 고구려인들과 글로벌 리더십 제국적 국토영역은 고구려로 하여금 여러 부족이 연합한 국가를 이루도록 만들었다. 창업 이래 지속적인 확장의 결과였다. 고구려에는 소노부(消奴部)·절노부(絶奴部)·순노부(順奴部)·탁노부(濁奴部)·계루부(桂婁部)의 다섯 부족이 있었다. 평양으로 천도하고 부터는 혈연적인 오족제도(五族制度)에 지연적인 요소를 가미해 오부제도를 만들었다. 하지만 고구려 사회는 대체적으로 혈연적 부족사회를 기반으로 했다. 부족제도에서 통치자는 부족들의 선거에 의해 결정되었다. 3세기 말엽 기록에는 처음에 소노부에서 왕이 나왔으나, 뒤에 차츰 약해져서 계루부에서 대신 왕이 나왔다고 전한다. 또한 고구려는 적극적으로 서진정책을 펼쳐 요동(遼東)·현토군(玄菟郡)을 서쪽으로 후퇴하게 했다. 이런 활동의 결과 태조 때에 와서 고구려 영토는.. 2010. 4. 3.
요약 좀 해 봐 후배 중에 그림 꽤나 그리는 녀석이 있다. 이른 바, 라는 직업을 갖고 있어서 그런지 쓱쓱 연필을 몇 번만 움직여도 그림 한 장은 거든히 그려댔다. 오랜만에 만난 녀석에게 다짜고짜 달려들어 나를 그려보라고 했다. 녀석은 멀뚱하게 눈을 뜨더니 손사래를 쳤다. “형, 나 그런 거 잘 못해요.” 나는 피식 웃으며 재차 요청을 했다. “나를 좀 요약해 보라고. 왜 그런 거 있잖아? 캐리커천가 뭔가 하는. 술 한잔 산대두.” 후배에게 예술작품으로 그려 주는 것이 아니라는 꼬리표를 달고 그림 하나를 얻었다. 거기다가 내 나름대로 제목 하나 달아봤다. 후배 왈, 내 얼굴을 요약하면 이렇다나. 안경을 꼈고, 코가 크며, 머리는 쭈뼛쭈뼛하다. 내 머리카락은 너무 굵다 등등. 아무튼, 나는 이 캐리커처를 종종 보게 된다... 2010. 3. 30.
힘과 국제관계의 상관성이 글로벌화를 촉진하다 이러한 지정학적 특성과 다양한 문화적 특성으로 말미암아 광개토태왕의 경영의 특징은 개별성이 아니라 상호관련성에 집중된다. 바야흐로 제국적 토양이 마련된 것이다. 이를 뒷받침하듯 국토의 확장과 함께 고구려는 국제성을 강화시켜 나간다. 나아가 글로벌화의 중심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 낸다. 고구려가 지닌 국제적 발상은 스텝지역을 비롯한 다양한 종족과 문화를 연결하고 아우르는 확장성의 결과였다. 국토가 팽창됨에 따라 다종(多種)과 이기(異岐)의 문화권과의 교류가 더욱 가속화되며 제국다운 면모를 지니게 된 것이다. 예컨대, 고구려는 전통적으로 농업정착문화권에 있는 한족과 이에 대립하는 유목문화권의 흉노(匈奴)·선비(鮮卑)·유연(柔然)·돌궐(突厥)·거란(契丹)과 같은 제(諸)스텝세력, 나아가 동북만주에 산재하며 시대.. 2010. 3. 30.
고구려는 전사들의 국가 고구려는 주지하다시피 처음부터 강대국으로 창업된 게 아니었다. 경제적 기반도 열악하기만 했다. 거친 조건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구려는 출발부터 전사국가(戰士國家)를 지향했다. 군사력으로 주어진 환경을 극복하고자 한 것이다. 이러한 팽창책은 국초부터 일관된 정책이었다. 이는 이후 고구려가 환경 제약을 극복하기 위해 힘으로 주변 세력을 통합하고 지배해 나가는 방식이 된다. 철저하게 힘에 의한 정치, 힘에 의한 균형, 힘에 의한 확장책을 꾀함으로써 국세를 떨치고자 한 것이다. 이처럼 고구려의 발전과정에는 대내외적 환경이 큰 영향을 미친다. 즉, 환경이 전형적인 전제적 군사국가로 발돋움해 나가는 배경이 되는 셈이다. 고구려가 창업 이래 군사편제와 군사역량을 강화한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였다. 나아가 온 국민이 생.. 2010. 3.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