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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경영43

그때 내가 건넌 강물은 아직 거기 있을까? 그때 내가 건넌 강물은 아직 거기 있을까? 어부바! 길을 가다가 다리가 아프다고 꾀병을 쓰는 딸아이를 업어주며 나는 황토 빛 장마 비로 출렁이는 고향의 강물 앞에 가 섰습니다. 장마 비에 논둑을 보러 가신 아버지 등에 업혀 강을 건널 때의 그 느낌을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비를 맞아 입술까지 새파래진 나는 우리 집 논밭만큼이나 넓디넓은 아버지 등에 파묻혀 강을 건너오면서 발 아래로 뱅뱅 소용돌이치는 흙탕물을 내려 봅니다. 내겐 두려움 따윈 전혀 들지 않습니다. 가끔, 가파른 물 속, 발밑으로 굴러가는 돌에 채여 아버지는 비틀거리셨지만, 나는 손톱만치도 아버지를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엎힌 그 분은 나의 아버지였으니까요. 아버지는 절대로 쓰러지지 않을 것이라는 걸 나는 알았거든요. 강을 다 건넜을 .. 2009. 2. 6.
[맞벌이 부부로 산다는 것] 고르고 골라, 벼르고 별러 가끔 거사를 치른다. 아내에게 이걸 사도 돼냐고 묻고 또 물으며 물건을 집었다 놓곤 한다. 백화점에 가서는 가장 저렴한 세일 코너를 찾게 되고, 할인 마트 가서는 우유를 골라도 팩이 하나 더 붙어 있는 1리터짜리 우유를 사게 된다. 30~70% 세일가로 나온 셔츠들은 이월 상품들이고, 팩을 하나 더 주는 우유는 유통기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나마 이런 구매는 일상적 소비라 크게 망설일 것이 없지만, 어쩌다 회사 근처 대형 매장에서 할인가로 두들겨 파는 양복이나, 한 여름에 파는 겨울철 외투 세일 같은 것들은 할인가를 적용해도 목돈이 들어가느니 만큼 아내에게 전화해 물어보게 된다. 한 번에 몇 십 만원 씩 쓰이는 소비 아닌가. 용돈으로 해결될 지출이 아니다. 심리적으로는 소모품이 아닌, .. 2009. 2. 4.
[맞벌이 부부로 산다는 것] 대한민국은 맞벌이 공화국 대한민국 가정의 50%가 아침이면 전쟁을 치른다. 맞벌이 부부들이 서둘러 직장으로 달려 나가는 시간. 잠시 켜둔 TV에서는 뉴스나, 아침 시사방송, 유치원 프로가 빠르게 진행된다. 서둘러 TV를 끄는 시청자 시선을 붙잡으려는 의도된 방송편성이다. 이 바쁜 시간에도 경제는 돌아가고 있고, 마구 흐른다. 이런 생활에 동참하는 사람들이 맞벌이들이다. 아침 시간은 쏜살처럼 빠르다. 대충 빵이나, 시리얼 따위로 식사를 때우거나, 준비라도 해 둔 식단이 있다면, 서둘러 밥을 먹고는 식기세척기나, 설걷이 통에 대충 빈 그릇을 담가 둔다. 아내는 서둘러 화장을 하고, 자는 애들을 깨워 옷을 입히고 나면, 이젠 들쳐 업고 뛰는 일이 남는다. 초등학교나, 어린이 집으로 애들을 데려다 주는 길. 애들이 어디 아프기라도 하면.. 2009. 2. 4.
아버지, 당신을 영원히 사랑합니다 아버지의 시신을 땅에 묻을 때, 나는 아버지와의 추억을 떠올렸다. 아버지에 대한 나의 기억은 언제나 새롭다. 막내인 나는 형제들 중 누구보다도 사랑받은 자식이었다. 어떤 기억은 시간이 갈수록 또렷해지곤 한다. 무서운 꿈을 꾸고 났을 때, 나는 아버지 품속으로 파고들었고, 당신은 잠결에서도 나를 어르며 받아 주셨다. 아버지의 무릎에 앉아 응석을 부리며 밥을 먹던 일, 아버지의 팔베개를 벤 채 아스라이 잠속으로 빠져들던 일, 아버지의 등에 업혀 군청 뒤 군인 극장에 갔다 오던 일... 그 모든 기억이 순식간에 되살아났다. 아버지는 그렇게 큰 사랑을 베풀고 내 곁을 떠나가신다. 아버지의 생체 시계가 멈춘 날, 나는 사람에 대한 사랑과 극진한 마음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다. 불교에서 말하는 연기사상(緣起思想)처.. 2009. 2. 2.
중국집 아강춘 지금은 없어진 중국집이 내 추억엔 하나 있다. 아니, 가본 지 오래되어 정확히는 모르지만, 지금은 없어졌을 것이다. 벌써 삼십 년도 넘은 얘기니까. 내 고향에는 중국집이 하나 있었다. 알고 보면, 서너 개 더 있었겠지만, 그 중에서도 이라는 중국집이 제일 컸고, 기억에 남는다. 고향에서 군청 다음으로 가는 가장 큰 기관인 농협 바로 옆에 있었으니까. 어린 내게 이 이상한 이름의 중국집은 우선 뜨물통과 미끌미끌한 돼지기름을 연상시킨다. 그 다음으론, 짜장면이다. 생각만 해도 목에 감기던 그 구수하고 들척지근한 맛. 내가 초등학교를 졸업하던 날, 아버지가 데려가서 짜장면 곱빼기를 사주시던 바로 그곳이다. 곱빼기라. 이 얼마나 흐뭇하고 푸짐한 얘기이냐? 지금 생각해도 호사스럽기 그지없다. 우리 집이 과 인연을.. 2009. 2. 2.
그 여름의 맨드라미 이태 전이었던가? 여름휴가를 이용해 시골에 갔다 왔다. 새해가 시작되고 나서 정신없이 지내다 가까스로 낸 휴가였다. 특별히 갈 데도 마땅치 않았고, 바캉스하면 으레 떠오르는 바가지 요금에, 12시간 이상 차를 몰아야 하는 고충까지 생각하니 바닷가는 아예 겁부터 났다. 게다가 눈을 밖으로 돌려 해외여행이라도 갈라치면 몇 백 만원 깨지는 것은 한순간이고 빠듯한 살림에 애들을 둘씩이나 매달고 떠나는 그런 해외여행은 쉬운 게 아니었다. 마흔까지 살면서도 해외여행 하나 제대로 가지 못하는 남편으로서 가족에게 미안하기까지 했다. 그래서 애들에게는 거창한 계획이 있는 양 시골 풍경을 그려대기 시작했다. 개울물이 흐르고, 물고기가 노닐며, 반두로 물고기를 잡아 천렵을 하고, 들판에 뛰어 다니는 메뚜기를 잡고, 밤이면 .. 2009. 2.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