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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 강의/세종 | 창조의 CEO132

[창조의 CEO 세종] 감동 경영은 자기 결단에서 나온다 세종의 전체적인 경영 목표는 언제나 과감하고 명확했다. 또한 조직 구성원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했다. 조직 내 커뮤니케이션은 언제나 멈추지 않고, 흘렀다. 그리하여 그는 독단과 전횡의 유혹에 빠질 수 있는 국가 CEO라는 위치에 있으면서도 항시 균형감을 잃지 않았다. 정책 수립에 있어서도 그는 자기 확신이 섯다 싶으면 언제나 결단을 강화해 나갔다. 그러나 만일 이에 조금이라도 확신이 들지 않을 경우에는 신하들과 토론을 통해 합리적인 결론에 도달하고자 했다. 이러한 합의적 체제는 새로운 국가 경영의 모습이었고, 나아가 활발하고 매우 합리적이며, 선진적인 회의와 토론 문화를 정착시켰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경연(經筵)(주1)과 집현전의 운영이었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정책수립과 경영 회의록이 오늘날 남아 .. 2009. 2. 3.
[창조의 CEO 세종] 결단의 중심에 서다 CEO로서 세종의 취임은 매우 매력적인 환경과의 조우였다. 그것은 보다 야심 차고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은 활력 넘치는 ‘즐거움(生生之樂)’으로의 초대와 같았다. 어느 CEO에게나 그렇듯 할 일이 없어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일이 넘쳐나는 것과는 비교 되지 않을 정도로 고통스러운 일이다. 창업 후 채 30년도 안된 신생 조선은 이제 막 새로운 사상과 문화 그리고 실질적인 국가 경영 시스템을 만들어 나가는 시기였다. 이 시기, CEO인 세종에게 가장 절실히 요구된 것은 다름아닌 변혁의 시대를 살아가는 과감한 결단력과 추진력이었다. [할일 많은 CEO, 결단으로 우뚝 서다] 세종은 의사결정, 그 자체 보다는 그것이 이루어진 배경과 그것이 의도하는 바에 더 주목했다. 즉, 그는 화살을 날려 보내기 전에 화.. 2009. 2. 3.
[창조의 CEO 세종] 신생 조선을 업-그래이드 하라! CEO가 되기 전, CEO로 부름을 받을지 모른다는 한 가닥 희망 속에서 세종은 착실히 경영 수업을 쌓아나갔다. 하지만 그것은 당시로써는 전혀 가능성 없는 헛된 기대감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 가운데에서도 세종은 희망의 날을 벼리는 작업을 결코 게을리 하지 않았다. 준비마저 없다면, 정작 기회가 와도 결코 자기 것으로 만들지 못하리라는 것을 그는 누구보다도 잘 알았던 것이다. 사실 세종은 너무나 ‘호학(好學)’한 타입이어서, 설령 대군의 신분으로 평생 궐 밖에 나가 산다고 할지라도 결코 문제 될 게 없었다. 그에게 있어 공부는 인생을 벗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친구였다. 그에겐 정말 공부가 제일 쉬웠다. 그리고 공부를 하고 있으면 언제나 머리 속이 가득 차오르는 기쁨을 느낄 수가 있었다. 더구나 공부를.. 2009. 2. 3.
[창조의 CEO 세종] 마침내 새로운 CEO가 탄생하다 태종의 후임 CEO에 대한 기대감은 실로 대단했다. 그는 자신을 뛰어넘는 CEO를 그 자신이 뽑았다는 사실에 스스로 흐뭇했다. 그것은 분명 탁월한 경영자의 면모이다. 하지만 그는 한계가 있었다. 그가 역사에 손을 내밀면 역사는 언제나 그의 손에 묻은 피를 가리켰다. 거기엔 수많은 음모와 술수, 그리고 그의 거대한 욕망 때문에 쓰러진 희생자들의 피가 뒤엉켜 있었다. 형제들이 흘린 피는 그 중 가장 비극적인 예의 하나일 뿐이었다. 태종이 가장 ‘선선(善善)의 선(善)’의 경영을 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세종에게 천의무봉하게 경영권을 넘겨준 일이었다. 그것은 매우 질서정연했고, 신속했으며, 단 한 방울의 피도 묻이지 않고 진행된 일이었다. [네가 CEO의 전범(典範)이 될 수 있겠느냐?] 더구나 태종이 .. 2009. 2. 3.
[창조의 CEO 세종] 칼, 글 속에 잠들게 하라 태종의 차기 CEO에 대한 배려는 과거를 청산하는 과정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조선은 창업 되었지만 창업자인 태조 때부터 내려온 고려의 충신들에 대한 정치적ㆍ심적 부담감이 완전히 가신 것은 아니었다. 조선의 창업에 이어 그 소유권과 경영권을 분명히 하고 나자, 태종은 그 특유의 ‘전략적 사고’를 통해 지금껏 부담으로 남아있던 조선의 ‘저항세력’을 역(逆)으로 조선의 경영권 강화에 활용할 계획을 수립한다. 그리하여 태종은 고려 말 창업기에 가장 부담이었던 라이벌 정몽주ㆍ김약항ㆍ길재 등에게 오히려 포상 조치를 취함으로써 - 나중에 후임 CEO인 세종은 그들 자손에게 관직 진출의 기회를 확 열어준다. - 신하들의 충성도(로열티)는 이러해야 한다는 하나의 모범적 전형을 창출해 냈던 것이다. [적(敵)을 끌어 앉.. 2009. 2. 3.
[창조의 CEO 세종] 나는 준비 되어 있다 어느 시대건, 어떤 경영 환경에서건 신념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다른 사람들의 신념은 만들어 진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리더’로 불린다. 태종이 ‘화가이국(化家爲國)’(가문을 이끌어 나라를 이룬다는 뜻.)의 신념을 가지고 창업 제1공신의 역할을 수행한 것은 그의 신념의 발현이었다. 세종 또한 자기 신념에 투철한 사람이었다. 그는 1397년 태종의 셋째 아들로 태어나 학문을 철저히 마칠 무렵인 22세 때 태종으로부터 CEO 자리를 물려받았다. 물론 군사 통솔권은 없는 CEO 자리였다. CEO가 되리라는 생각을 보다 구체적으로 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는 자신이 생각하는 ‘자기 모습’이 되도록 끊임없이 노력한 사람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자신의 소임에 끊임없이 부응함으로써, 그 대답을 얻었다. 결과적으로 CE.. 2009. 2.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