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 강의/세종 | 창조의 CEO133 세종대왕식 파업 대응법 백 투더 퓨처. 군주 시대로 돌아가 보자. . 이 등식은 맞는가? 그렇다. 하지만 실행 방식까지 다 맞는 것은 아니다. 국가 경영이란 권력을 잡고 행사하는 것이지만, 그 힘을 드러내지 않고 쓸 줄도 알아야 하는 법. 비유하자면, 호랑이 같은 금수의 제왕이라 할지라도 때에 따라서는 토끼처럼 바짝 엎드리기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허를 내보이기도 하고, 약해 보이기도 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 같은 예로 삼국지의 유비는 자신의 약함을 드러내 보인 허허실실의 전략가. 전략상 농사꾼으로 위장해 조조의 눈을 피한 것은 쇼맨십 이상의 전략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이런 ‘약한’ 방법을 쓰는 것은 역사상 종종 등장한다. 물론 경우에 따라서는 효과적인 방법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결국 정치의 절반은 쇼맨.. 2009. 2. 3. 조선시대 국왕의 국가 지분은 몇 퍼센트? 어느 자리에선가 조선 시대 국왕을 한 기업의 오너 내지 CEO로 가정하고 질문한 적이 있다. 국왕이 소유하고 있던 국가 지분은 대략 몇 퍼센트나 되었을까? 대부분 100%라고 대답했다. 생사여탈권까지 쥐고 있던 만인지상의 군주라! 당연히 그럴 법 하다. 하지만 절대 권력을 쥐었던 그들의 지분을 물은 데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실제로는 100%를 소유했다고 볼 수 없기 때문.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내 생각엔 51% 정도가 적당할 것 같다. 나머지 49%는 왕 이외의 집단, 즉 관료들이 나누어 가진 것으로 생각된다. 왕이 준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자신들의 몫을 챙긴 것이다.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그들 또한 그만한 공을 세워 공신이 되었을 테고, 국가 경영에 있어 나름대로 리스크를 짊어지고 기여를 했.. 2009. 2. 3. 국가경영자로서 세종대왕 다시 읽기 하늘(.)과 땅(ㅡ)과 사람(ㅣ). 혁신은 천지인의 조화를 위해 새로운 창조적 동력을 얻어내는 데서 출발한다. 세상을 뜨겁게 끌어안고, 현실의 모순을 극복하며, 누구도 감히 상상치 못한 창조적 결과물을 내놓는 것이다. 경영에서 과거는 죽음이다. 경영이란 역류에 몸을 던지는 행위가 아니던가! 소아(小我)를 버리고 대승(大乘)을 드높게 세우는 것, 그것이 국왕의 소임이다. ‘대왕세종’ 방영 후 세종대왕과 그의 국가경영실적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드라마야 픽션이니 만큼 재미를 더하는데 몰두하겠지만, 세종시대에는 어떻게 해서 그 많은 창조적 성과가 나올 수 있었는지 궁금하다. 게다가 이런 경이로운 경영을 펼친 CEO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그의 경영상의 고민은 무엇이었을까? 해답의 열쇠는 천지인(天地人)에.. 2009. 2. 3. 세종의 리더십 스물 두 살의 새파란 나이, 아직 어리기만 한 젊은이가 국왕으로 등극해 한 나라의 명운을 진두지휘하기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총명한 임금은 능수능란한 역량을 발휘해 가며 한 나라를 반석 위로 올려놓은 것은 물론, 민족과 후세의 운명까지 바꾸어 놓았다. 개인적 운명은 물론 나라의 명운을 건, 피를 말리는 노력의 결실이었다. 세종! 조선의 제4대 국왕이자, 우리 역사상 가장 탁월하고 자애로운 성왕, 그는 어떻게 위대한 나라 만들기에 뛰어들었고, 마침내 뜻을 이룰 수 있었을까? 태종 이방원의 삼자로 태어난 세종은 왕재(王才)이기는 해도 왕이 될 수는 없는 처지에 있었다. 그런 그가 형인 양녕을 제치고 국왕이 된데에는 부단한 노력과 천부적 자질이 결정적으로 반영된다. 세종은 .. 2009. 2. 3. 책 속에서 배우는 리더의 경영 한 수 - 세종대왕 굴러가지 않는 바퀴는 썩는다. 바퀴를 굴리려면 멈춰 있던 수레를 움직이려는 의지가 있어야 하고, 달리게 하기 위해서는 바퀴살을 달고, 기름을 치는 등 혁신적인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수레가 바퀴를 움직이는 동력장치로 생명력을 얻게 되는 건 이 때부터이다. 고려라는 낡은 바퀴, 썩어 나동그라진 수레를 혁신해 내고, 다시 힘차게 달리게 하기까지의 과정은 흡사 조선초의 격변의 파노라마를 보는 듯 생생하다. 이 격변의 경영현장에 제왕으로서, 리더로서, 한 인간으로서 혁신에의 모든 노력을 다한 이가 세종이다. 세종은 어떻게 조선의 르네상스라는 전무후무한 경영에의 성과, 전인미답의 경영 정상에 우뚝 서게 되었을까? 그것은 영혼이 있는 개인, 철학이 있는 경영이 함께 했기 때문이다. 하늘(.)과 땅(ㅡ)과 사람(ㅣ).. 2009. 2. 3. 세종의 인재관리 세종, 인재에 대한 철학을 창조의 원천으로 삼다 영혼이 있는 정치를 하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할까? 세종시대의 정치적 담론은 여기서부터 출발한다. 그러기에 국가경영상의 목표를 이뤄내기 위해선 실천적 경영철학이 요구되고, 이를 실행할 창조적 정치 집단이 필요하다. 바로 이 지점에서 조선의 르네상스를 열은 세종시대의 인재관은 출발한다. 세종이 태어난 시기는 1397년 4월 10일(음력)이었다. 이 시기는 중국에서 명이 건국하고 28년이란 시간이 지난 시점이었다. 대륙의 패권을 놓고 벌인 원(元)ㆍ명(明) 왕조 교체는 세계제국 원을 통해 조성된 국제화 무드의 시기에서 한족 중심의 명으로 동북아 정세가 급변하는 시기였다. 세계의 경영 패권이 바뀐 시점에 조선에서도 새로운 창업이념인 국가 경영철학이 실질 국가경영에.. 2009. 2. 3. 이전 1 ··· 19 20 21 22 2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