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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읽는 4장의 별난 지도 1960년, 미국 상원 위원회는 의회보고서에 4장의 지도를 첨부해 제출한 적 있다. 이 지도를 펼치면, 여행시간을 기준으로 1840년대 범선시대로부터 1960년대 제트기 시대에 이르기까지 120년간 세계의 상대적 크기가 드러난다. 첫 번째 지도가 사람의 손바닥만 하다면, 마지막 지도는 압정 대가리보다도 작다. 그로부터 50여년이 훌쩍 지난 지금 세계는 바늘 끝보다도 작다. 작아진 세계를 말할 때 흔히 교통과 통신의 발달에 따른 거리의 협소화(狹小化) 현상을 주원인으로 든다. 하지만 보다 본질적 요인으론 국가 간 정책의 공조화 현상을 들 수 있다. 이는 자본이 움직이고 통제할 수 있는 거리이자, 국경이며, 자본의 논리가 만들어 낸 세계이기도 하다. 오늘날까지 국제정세를 좌우하는 대부분 국가들은 두 가지 공.. 2023. 6. 9.
제도가 문제일까, 이를 운영하는 리더가 문제일까? 제도가 문제일까, 이를 운영하는 리더가 문제일까? 임란시기 방호체계와 이순신의 전략을 통해 이 점을 살펴보보자. 1592년 4월 13일 오후 부산 앞바다에 나타난 적은 이튿날인 14일 부산진을 점령하고, 15일 동래부를 함락시킨다. 5월 3일에는 서울을, 28일에는 임진강을 건너 6월 15일에는 평양을 점령한다. 부산을 치기 시작해 개전 20일 만에 서울이 무참히 무너지고, 2개월 만에 개성, 평양까지 빼앗기는 등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전개된다. 일일 평균 26km의 놀라운 속도로 적이 북상한 셈이니 특별한 저항 없이 통과한 것이나 다를 바 없다. 임란 초 우리는 어떻게 해서 이렇다 할 방어 없이 밀리게 된 것일까? 임란 전 전쟁 발발을 두고 조정 내부에서는 이견과 혼란은 있었으나, 나름 전쟁에 대한 .. 2023. 5. 30.
이탈리아 카레지 별장과 조선 송석원의 차이점 역사상 ‘암흑시대’라는 말을 처음으로 사용한 사람들은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인이었다. 그들은 로마가 만족(蠻族)의 침략을 받은 시대를 조잡한 장막에 가려진 시대라고 했고, 그것이 이어진 과거 10세기를 잠자고 있던 시대라고 명명했다. 이전 시대가 이렇게 단정 내려진 데에는 앞으로 열어가야 할 시대에 대한 자신감이 반영되어 있다. 전(前)시대를 평가 절하해 버렸으니 그 보다 나은 시대를 만들어야 할 책임도 뒤따랐다. 일단 장막을 걷어 올리고 르네상스 인들은 위대한 로마의 문학, 유적 및 그 밖의 갖가지 가치 있는 것들에 새 생명을 불어 넣기 시작했다. 역사 창조의 웅장한 작업이 하루가 다르게 벌어진 것이다. 이런 대역사는 그들의 기쁨이자 기필코 수행해야 할 의무이기도 했다. 또한 학문의 모든 분야에 영향을.. 2023. 5. 22.
미켈란젤로의 혼을 다한 몰입 미켈란젤로는 많은 걸작들을 탄생시켰지만, 그중에서도 시스티나 성당 천장의 프레스코화는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투지와 집념이 만들어낸 경이로운 작품이다. 이 천장화는 교황 율리우스 2세가 1508년에 로마의 성 베드로 대성당 재건축의 일환으로 미켈란젤로에게 주문한 것이다. 자신을 조각가로 생각한 미켈란젤로는 처음에는 이 프로젝트를 맡는 것을 탐탁지 않아 했지만, 4년의 기간 동안 그는 이 작품에 완전히 빨려 들어갔다. 교황은 중요한 행사와 미사가 수시로 열리는 곳이니만큼 장기간의 작업은 원치 않았다. 게다가 교황이 돈을 제때 지불하지 않아 보수를 받지 못한 조수들이 모두 피렌체로 돌아가 버리고 말았다. 전투를 벌이느라 항상 로마를 떠나 있었던 교황은 만날 길이 없었고, 미켈란젤로는 극심한 경제적 어려움을 .. 2023. 5. 16.
사페라 베데아레(Saper vedere) 찬양 사페라 베데아레(Saper vedere) 찬양 ‘보는 방법을 아는 것(saper vedere)’이란 말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한 말로 그 뜻은 미학과 예술 용어로 작품을 감상하는 심미안을 갖춘 것을 말한다. 즉 다빈치에게 한계란 현존하지 않는 것, 즉 예측되지 않는 것을 상상하고 시도할 때 보이고, 그럴 때 답답하게 짓눌러 왔던 문제가 극복된다. 숨어 있는 가치, 만져지지 않는 가치를 아는데서 비롯된다. 사물이나 문제가 간단할 때에는 ‘보는 방법’은 그리 어렵지 않다. 하지만 복잡성을 띨수록 제대로 이해하기란 점점 더 어려워진다. 따라서 평면적 시각이 아닌 입체적 시각으로 사물과 세상을 볼 수 있는 남다른 통찰력이 요구된다. 오늘날 우리가 접하는 가변적 세계의 최대 특징은 아마도 ‘복잡계(複雜系, com.. 2023. 5. 7.
‘아침 글자(morning letter)’를 아시나요? “이 글자는 비록 28자 뿐일지라도 전환이 무궁무진하고, 간단하지만 요체는 다 들어 있고, 정밀하여 모두 통한다. 그러므로 슬기로운 사람은 아침이 끝나기 전에 다 깨칠 수 있고, 어리석은 사람이라도 열흘이면 다 깨칠 수 있다.” 오늘날 한글을 배우는 외국인들은 이처럼 쉽게 배울 수 있는 한글의 장점을 들어 ‘아침 글자(morning letter)’라고 부른다. 이 글자는 어떻게 해서 만들어 졌고,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를 알기 위해선 학창시절 ⟪국어⟫시간에 잠깐 접한 ⟨훈민정음(訓民正音)⟩ 서문을 다시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말이 중국과 달라 한자와 서로 통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어리석은 백성들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마침내 그 뜻을 펴지 못하는 이가 많다. 내가 이를 어여삐 여겨 새로.. 2023. 5.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