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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구의 주체는 ‘도망자 무리’ 왜구의 주체는 ‘도망자 무리’ 왜구의 주체가 누구인지를 규명하려는 시도가 한중일 간에 있어 왔다. ‘왜구’라 함은 구체적으로 누구를 가리킬까?《고려사》는 왜구의 주체 세력이 누군지를 분명히 밝혀주고 있다. 일본 사신이 고려를 방문한 것은 공민왕 17년인 1368년, 왜(倭)의 승려 본토(梵盪)와 본류(梵鏐)가 방문하면서부터이다. 이들은 왜구 금지[禁寇]를 요청하는 고려 정부의 공식 문서에 대한 회답[回書]을 가지고 왔는데, 그 내용은 지금 남아 있지는 않다. 다만 그로부터 9년이 지난 1377년(우왕 3년) 6월 판전객시사(判典客寺事) 안길상(安吉祥)이 일본에 갈 때 가지고 갔던 첩장(牒狀)을 통해 그 내용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첩장에는 고려 금룡(金龍)이 일본을 방문한 것에 대한 회답으로 왜측의 세이.. 2015. 12. 30.
‘누구도 죽지 않을’ 생존선택의 법칙 위기의 상황에 접해 우리 중 누군가가 희생돼야 한다면, 누구를 살리고 죽일 것인가? 많은 기업들은 구조조정이라든가, 사업개편, 인수 합병 등의 과정에서 어떤 부분은 살려내고 어떤 부분을 줄이거나, 없애버린다. 그들이 이런 결정을 내리는 배경에는 어떤 동물적 역할이 작용하기 때문일까? 벨링 땅다람쥐 세계에서 그 원인을 규명해 본다. 벨링 땅다람쥐의 선택 미국서부 캘리포니아주 네바다에 위치한 시에라 사막. 이 황량한 사막에는 벨딩 땅다람쥐(Spermophilus beldingi)가 살고 있다. 이 조그마한 설치류는 1년의 대부분은 동면하고, 여름 한철 동안(3~4개월)에만 땅 위로 모습을 드러낸다. 이들은 잠에서 깨는 것과 동시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굴 밖으로 나와야만 한다. 이들은 살기 위해 필연적으로 .. 2015. 11. 25.
르네상스가 이룩한 탁월한 브랜드 가치 르네상스가 이룩한 탁월한 브랜드 가치 14~15세기 이탈리아에서 나타난 르네상스는 흔히 ‘문화와 예술의 황금시대’로 불린다. 미술, 건축, 철학, 사상 등 다양한 분야의 수많은 천재들이 저마다 솜씨를 뽐내며 자기 분야를 넘어서는 혁신을 이뤄냈고, 역사의 흐름을 바꾼 시대로 평가받기 때문이다. 혁신은 도미노처럼 사회 곳곳에서 연쇄 작용을 일으켰는데, 그 중심엔 뛰어난 창조적 혁신가들이 있다. 이 같은 인재들이 한꺼번에 출현한 것은 역사상 유례가 드문 일이었다. 당시 이탈리아 도시국가에는 뛰어난 인재들을 끌어들이는 요인이 몇 가지 있었다. 먼저, 인재에 대한 도시국가의 갈망이었다. 각 도시의 귀족과 토후들은 뛰어난 예술가들을 식구로 데려가려고 온갖 노력을 다했다. 그들은 이 대가들이 지식과 기술을 맘껏 발휘.. 2015. 11. 25.
폴크스바겐 사태로 본 패러다임 전환 2015. 10. 30.
‘일본발(發) 왜구’의 발호-료순의 정치공작 ‘일본발(發) 왜구’의 발호-료순의 정치공작 1350년 ‘경인년 왜구’ 이후, 1360년대에는 왜구가 다소 소강상태를 보이다가 이 시기를 지난 1372년부터 고려에 왜구가 갑자기 크게 출몰한다. 그 무렵 일본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이 시기는 1371년 이마가와 료슌(今川了俊)이 규슈 단다이(九州探題)로 내려온 다음 해라는 특징이 있다. 왜구 재출몰은 이와 관련있다. 일본에서는 남북조 내란 말기에 북조(北朝)의 3대(代) 쇼군 아시카라 요시미츠(足利義滿)가 남조가 장악하고 있는 규슈를 탈환하기 위해 1370년 이마가와 료슌을 규슈 탐제로 임명한다. 탐제(探題)란 일본 무로마치(室町) 막부 시대 주요 지방을 다스리던 지방장관을 말한다. 다음해 료슌은 일족의 장군들과 함께 규슈에 상륙해 이곳의 지.. 2015. 10. 20.
혁신은 밑바탕을 읽어내는 힘에서 나온다 2015. 10.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