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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부의 ‘모르쇠’ 전략 일본 정부의 ‘모르쇠’ 전략 왜구 활동에 대해 공식적으로 일본은 어떤 태도를 취했을까? 고려 정부의 왜구 금압 요구를 받은 일본 정부는 어떤 형태로든 왜구 문제에 대해 자국의 입장을 밝히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금압을 요청하는 고려 측의 주장에 대해 일본 조정의 공식 입장은 “회답하지 않고 막부의 처리에 맡긴다”는 것이었다. 이 같은 조치의 일환으로 일본 정부는 1368년 1월 중 승(僧) 본토(梵盪)와 본류(梵鏐)를 고려에 보빙사로 보내 막부의 회답공문을 바쳤다. 하지만 막부의 회답은 고려 정부의 기대와는 크게 다른 것이었다. 왜구를 금지하겠다는 적극적 의지라기보다는 ‘왜구가 규슈, 시코쿠(四國) 등지에 할거 하고 있는 무리들이어서 교토의 막부로서는 어쩔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처럼 당시 아시까가.. 2017. 2. 3.
동아시아 전체의 골칫거리, 왜구 동아시아 전체의 골칫거리, 왜구 한반도와 일본열도는 바다를 사이에 두고 직접적인 접점에 놓여있다. 이 점은 양국 관계에서 불가피한 지리적 여건으로 작용하고 있다. 가까운 거리라는 이유로 문명사적 교류도 활발했지만, 그로 인해 한반도는 왜구 침구의 가장 극심한 피해를 입어 왔다. 14세기 중엽부터 고려는 반원자주운동을 추진했으나, 40여 년 동안 계속된 홍건적의 침입은 서북지방으로부터 개경에 이르는 연도 인근의 제읍(諸邑)들을 모조리 폐허로 만들어 버렸다. 먹을 것이 없는 극도의 기아 상태에서 백성들은 죽은 자식을 서로 바꾸어 먹을 정도로 비참한 삶을 이어 갔고, 시체를 파먹은 개들은 미쳐서 개경 시내를 어슬렁거릴 정도였다. 홍건적에 의한 피해도 컸지만, 왜구에 의한 침입과 피해는 이보다 규모나 횟수면에서.. 2017. 1. 24.
왜구의 주체는 ‘도망자 무리’ 왜구의 주체는 ‘도망자 무리’ 왜구의 주체가 누구인지를 규명하려는 시도가 한중일 간에 있어 왔다. ‘왜구’라 함은 구체적으로 누구를 가리킬까?《고려사》는 왜구의 주체 세력이 누군지를 분명히 밝혀주고 있다. 일본 사신이 고려를 방문한 것은 공민왕 17년인 1368년, 왜(倭)의 승려 본토(梵盪)와 본류(梵鏐)가 방문하면서부터이다. 이들은 왜구 금지[禁寇]를 요청하는 고려 정부의 공식 문서에 대한 회답[回書]을 가지고 왔는데, 그 내용은 지금 남아 있지는 않다. 다만 그로부터 9년이 지난 1377년(우왕 3년) 6월 판전객시사(判典客寺事) 안길상(安吉祥)이 일본에 갈 때 가지고 갔던 첩장(牒狀)을 통해 그 내용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첩장에는 고려 금룡(金龍)이 일본을 방문한 것에 대한 회답으로 왜측의 세이.. 2017. 1. 13.
종자를 통해 보는 인류사의 위대한 가르침 종자를 통해 보는 인류사의 위대한 가르침 농부는 굶어 죽을지라도 씨앗을 먹지 않는다 아직 눈뜨지 않는 씨와 이제 막 자라기 시작한 세상의 모든 씨앗을 결코 짓이기지 않는다 오래 전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은 티그리스, 유프라테스 강 주변에서 밀을 재배했고, 중국인들은 황하와 양쯔 강 변에서 벼를 재배했다. 마야족은 유카탄 평원에서 옥수수를 심었고, 잉카 사람들은 고랭지에서 감자를 재배했다. 이런 점을 종합해 볼 때 확인할 수 있는 한두 가지 공통점이 있다. 지역 특유의 기본 작물을 재배했다는 것과, 곡류는 씨앗 형태를 띠고 있다는 점이다. ‘종자=씨앗’이며 동시에 식량이다. 식용으로 섭취된 이후 씨앗은 한시도 그 긴요성이 간과된 적이 없다. 역사적 사실로 식량 문제에 소홀했거나, 인간의 힘으로 막을 수 없는 .. 2017. 1. 5.
히말라야 등반에서 깨닫는 평범성의 가치 대한민국 경영자들 사이에 2000년대 들어 히말라야 원정 등반의 성공이 잦아진 까닭이 회자된 적 있다. 한 경제연구소에서 회원들을 대상으로 퍼뜨린 말인데, 이야기인즉, 1953년 에드먼드 힐러리 경이 에베레스트 첫 등반에 성공한 이후 2차 등반은 10년 지나서야 이루어졌는데 최근 들어서는 일 년에도 몇 명씩 등정에 성공한다는 것이다. 이런 성공의 이유는 격세(隔世)를 느낄 법한 장비의 발달, 다양한 루트 개척도 원인이지만, 베이스캠프를 7부 능선에 치다보니 나머지 3부를 정복하는 시간이 훨씬 짧아졌다는 분석이다.  예전에 3부 능선쯤에서 시작한 정상 공략이 요즘 들어서는 정상 가까이인 7부에서 시작되다보니 출발부터가 다르다는 것이다. 이것을 경영에 빗대 기업은 경영 목표를 높게 세우면 세울수록 성공가능성.. 2016. 12. 29.
상호 연결할 때 조심해야 할 것들 상호 연결할 때 조심해야 할 것들 인류의 오랜 소통 역사상 1858년은 매우 중요한 해를 장식한다. 뉴펀들랜드와 아일랜드 사이에 최초의 대서양횡단 해저케이블이 부설된 것이다. 바다 밑 3200킬로미터에 깔린 이 케이블로 인류는 지리적 한계를 극복하는 새로운 상호 연결에의 시대를 맞이한다. 그 전의 통신수단은 선박에 의한 우편물 전달이 고작이었다. 이 같은 방식은 항해의 위험 및 기상 조건에 따라 수주일 씩 지연되곤 했다. 그런데 무한한 과학의 진보로 분리되어 있던 두 세계가 마침내 전신(電信) 기술로 만나게 된 것이다. 해저 케이블이 처음 부설되었을 때, 두 대륙에 사는 사람들은 경이로움에 압도되어 입을 다물 줄 몰랐다. 얼마나 흥분이 대단했는지 양쪽 사람들은 곧 서로의 손을 맞잡은 듯 심리적으로도 가까.. 2016. 12.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