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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왜공정: 일본 신왜구의 한반도 재침 음모] 언론사 보도 왜구의 탄생과 한반도 침략사 남왜공정=일본의 한반도 침략사를 다룬 책. 일본 왜구의 탄생부터 성장까지 그 이면에 담긴 내막을 파헤쳤다. 저자는 고대로부터 1149년간 이어진 침략행위 간 시차를 통해 일본의 한반도 침략은 ‘주기성’과 ‘불변성’을 띠고 있다고 주장한다. 2045년 일본의 재침을 예견하고 이를 막기 위한 주요 원칙과 방법론, 대일관계 대책을 제시했다. (전경일 지음, 다빈치북스, 408쪽, 1만6500원) [출처: 한국경제신문 2011.12.15] 남왜공정 = 전경일 지음. 인문경영연구소장인 저자는 책에서 지난 1천620년간 이어져온 일본의 한반도 침략 야욕을 짚어보고 향후 대응 방안을 모색한다.저자는 특히 강화도 조약부터 한일합방까지 34년의 시차가 있다는 점을 근거로 2045년 일본의 한.. 2011. 12. 16.
[남왜공정]-일본 신왜구의 한반도 재침음모 (전경일) 남왜공정 일본 신新 왜구의 한반도 재침 음모 이번에 장장 7년의 세월을 들여 를 냈다. 감회가 새롭다. 다룬 바는 그간 쓴 책들의 범주나 주제를 뛰어 넘었으나, 서기 193년부터 2011년까지의 방대한 연구 조사가 선행되어야만 했고, 한일사를 꿰는 지식의 광대함이 요구되었다. 게다가 "역사가 현재를 설명하는 생생한 교훈이 되지 못하면 그저 본령에서 떨어져 나간 박편薄片에 불과하다"는 생각 하에 현대사와 한일 미래사까지 내다보느라 자못 자라목이 기린 목은 된듯하다. 책 중에 친일, 친미의 역사적 뿌리를 더듬어 본 것은 민족사에 크나큰 이정표로 삼을 만하다. 그만큼 영토, 영해 문제의 갈급한 현실에 대한 발언이기도 하고, 감히 서애西厓의 대저를 빌러 보자면 민족 운명에 '징비懲毖'코자 한 면이 자못 크다. .. 2011. 12. 9.
[경종] 복수로 살지 아니하고 형제의 의를 다하라 재위기간 4년. 아버지 숙종으로부터 생모인 장희빈에 대한 사랑이 식자, “누구의 자식인데 그렇지 않겠는가?”라며 멸시까지 받았던 조선의 제 20대 임금, 경종. 그는 당쟁의 결과로 왕위에 오르고 당쟁의 결과로 독살되었다는 의문을 남긴 채 짧은 한 인생을 마감했다. 재위 동안 노론과 소론의 당쟁의 절정기를 보낸 국왕을 만나본다. -왕께서는 부왕(숙종)이 정말 힘들게 얻은 아들이지요? “그렇다네. 부왕께서 즉위한지 14년 만에 본 아들이니 오죽 애지중지 했겠나. 태어나 3개월 만에 원자로 책봉되고, 3세가 되자 왕세자로 책봉될 만큼 관심을 많이 받았었지.” -그런데 부왕이 아버지로서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운 말을 하며 아들을 부정한 것은 무엇 때문이었나요? “어머니(장희빈)에 대한 애정이 식자, 그 아들마저 .. 2011. 12. 7.
[숙종] 정치는 변덕스럽게 하고, 경제는 실제를 구하라 무릇 정치, 경제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다면 이보다 더 나라를 잘 다스리는 게 어디 있겠는가 마는 잣은 정치적 변동에도 그나마 경제의 뿌리는 내리기 시작했으니 숙종 연간이 그러할 것이다. 14세의 나이에 국가를 물려받아 46년간 조선의 19대 국왕으로서 치세를 다한 숙종을 만나본다. -왕께서는 어린 나이에 국왕이 되셨는데요, 송시열이라든가 원로들의 득세가 대단해 ‘군약신강’의 구도 하에서 어떻게 정국을 움켜쥐실 수 있었는지요? “음. 정말 대단했지. 내가 배운 게 뭐던가? 사내정치의 묘수 아니던가? 나는 정치란 끝없이 줄세우기를 하며 왕권을 강화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네. 권신들에게 휘둘리지 않는 법을 일찍 체득했다고나 할까.” -일테면 사내정치를 정치에 활용했다? 그런 말씀이신지요?“ “그런 셈이지. 나.. 2011. 11. 30.
[현종] 무효경쟁으로 세월을 허비하니 정치의 본질은 실종되고 19세의 현종은 북벌을 강행하려 했던 아버지 효종의 급작스런 사망으로 왕위에 오른다. 독살설이 끊이지 않는 미스터리로 남아 있는 효종의 죽음은 그 죽음의 미스터리 한가운데 있던 송시열과 산당의 존재가 있는 한, 현종 자신에도 닥칠 불행한 운명의 전주곡과도 같은 것이었다. 즉위기간 내내 왕실의 의례를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예송논쟁(禮訟論爭)으로 조정은 날을 밝히고 있었고, 거기에 정치의 본질인 민생이 자리 잡을 곳은 없었다. 조선의 18대 국왕 현종을 만나본다. -왕께서는 재위 15년 동안 ‘상복을 어떻게 입을 것인가’ 하는 문제로 날을 세우다 시피하셨는데요. 정치의 근본이 그보다는 민생에 있는 것은 아닌지요? “어디 이르다 뿐인가. 허나 예송논쟁은 불가피한 것이었네. 인조반정 이후 호란과 북벌이란 키워.. 2011. 11. 25.
[효종] 실행력이 부족한, 혹은 실행할 수 없는 자의 안타까움 형 소현세자와 동생 봉림대군은 달랐다. 달랐기에 다른 길을 가고자 했던 것인지, 형을 밀어내고 왕으로 추대되었기에 형과 다른 길을 걸어야 했던 것인지 의문은 남는다. 그의 아버지 인조의 바람대로 심양에 머물 때 형과 달리 소무(蘇武)처럼 행동한 그였기에 명분만 내세웠던 인조의 눈에 들었는지 모르겠다. 조선의 17대 국왕 효종의 미완의 북벌을 만나본다. -형님과 여러 면에서 달랐다는 점이 왕의 차이 일 텐데요. 소현세자가 친청(親淸) 정책을 통해 실제에 기반한 정치를 펼치려 했다면 왕께서는 부친인 인조와 같은 정치적 입장을 보이시는데요? 우선 정치적 배경부터 살펴보시죠? “심양에 있을 때 나와 형은 완전히 다른 입장이었지. 형님은 나날이 강성해 가는 청을 보며 여기서 배울 게 많다, 우리 조선도 청을 통해.. 2011. 11.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