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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의 CEO 세종12

태조 이성계의 리더십 _ 나는 정치 군일일 뿐이었다 태조 이성계의 리더십 _ 나는 정치 군일일 뿐이었다 무관(武官)의 칼은 운다. 밖으로는 나라의 강역(疆域)을 넘보는 적들을 향해, 안으로는 손에 쥐어질 듯 가까운 국가 권력과 그것을 향해 꿈틀거리는 자신의 욕망을 향해... 나라의 령(令)을 따르면 일등 공신이 되나, 자기 욕망을 좇으면 무소불위의 국가 권력을 움켜쥐게 되는. 그래서 이성계 같은 정치군인의 출현은 나라의 먼 장래까지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군인이 칼을 안으로 돌리게 되면, 그는 더 이상 군인이 아니다. 정치군인은 이미 권력에 단맛을 들인 반란군 주모자인 것이다. 그러나 근세 이전 권력 창출은 대부분 이런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우리 역사상 마지막 왕조를 세운 조선의 시조 이성계도 예외는 아니다. 문(文)은 칼 앞에서 무력하기만 했다. 더구.. 2009. 2. 25.
국가경영자로서 세종대왕 다시 읽기 하늘(.)과 땅(ㅡ)과 사람(ㅣ). 혁신은 천지인의 조화를 위해 새로운 창조적 동력을 얻어내는 데서 출발한다. 세상을 뜨겁게 끌어안고, 현실의 모순을 극복하며, 누구도 감히 상상치 못한 창조적 결과물을 내놓는 것이다. 경영에서 과거는 죽음이다. 경영이란 역류에 몸을 던지는 행위가 아니던가! 소아(小我)를 버리고 대승(大乘)을 드높게 세우는 것, 그것이 국왕의 소임이다. ‘대왕세종’ 방영 후 세종대왕과 그의 국가경영실적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드라마야 픽션이니 만큼 재미를 더하는데 몰두하겠지만, 세종시대에는 어떻게 해서 그 많은 창조적 성과가 나올 수 있었는지 궁금하다. 게다가 이런 경이로운 경영을 펼친 CEO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그의 경영상의 고민은 무엇이었을까? 해답의 열쇠는 천지인(天地人)에.. 2009. 2. 3.
세종의 리더십 스물 두 살의 새파란 나이, 아직 어리기만 한 젊은이가 국왕으로 등극해 한 나라의 명운을 진두지휘하기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총명한 임금은 능수능란한 역량을 발휘해 가며 한 나라를 반석 위로 올려놓은 것은 물론, 민족과 후세의 운명까지 바꾸어 놓았다. 개인적 운명은 물론 나라의 명운을 건, 피를 말리는 노력의 결실이었다. 세종! 조선의 제4대 국왕이자, 우리 역사상 가장 탁월하고 자애로운 성왕, 그는 어떻게 위대한 나라 만들기에 뛰어들었고, 마침내 뜻을 이룰 수 있었을까? 태종 이방원의 삼자로 태어난 세종은 왕재(王才)이기는 해도 왕이 될 수는 없는 처지에 있었다. 그런 그가 형인 양녕을 제치고 국왕이 된데에는 부단한 노력과 천부적 자질이 결정적으로 반영된다. 세종은 .. 2009. 2. 3.
책 속에서 배우는 리더의 경영 한 수 - 세종대왕 굴러가지 않는 바퀴는 썩는다. 바퀴를 굴리려면 멈춰 있던 수레를 움직이려는 의지가 있어야 하고, 달리게 하기 위해서는 바퀴살을 달고, 기름을 치는 등 혁신적인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수레가 바퀴를 움직이는 동력장치로 생명력을 얻게 되는 건 이 때부터이다. 고려라는 낡은 바퀴, 썩어 나동그라진 수레를 혁신해 내고, 다시 힘차게 달리게 하기까지의 과정은 흡사 조선초의 격변의 파노라마를 보는 듯 생생하다. 이 격변의 경영현장에 제왕으로서, 리더로서, 한 인간으로서 혁신에의 모든 노력을 다한 이가 세종이다. 세종은 어떻게 조선의 르네상스라는 전무후무한 경영에의 성과, 전인미답의 경영 정상에 우뚝 서게 되었을까? 그것은 영혼이 있는 개인, 철학이 있는 경영이 함께 했기 때문이다. 하늘(.)과 땅(ㅡ)과 사람(ㅣ).. 2009. 2. 3.
세종의 인재관리 세종, 인재에 대한 철학을 창조의 원천으로 삼다 영혼이 있는 정치를 하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할까? 세종시대의 정치적 담론은 여기서부터 출발한다. 그러기에 국가경영상의 목표를 이뤄내기 위해선 실천적 경영철학이 요구되고, 이를 실행할 창조적 정치 집단이 필요하다. 바로 이 지점에서 조선의 르네상스를 열은 세종시대의 인재관은 출발한다. 세종이 태어난 시기는 1397년 4월 10일(음력)이었다. 이 시기는 중국에서 명이 건국하고 28년이란 시간이 지난 시점이었다. 대륙의 패권을 놓고 벌인 원(元)ㆍ명(明) 왕조 교체는 세계제국 원을 통해 조성된 국제화 무드의 시기에서 한족 중심의 명으로 동북아 정세가 급변하는 시기였다. 세계의 경영 패권이 바뀐 시점에 조선에서도 새로운 창업이념인 국가 경영철학이 실질 국가경영에.. 2009. 2. 3.
세종의 창조경영 세종과 21세기 창조경영의 조화로움 왕은 젊어서 등극했다. 새파란 22살, 등극할 때만이 아닌, 평생 동안 젊었다. 촌각을 아껴 앞서 나갔고, 이끌었다. 인(仁)을 쌓아서 나라를 열겠다( 累仁開國)는 굳은 신념은 용광로 같은 실행력을 얻었다. 하늘(.)과 땅(ㅡ)과 사람(ㅣ)은 그의 경영의 주제이자 목표였고, 이를 어떻게 조화롭게 창조해 낼 것인가가 과제였다. 백성과 더불어 한바탕 살아가는 즐거움(生生之樂)을 누리도록 하는 것은 그의 천임(天任)이었다. 재위 32년. 시작이 그랬고, 끝맺음이 그러했다. 그의 숨결은 신생조선의 아침을 들깨웠고, 끝내 불멸의 경영으로 남았다. 전례 없는 국가경영의 극치가 펼쳐진 것이다. 스스로 왕으로 소임을 밝히기를, “오로지 애민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국가경영자의 책무가.. 2009. 2.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