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 Posted by 전경일소장 전경일 2021. 4. 7. 17:35

큰 그릇: 천부적 인덕을 갈고 닦아라

알다시피 유비는 제갈공명을 삼고초려로 영입했다. 그런데 유비의 그릇의 크기는 거기에만 있지 않다. 영입 후 그의 통 크고 넓은 리더십의 후량을 엿볼 수 있다. 삼고초려로 영입하는 과정도 지난했지만, 영입 후 인재를 어떻게 쓰느냐 하는 것은 순전히 CEO의 몫이다. 유비는 공명에게 나름 군사(軍師)로서의 역할을 시험도 해보고, 다른 한편 역량이 드러나도록 해 권위를 부여하는 방식을 취한다. 대표적인 예가 공명으로 하여금 수석 참모로 임명하고 그 첫 시험대로 화용도 전투의 전략을 전적으로 맡긴 것이다.

 

유비와 함께 했던 많은 측근들은 이에 못미더워 했다. 갑자기 들어 온 아웃사이더가 이너 서클의 질서를 깨뜨린 것으로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유비 진영은 관우, 장비, 조자룡 등과 참모로 미축, 간옹, 손건이 있었다. 이들은 유비와 함께 해 온 창업 동지다. 이들은 당연히 유비와 공명에게 불평할 법했다. 그러나 때마침 조조군이 쳐내려오자, 공명은 지휘권을 쥐고는 작전에 성공하여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드러낸다. 일종에 역량 테스트에 합격한 셈이다.

 

다음으로 공명은 내부인력을 거머쥐기 위한 전략 실행의 수순에 들어간다. 그 방법론은 가장 신망 높은 관우의 기세를 누르고, 그의 마음을 휘어잡는 것이었다. 관우는 유비 진영의 가장 핵심 인력이었음으로 관우는 잡는 것은 파급력에서도 남달랐다. 화용도 전투는 가장 좋은 모범이자, 요즘말로 케이스 스터디가 됐다. 알다시피 화용도 전투는 적벽대전에서 크게 이기고 패잔병을 추격할 때, 임무 부여 면에서 이미 판가름 난 공명의 철저한 계산이 작용한 히든 카드였다. 이때 공명은 다른 장수들에게는 각자 임무를 부여하면서도 관우에게만은 임무를 부여하지 않았다. 관우가 조조에게 은혜를 입었기에 그를 놓아줄 것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이에 관우는 군령장을 쓰고 출전했다. 하지만 공명의 짐작대로 관우는 신세를 갚기 위해 인정에 끌려 조조를 살려 보낸다.

 

관우가 조조의 목을 들고 오자 않자 공명은 관우의 목을 베라고 호통 친다. 다행히 유비가 나서서 용서해 달라고 요청한 탓에 공명은 슬그머니 못이기는 척하고 물러선다. 관우는 제갈량과 유비에게 이중의 고마움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이런 점이 바로 유비와 공명식 감성경영, 신뢰경영의 축을 이룬다.

 

유비는 통이 컸다. 사람을 씀에 있어서 개성적이고 큰 그릇이 될 만한 인물들을 중용했다. 한순간의 이해와 타산에 매몰되지 않았다. 예를 들어 공명과 법정은 각자의 능력이나 성격이 달랐지만, 유비 밑에서는 서로 협조하며 충성을 다했다. 이는 공을 앞두고 자칫 질투와 시기로 조직을 흩뜨릴 수 있는 소인배들의 행태와는 한참이나 먼 것이었다. 이런 점이 사람들이 유비를 따르게 한 진정한 힘이다.

 

익주를 점령할 때도 같은 황족인 유장을 칠 수 없다며 주저하여 결국 2년이라는 시간을 소비했다. 물론 그로 인해 군사 방통과 많은 군사를 잃긴 했으나, 그 점은 충분히 상쇄될만했다. 그는 리더에게 요구되는 덕목인 인의나 인정의 이미지를 강력하게 구축했기 때문이다.

 

적벽대전 전, 손권은 공명을 앞에 두고 유비는 왜 항복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에 공명은 조조는 한나라의 역적임으로 천하의 의인인 유비는 항복할 수는 없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이기고 지는 것은 정하는 일이고 주공은 단지 부정의에 맞서 싸울 뿐이라고.

 

이점은 공명이 유비를 대내외적으로 어떻게 포지셔닝 시키는지 잘 보여준다. 신의와 인을 바탕으로 한 너그럽고 정의로운 군주상이 각인되는 것이다. 유비는 사람을 잘 두었지만, 스스로 갖춘 인격과 도량으로 자신을 따르는 인재 집단을 만들어 냈다. 그것이 유비다운 인재관이자, 유비의 최대 매력인 것이다. 결국 경영자에게서는 인간다운 면모가 강하게 흘러나와 사람을 붙잡는 힘이 있어야 한다. 이런 인간적 면모야말로 조직이 힘을 받아 앞으로 나가는 원천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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