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베스트 강의/세종 | 창조의 CEO129

충성과 의리의 돌쇠모델 만들기 사람을 내 편으로 만드는 방법은 무엇일까? 내 수족처럼 쓰기 위해서는.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사고하고, 한 방향으로 움직이게 하기 위해서는? 이런 질문은 어느 시대, 어느 경영자나 다 같이 하는 고민하는 것일 터. 만일 여기에 기꺼이 답할 수 있다면, 천하에 무엇을 얻지 못할까 싶다. 이를 위해선 푸쉬(push)보단 풀(pull)전략이 주효하다는 것을 역사는 잘 보여주고 있다. 밀어내거나, 제거하는 방법보다 당길 수 있는 ‘힘’이 있다면, 천하는 이미 다 주어진 셈. 능히 모든 것을 제압하고도 남는다. 역사상 정적(政敵)에 대한 많은 사면과 복권이 이루어졌음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사실. 정권이 바뀔 때 마다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얄팍한 술수가 아닌 진실성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면, 이런 풀.. 2009. 2. 3.
세종의 선택: 천재경영론이냐, CEO육성론이냐?(2003.7.4 작성글) 최근 한국 재계의 두 거물 CEO가 각기 다른 인재론을 펴서 즐거운 논쟁이 되고 있다. 설령 양자의 의견이 이견(異見)이라 할지라도 인재를 얘기함에 있어 즐거움이 따르는 것은 인재를 중시한 우리의 역사적 배경과 궤를 같이 하고 있다 하겠다. 우선 두 대표 CEO의 인재관의 핵심을 살펴보면,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21세기는 천재가 기업을 먹여 살린다”는 생각에 바탕을 둔 ‘천재 경영론`으로 요약되고,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특출한 핵심 인재 양성보다는 훌륭한 리더를 육성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CEO 육성론`으로 요약된다. 어느 주장에 공감할지 그건 각자의 몫. 하지만 인재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이런 논의는 사람이 재산인 우리 실정에 비추어 볼 때 매우 중요한 사회적 담론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왜.. 2009. 2. 3.
세종대왕식 파업 대응법 백 투더 퓨처. 군주 시대로 돌아가 보자. . 이 등식은 맞는가? 그렇다. 하지만 실행 방식까지 다 맞는 것은 아니다. 국가 경영이란 권력을 잡고 행사하는 것이지만, 그 힘을 드러내지 않고 쓸 줄도 알아야 하는 법. 비유하자면, 호랑이 같은 금수의 제왕이라 할지라도 때에 따라서는 토끼처럼 바짝 엎드리기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허를 내보이기도 하고, 약해 보이기도 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 같은 예로 삼국지의 유비는 자신의 약함을 드러내 보인 허허실실의 전략가. 전략상 농사꾼으로 위장해 조조의 눈을 피한 것은 쇼맨십 이상의 전략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이런 ‘약한’ 방법을 쓰는 것은 역사상 종종 등장한다. 물론 경우에 따라서는 효과적인 방법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결국 정치의 절반은 쇼맨.. 2009. 2. 3.
조선시대 국왕의 국가 지분은 몇 퍼센트? 어느 자리에선가 조선 시대 국왕을 한 기업의 오너 내지 CEO로 가정하고 질문한 적이 있다. 국왕이 소유하고 있던 국가 지분은 대략 몇 퍼센트나 되었을까? 대부분 100%라고 대답했다. 생사여탈권까지 쥐고 있던 만인지상의 군주라! 당연히 그럴 법 하다. 하지만 절대 권력을 쥐었던 그들의 지분을 물은 데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실제로는 100%를 소유했다고 볼 수 없기 때문.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내 생각엔 51% 정도가 적당할 것 같다. 나머지 49%는 왕 이외의 집단, 즉 관료들이 나누어 가진 것으로 생각된다. 왕이 준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자신들의 몫을 챙긴 것이다.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그들 또한 그만한 공을 세워 공신이 되었을 테고, 국가 경영에 있어 나름대로 리스크를 짊어지고 기여를 했.. 2009. 2. 3.
국가경영자로서 세종대왕 다시 읽기 하늘(.)과 땅(ㅡ)과 사람(ㅣ). 혁신은 천지인의 조화를 위해 새로운 창조적 동력을 얻어내는 데서 출발한다. 세상을 뜨겁게 끌어안고, 현실의 모순을 극복하며, 누구도 감히 상상치 못한 창조적 결과물을 내놓는 것이다. 경영에서 과거는 죽음이다. 경영이란 역류에 몸을 던지는 행위가 아니던가! 소아(小我)를 버리고 대승(大乘)을 드높게 세우는 것, 그것이 국왕의 소임이다. ‘대왕세종’ 방영 후 세종대왕과 그의 국가경영실적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드라마야 픽션이니 만큼 재미를 더하는데 몰두하겠지만, 세종시대에는 어떻게 해서 그 많은 창조적 성과가 나올 수 있었는지 궁금하다. 게다가 이런 경이로운 경영을 펼친 CEO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그의 경영상의 고민은 무엇이었을까? 해답의 열쇠는 천지인(天地人)에.. 2009. 2. 3.
세종의 리더십 스물 두 살의 새파란 나이, 아직 어리기만 한 젊은이가 국왕으로 등극해 한 나라의 명운을 진두지휘하기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총명한 임금은 능수능란한 역량을 발휘해 가며 한 나라를 반석 위로 올려놓은 것은 물론, 민족과 후세의 운명까지 바꾸어 놓았다. 개인적 운명은 물론 나라의 명운을 건, 피를 말리는 노력의 결실이었다. 세종! 조선의 제4대 국왕이자, 우리 역사상 가장 탁월하고 자애로운 성왕, 그는 어떻게 위대한 나라 만들기에 뛰어들었고, 마침내 뜻을 이룰 수 있었을까? 태종 이방원의 삼자로 태어난 세종은 왕재(王才)이기는 해도 왕이 될 수는 없는 처지에 있었다. 그런 그가 형인 양녕을 제치고 국왕이 된데에는 부단한 노력과 천부적 자질이 결정적으로 반영된다. 세종은 .. 2009. 2.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