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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 강의/이순신 | 경제전쟁에 승리하라37

옥포해전: 경영자라면 태산같이 무거이 하라 옥포해전: 경영자라면 태산같이 무거이 하라 1592년 4월 13일 부산포에 상륙한 적은 다음 날 오전 전투를 개시해 불과 5시간 만에 정발(鄭撥)이 지키던 부산성이 떨어지자 파죽지세로 북상한다. 경상감사 김수가 4월 20일 이순신에게 공문을 보내 전라수군의 경상도 지역으로의 지원 출격을 조정에 상신했다는 전갈을 급히 보내온다. 왜적선은 500척에 달했지만, 이순신이 동원할 수 있는 함대는 고작 85척에 불과했다. 구름 떼처럼 몰려오는 적들을 맞아 어떻게 싸울 것인가? 이 미지의 싸움에 응하는 장군의 전략은 가장 기본적인 원칙을 준수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수군 병영의 분위기를 일신하고, 실전 훈련을 끊임없는 쌓는 것이었다. 수군조련도. 이순신 장군의 23전 23승이라는 무결점의 완벽한 승리 뒤에는 철저하고.. 2012. 8. 6.
400년 전 핏빛 남녘바다 나는 묵시의 남녘 바다 앞에 서 있다. 해역엔 가득 안개가 끼이고 앞은 가려져 잘 보이지 않는다. 저 바다를 400여 년 전 이순신은 밤낮으로 노려보았으리라. 바다는 적이 들어오는 길목이자, 적의 병참선과 첩보선이 교활하게 암약하는,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전장터였다. 장군은 적을 찾아 섬과 뭍 사이를 이 잡듯 샅샅이 뒤졌다. 그 사이에 바다가 있다. 나는 저 바다에서 장군의 지난하기만 했던 삶의 궤적을 만난다. 23전 23승의 무결점의 승리를 이뤄 낸 장군의 주요 해전들을 돌아보며 경영자로서 경제위기에 맞설 힘과 혜안을 얻는다. 장군이 맞아 싸운 7년간의 주요 임진왜란 해전들을 돌아봄으로써 장군이 지닌 불굴의 필사즉생의 정신과 지혜를 얻고자 한다. 1차 출전 1592년 5월 7일 옥포해전, 합포해전 (4.. 2012. 8. 1.
조선시대 무관직과 이순신 품계 조선시대 무관직 과거로 등용되는 무관은 대개 부위, 교위를 거쳐 장군이 된다. 종4품으로 승진하여 처음 장군이 되면 그 보직에는 일반적으로 만호(萬戶)가 주어진다. 장군으로 계속 승진하여 정3품 상계(上階) 절충장군이 되면 비로소 당상관(堂上官)으로 대우 받으며 령공(令公) 또는 영감(令監)으로 불린다. 또 승진하여 종2품 가선대부가 되면 동반(東班)의 품계와 구분이 없어진다. 이후 다시 승진하여 정2품 자헌대부가 되면 이때부터 대감(大監)으로 불리고 사후에도 시호(諡號)를 받는 등 특별대우를 받는다. 이러한 무관의 품계와 승진체계는 수군이나 육군 모두 동일하게 적용되었던 게 임란 당시의 제도였다. 임진왜란 전 이순신의 품계 이순신은 32세에 무과에 급제한 후, 함경도 동구비보의 종9품 권관(權官)부터 .. 2012. 6. 21.
[이순신] 상시적 대비책으로 전략적 유연성을 발휘하라 상시적 대비책으로 전략적 유연성을 발휘하라 1592년 4월 13일 오후 부산 앞바다에 나타난 적은 이튿날인 14일 부산진을 점령하고, 15일 동래부를 함락시킨다. 5월 3일에는 서울을, 28일에는 임진강을 건너 6월 15일에는 평양을 점령한다. 부산을 치기 시작해 개전 20일 만에 서울이 무참히 무너지고, 2개월 만에 개성, 평양까지 빼앗기는 등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전개된 것이다. 일일 평균 26km의 놀라운 속도로 적이 북상한 셈이니 특별한 저항 없이 통과한 것이나 다를 바 없다. 임란 초 우리는 어떻게 해서 이렇다 할 방어 없이 밀리게 된 것일까? 임란 전 전쟁 발발을 두고 조정 내부에서는 이견과 혼란은 있었으나, 나름 전쟁에 대한 대비책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1589년 1월 조정에서는 불차탁용.. 2012. 5. 15.
인생의 방향에 대해 고민할 때 저는 이순신 장군의 산소를 찾습니다 인생의 방향에 대해 고민할 때 저는 이순신 장군의 산소를 찾습니다. 홀로 찾기도 하고, 가족들을 데리고 가기도 합니다. 어느 때에는 해가 들어차는 동안 그곳에서 놀기도 합니다. 책을 쓸 때에는 더 자주 갔었습니다. 장군은 누구인가? 장군을 생각할 때마다 두가지 생각이 떠오르곤 합니다. 모든 승패의 주역은 결국엔 그 사람의 수양과 수신의 됨됨이며, 이를 요즘말로 표현하자면, 리더십 문제라는 것을. 결국엔 리더 자신의 문제이지, 환경이나 조건의 문제는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두번째로는, 역사란 무엇인가? 하는 점입니다. 미일 강대국에 크나큰 영향을 받는 우리 한반도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강대국의 대(對)한반도 정책이 크게 우려되곤 합니다. 저는 늘 그런 걱정이 앞섭니다. 이런 무거운 마음은 양식 있는 .. 2012. 2. 5.
상시적 대비책으로 전략적 유연성을 발휘하라 상시적 대비책으로 전략적 유연성을 발휘하라 1592년 4월 13일 오후 부산 앞바다에 나타난 적은 이튿날인 14일 부산진을 점령하고, 15일 동래부를 함락시킨다. 5월 3일에는 서울을, 28일에는 임진강을 건너 6월 15일에는 평양을 점령한다. 부산을 치기 시작해 개전 20일 만에 서울이 무참히 무너지고, 2개월 만에 개성, 평양까지 빼앗기는 등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전개된 것이다. 일일 평균 26km의 놀라운 속도로 적이 북상한 셈이니 특별한 저항 없이 통과한 것이나 다를 바 없다. 임란 초 우리는 어떻게 해서 이렇다 할 방어 없이 밀리게 된 것일까? 임란 전 전쟁 발발을 두고 조정 내부에서는 이견과 혼란은 있었으나, 나름 전쟁에 대한 대비책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1589년 1월 조정에서는 불차탁용.. 2011. 11.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