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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 강의/이순신 | 경제전쟁에 승리하라37

위기의 현실화 위기의 현실화 1592년 4월 13일 왜군 158,700명이 부산포에 상륙하는 것을 시발로 임진왜란은 발발한다. 마침내 우려했던 전란이 터진 것이다. 이순신은 바로 보름 전인 3월 27일에야 대포 쏘는 시험을 했고, 하루 전에는 지자포와 현자포 발사 훈련을 했다. 그야말로 폭풍이 몰아치기 직전 간신히 대책을 마련한 것이다. 전쟁 개시 바로 전까지 부족하나마 준비역량을 강화했다는 점에서 우리로서는 불행 중 다행이 아닐 수 없었다. 이때는 이순신이 전라좌수사에 부임한지 1년이 되는 때였다. 그렇다면 이 1년은 장군이 전란을 준비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을까? 이 짧은 기간 동안 장군은 어떻게 해전에 대비해 우리 수군의 준비상태를 파악하고 역량을 최대한 끌어올릴 수 있었을까? 이순신의 관직 경험을 보면, 발포만호.. 2011. 11. 14.
[이순신](전경일 소장) 임박한 전란과 준비역량 고향으로 내려온 이순신은 45세 되던 해 1월 다시 나라의 부름을 받는다. 조정에서 임진왜란의 낌새를 알아차리고 준비하려는 것과 북방을 안정시키려는 목적으로 ‘불차탁용(不次擢用)’을 한 것이다. 불차탁용이란, 쓸 만한 무신을 특별히 관직의 서열을 밟지 않고 천거해 채용하는 것을 말한다. 당시 이순신은 북방지역의 전공으로 서열 2위에 올라 있었다. 하지만 그는 천거되지 않았다. 대신 전라감사 이광의 군관으로 임명된 후 조방장을 겸임하게 된다. 이후 잠시 선전관으로 재직하다가 유성룡의 추천으로 정읍현감에 임명된다. 정읍현감은 이순신이 쌓아가는 경험 중 대단히 중요한 몫을 차지한다. 그 무렵 정읍 현감 직을 수행하며 장군이 터득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첫째, 이순신은 치민(治民)의 명성을 얻게 된다. 백성을 다.. 2011. 10. 31.
[전경일의 신간] 이순신, 경제전쟁에 승리하라 제가 이번에 신간을 냈습니다. 한번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이순신, 경제전쟁에 승리하라 2012년은 임진왜란 7주갑이자, 420주년이 되는 해! 경제전쟁의 승리자로 돌아온 이순신! 21세기 경제위기시대, 우리는 왜 이순신을 찾는가? 치열함과 탁월성의 경영, 경영학의 교범으로 이순신을 만나다. 필사즉생의 ‘이순신 정신’으로경제위기시대 글로벌 도전을 넘어 설 해법을 찾다! ………………………………………………………………………………………………………………………………. 기존에 알고 있는 ‘이순신 지식’은 거부한다! 통찰과 통섭의 시각으로 바라본 이순신 경제전쟁과 임진왜란의 전모를 밝히다! 거북선 R&D 센터 ‘골든 트라이 앵글’의 비밀!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의 승리의 중심에 거북선이 있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2011. 10. 26.
[이순신] 작은 첫출발과 원칙주의 이순신의 첫 출발은 화려하지 않았다. 무과 병과에 합격한 후 첫 관직은 마땅히 정9품인 효력부위(效力副尉)여야만 했다. 그러나 종9품인 권관에 임명되고 만다. 자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조선시대 서반의 품계는 18품 30계로 되어 있다. 7, 8, 9품은 부위, 5, 6품은 교위, 3, 4품은 장군, 1, 2품은 대부로 되어 있다. (35~37쪽 〈조선시대 서반의 품계와 대한민국 현재 직급체계 비교〉 참조) 관직 초기부터 불이익이 함께 했지만, 장군은 이를 원망하거나 불만삼지 않았다. 오히려 피나는 자기 노력의 기회로 삼았다. 어떤 상황에서도 실력주의는 현실을 헤쳐 나가는 열쇠가 된다. 장군에 대한 일화가 있다. 첫 관직인 권관 때의 일이다. 당시 감사로 있던 이준백이 자기 관할 하에 있는 여러.. 2011. 10. 11.
[이순신] 이순신 장군의 통섭적 상상력 필자는 휴가를 이용해 남해 한려 수도 일대를 돌아보았다. 집필과 관련된 여행이었지만, 나름 휴가를 자청한 여정이기도 했다. 남해 일대에 들어서는 순간, 이순신 장군과 관련된 유적지가 이토록 많을 수 있나 하는 생각이 자연스레 들 정도로 ‘이순신’은 가까이 있었다. 400여 년 전의 조선의 삼도수군통제자였던 이순신을 만나며 남다른 생각을 하게 됐다. 23전 23승의 무결점 완벽 승리야 익히 아는 바이지만, 승리의 원천을 만들어 낸 ‘이순신적’ 힘은 어디서 온 것일지 궁금했다. 돌아와 자료도 찾고, 쓰던 글편들을 다시 훑으며 이순신적 힘은 인문과 타학문 분야가 결합된 ‘통섭형 발상’에 있음을 알게 됐다. 예를 들어 보자. 우리가 익히 아는 거북선은 조선수군의 주력 함선인 판옥선과 함께 핵심 전선인데 배의 건.. 2011. 10. 6.
[이순신] 이순신 장군과의 만남 장군을 만나는 첫걸음은 장군의 생애를 돌아보는 일로 시작한다. 그 작업은 나의 옷깃을 여미게 한다. 마음은 숙연해지고 담대해진다. 장군은 어떤 성장과정을 겪었을까? 성장기, 남다른 우여곡절은 없었을까? 장군의 삶의 장대한 완결판을 보기 위해 나는 그 조촐한 첫출발로 돌아가고자 한다. 이순신 장군은 1545년 3월 8일 서울 마르내골(건천동)에서 태어났다. 자는 여해(汝諧), 이름은 순(舜). 중국 고대 성군인 순임금을 벤치마크 한다는 뜻에서 순신(舜臣)이라 지었다. 장군은 여덟 살 되던 때 충남 아산의 어머니 친정 동리로 이사해 글방을 다닌다. 집안의 경제적 어려움이 이사를 가게 된 배경이다. 장군은 어렸을 때부터 무(武)의 기상이 넘쳤다. 결혼한 후에도 글공부와 활쏘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아산 현충.. 2011. 9.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