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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경영/조선의 왕들15

[효종] 실행력이 부족한, 혹은 실행할 수 없는 자의 안타까움 형 소현세자와 동생 봉림대군은 달랐다. 달랐기에 다른 길을 가고자 했던 것인지, 형을 밀어내고 왕으로 추대되었기에 형과 다른 길을 걸어야 했던 것인지 의문은 남는다. 그의 아버지 인조의 바람대로 심양에 머물 때 형과 달리 소무(蘇武)처럼 행동한 그였기에 명분만 내세웠던 인조의 눈에 들었는지 모르겠다. 조선의 17대 국왕 효종의 미완의 북벌을 만나본다. -형님과 여러 면에서 달랐다는 점이 왕의 차이 일 텐데요. 소현세자가 친청(親淸) 정책을 통해 실제에 기반한 정치를 펼치려 했다면 왕께서는 부친인 인조와 같은 정치적 입장을 보이시는데요? 우선 정치적 배경부터 살펴보시죠? “심양에 있을 때 나와 형은 완전히 다른 입장이었지. 형님은 나날이 강성해 가는 청을 보며 여기서 배울 게 많다, 우리 조선도 청을 통해.. 2011. 11. 25.
[인조] 치욕을 갚는 방식을 네가 정령 몰랐단 말이냐? 쿠데타를 통해 집권한 인조 정부는 눈가리개가 씌워져 있는 양, 무모하게 명분론에만 집착했다. 이전 정권인 광해군 정부의 모든 것을 지워버리듯 대외정책에서 무리수를 두기 시작한다. 내부에서는 논공행상의 불협화음이 나타나 이괄의 난을 불어온다. 새로 집권한 세력에겐 자신들의 부귀영화를 누리려는 생각 외에 백성들은 안중에도 없었다. 해서 백성들은 반정공신을 향해 “너희들과 (광해군 정부) 사람들이 다를 게 뭐냐?”고 반정공신들을 풍자하는 상시가(傷時歌)가 회자될 정도였다. 선조 이후 조선을 분열과 전화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은 인조를 만나본다. -왕께서는 광해군을 몰아내고 정권을 잡았는데, 국정 운영이 너무 형평성에서 멀어진 감이 있고, 권력의 독점 현상으로 결국 이괄이 난을 일으켰었는데요. “왜? 내가 아무 노.. 2011. 9. 14.
[광해군] 과연 명분으로 백성들을 살릴 수 있단 말이냐? 서자로서 임금이 된 아비 선조는 자신의 서자에게 가혹하기만 했다. 임진왜란이란 초유의 전란 중에 조정을 둘로 나누는 분조를 이끌면서 실질적인 국왕으로서 전란을 관리해 냈지만, 왕이 될 기회마저 박탈당할 뻔한 광해군. 선조와 더불어 역대 조선 국왕 중에 가장 긴 기간 동안 궁궐 밖에서 보냈고, 몸소 전란의 현장을 뛰었으나 그에게는 운명적으로 명분에 가로 막힌 조선이라는 현실의 벽이 가로 막고 있었다. 조선의 15대 국왕, 광해군을 만나본다. - “하늘이 한 세대의 인재를 내는 것은 그들로서 한 세대의 임무를 완성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요즘 사대부들은 논의가 갈라져서 명목을 나누고 배척하는 데 거리낌 없으니 이제는 피차를 막론하고 어진 인재만을 거두어 시대의 어려움을 헤쳐 나가야 하리라.” 임금께서는.. 2011. 9. 14.
[연산군] 흥청망청 한 세상 분으로 살았더니 회한만 남는구나 우리 역사상 가장 폭정을 일삼았다고 평가되는 연산군. 그러나 그가 폭군의 DNA를 갖고 태어났길레 한 세상을 그토록 무도하게 살았을까? 그보다는 맺힌 한을 풀어내는 방법을 스스로 몰랐기 때문 아닐까? 국왕조차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이 있다는 것을, 한이 되는 일도 스스로 삭힐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을 그는 왜 몰랐을까? 정신적 콤플렉스가 있었기 때문일까? 국가를 다스리는 국왕이란 존재보다는, 가장 굵고 짧게 철저히 개인적 삶을 살다간 조선 제 열 번째 국왕 연산군을 만나보자. -조선국왕들을 색깔에 비유한다면, 왕께서는 어떤 색과 닮았다고 보십니까? “그야, 이르다 뿐인가? 붉은 핏빛이겠지. 이 대답을 원하고자 묻는 것 아니던가? -넘겨짚지 마시고요. 스스로 어떻게 생각하나 궁금해서 묻는 말입니다. “국왕.. 2011. 3. 14.
[예종] 질투심과 의욕과잉이 일을 망치다 왕은 용상에 올라 국정에 임한 때로부터 대개 죽어서야 임기가 끝난다. 임기가 어느 정도 보장돼야 통치자도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 하지만 14개월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더구나 모후의 수렴청정이 점철된 것이라면... 해서 왕의 건강과 안위는 국정에 필수요소다. 세조의 죽음으로 인한 새로운 정치 지형도. 그리고 새롭게 등장한 나이 어린 국왕... 조선의 예종은 훈신정치의 발호를 더욱 거세게 만든 장본인이었다. -왕께서는 조선 역사상 처음으로 수렴청정을 받아들이게 된 분인데요. 직접 통치하지 못하고 모후 정희왕후의 대리 통치를 받게 된 소회가 어떠신지? "그야 말할 것 있나. 형님 의경세자가 20살의 나이로 죽고 나자 나 또한 준비없이 19살 어린 나이에 왕위를 물려 받았고, 부왕(세.. 2011. 2. 15.
[단종] 너무 짧은 생애는 한이 되어 떠돈다 국가 경영이란 중책을 어린 왕에게 맡길 만큼 세상은 녹녹한 게 아니다. 하여 어린 왕세자는 자신의 가장 큰 후원자인 부왕이 유명을 달리하는 때로부터 한없는 나락으로 굴러 떨어진다. 권력 앞에 어제의 신하들은 야수가 되어 물어뜯는 게 정치판일 터! 여기 못다 핀 꽃으로 남아 영월 청령포 모래사장에는 푸른 물결 세월을 감고 도는 홍위(弘暐)의 넋이 지금도 잠 못 든다. 조선의 제 6대 임금, 단종. 그의 생애는 바람의 넋으로 떠돈다. -왕은 스스로 왕이 되리라고 생각했습니까? "선왕이 붕어하셨으니 내가 왕이 되는 건 당연한 이치겠죠. 헌데, 내가 너무 어려 만기를 찬람할 수 없었던 게 한이지요. 그러다보니 권력에 눈 먼 자들이 숙부를 사주해 왕위를 농락하고자 한 거고, 그게 계유정란이었던 게지요." -왕을 .. 2011. 2.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