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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일428

길 위에서 찾은 또 다른 길 사업은 길에서 줍는 거다. 줍지 않고 얻게 된 것이 있는가? 산을 오르며 만나는 무수한 사람은 저마다의 사연을 안고 있다. 아니, 산을 오르는 사람의 수만큼 많은 사연이 등로에 펼쳐져 있다. 나름의 시름과 비나리가 담긴 그 사연에는 배낭에 생뚱맞은 물건을 넣고 오르는 기이한 일도 한자리 차지한다. 거래처에서 수금한 돈다발과 함께 야간 무궁화호에 몸을 실은 사람도 있다. 말인즉 시간에 쫓겨 그랬다지만 사실은 산에서 돈 기운을 쐬고 그 힘으로 사업을 더 키워보고 싶은 비나리에 나선 사람이다. 법인 통장을 들고 산에 오르는 사람은 출금난보다 입금난에 0이 몇 개 더 붙기를 바라고, 배낭에 시제품이 들어 있는 사람은 그 제품이 시장에서 불티나게 팔려나가길 바란다. 또한 매출목표를 적은 현수막을 짊어지고 산에 올.. 2009. 2. 2.
산 무덤 죽음을 찾는 것은 삶을 찾는 것처럼 어렵다. 산에서 우리는 무엇을 찾아야 할까? 산에서는 무시로 육신의 마지막 집터를 보게 된다. 때로는 무심히 또 때로는 눈길을 꽂아 묘비명이라도 훑어본다. 어떤 무덤은 정갈하게 정성껏 가꿔져 있고, 어떤 무덤은 칡덩굴과 아카시아 나무가 점령해 똬리를 틀고 있다. 죽은 다음에야 무덤이 한없이 초라한들 무슨 상관있으랴만 그래도 후손의 손길을 받지 못하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짠했다. 잘 가꾼 무덤의 주인은 살아서 어떤 생을 꾸렸을까? 생의 끝은 저렇게 남는구나. 우리 삶의 마지막은 결국 흙으로 돌아가는구나. 내가 딛고 있는 이 흙은 멀고 먼 과거의 누군가가 육신을 사른 흔적이구나. 산 무덤을 바라볼 때면 문득 삶과 죽음이 그다지 소원치 않으며 죽음 앞에서도 그리 섭섭지 않을.. 2009. 2. 2.
아버지, 당신을 영원히 사랑합니다 아버지의 시신을 땅에 묻을 때, 나는 아버지와의 추억을 떠올렸다. 아버지에 대한 나의 기억은 언제나 새롭다. 막내인 나는 형제들 중 누구보다도 사랑받은 자식이었다. 어떤 기억은 시간이 갈수록 또렷해지곤 한다. 무서운 꿈을 꾸고 났을 때, 나는 아버지 품속으로 파고들었고, 당신은 잠결에서도 나를 어르며 받아 주셨다. 아버지의 무릎에 앉아 응석을 부리며 밥을 먹던 일, 아버지의 팔베개를 벤 채 아스라이 잠속으로 빠져들던 일, 아버지의 등에 업혀 군청 뒤 군인 극장에 갔다 오던 일... 그 모든 기억이 순식간에 되살아났다. 아버지는 그렇게 큰 사랑을 베풀고 내 곁을 떠나가신다. 아버지의 생체 시계가 멈춘 날, 나는 사람에 대한 사랑과 극진한 마음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다. 불교에서 말하는 연기사상(緣起思想)처.. 2009. 2. 2.
오늘 하루, 그대와 함께 해서 좋다 전경일 우리의 하루는 나의 생활을 이룹니다. 작디작은 생활은 모여 일상이 되고 내가 지은 생각은 온전히 나를 이룹니다. 하루를 출근해 낯익은 타인들과 시간을 보내며 우리는 점차 친숙해 집니다. 어느덧 나도 모르게 서로를 알게 되고, 때가 묻게 되는 것이죠. 9 to 6 출근해 인사를 하고, 회의를 하고, 밥을 같이 먹고, 업체를 만나고, 매출 때문에 쪼이고... 그러다보면 어느덧 하루는 마감시간으로 달려갑니다. 이제 집으로 갈 시간이 찾아오는 것이죠. 여느 날처럼 바쁜 아침에 가족과 인사조차 못하고 집을 나왔거나, 눈 부비고 일어난 아이들을 끌어 안아 주지도 못한 채, 아파트 바닥에 구두굽을 부딪치며 급히 뛰어 내려오거나, 비누냄새 풍기며 버스나 지하철에 올라탑니다. 하루는 이렇게 질주하며 시작되는 것이.. 2009. 2. 2.
중국집 아강춘 지금은 없어진 중국집이 내 추억엔 하나 있다. 아니, 가본 지 오래되어 정확히는 모르지만, 지금은 없어졌을 것이다. 벌써 삼십 년도 넘은 얘기니까. 내 고향에는 중국집이 하나 있었다. 알고 보면, 서너 개 더 있었겠지만, 그 중에서도 이라는 중국집이 제일 컸고, 기억에 남는다. 고향에서 군청 다음으로 가는 가장 큰 기관인 농협 바로 옆에 있었으니까. 어린 내게 이 이상한 이름의 중국집은 우선 뜨물통과 미끌미끌한 돼지기름을 연상시킨다. 그 다음으론, 짜장면이다. 생각만 해도 목에 감기던 그 구수하고 들척지근한 맛. 내가 초등학교를 졸업하던 날, 아버지가 데려가서 짜장면 곱빼기를 사주시던 바로 그곳이다. 곱빼기라. 이 얼마나 흐뭇하고 푸짐한 얘기이냐? 지금 생각해도 호사스럽기 그지없다. 우리 집이 과 인연을.. 2009. 2. 2.
그 여름의 맨드라미 이태 전이었던가? 여름휴가를 이용해 시골에 갔다 왔다. 새해가 시작되고 나서 정신없이 지내다 가까스로 낸 휴가였다. 특별히 갈 데도 마땅치 않았고, 바캉스하면 으레 떠오르는 바가지 요금에, 12시간 이상 차를 몰아야 하는 고충까지 생각하니 바닷가는 아예 겁부터 났다. 게다가 눈을 밖으로 돌려 해외여행이라도 갈라치면 몇 백 만원 깨지는 것은 한순간이고 빠듯한 살림에 애들을 둘씩이나 매달고 떠나는 그런 해외여행은 쉬운 게 아니었다. 마흔까지 살면서도 해외여행 하나 제대로 가지 못하는 남편으로서 가족에게 미안하기까지 했다. 그래서 애들에게는 거창한 계획이 있는 양 시골 풍경을 그려대기 시작했다. 개울물이 흐르고, 물고기가 노닐며, 반두로 물고기를 잡아 천렵을 하고, 들판에 뛰어 다니는 메뚜기를 잡고, 밤이면 .. 2009. 2.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