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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한반도 침략 불변의 법칙 일본의 한반도 침략 불변의 법칙 일본이 고대로부터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한반도를 지속적으로 침략해 왔다는 사실은 ‘불변’이다. 또한 일본 내부의 혼란과 이로 인한 생산수단의 곤란함에서 침구했다고 해도 한반도를 지속적으로 침구해 온 사실 또한 ‘고정 불변’이다. 일본은 지금도 우리나라와 만주지방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일본은 과연 이 같은 침략 행위를 멈출 수 있을까? 불행하게도 금세기 내 일본의 이 같은 침략 근성은 사라질 것 같지 않다. 어쩌면 일본 열도가 존재하는 한, 침략의 근성을 포기하는 일은 영원히 없을지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역사의 궤도는 과거의 궤적에서 크게 이탈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싫든 좋든 일본과 맞대고 있는 동아시아 국가들은 일본의 행동에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 일.. 2015. 6. 24.
한반도 재침 위기의 징후들 한반도 재침 위기의 징후들 오랜 역사상 일본의 한반도 침입은 주기적으로 이루어졌고, 소규모로 진행되다가 끝내 전면전으로 발전되는 일정한 양상을 보여 왔다. 이 같은 패턴은 불변성을 지니기보다 침구의 흐름을 예측케 한다는 점에서 왜구의 침구에는 뚜렷한 ‘법칙성’이 있다. 침구에는 한․일 간 및 양국을 뛰어 넘는 국제관계의 상수와 변수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앞으로 더 긴박하고 구체적으로 일본의 침략이 전개된다면, 여러 가변 요인과 상대적 요인이 작용해 전란을 더욱 부채질하는 불쏘시개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작금의 한반도를 둘러싼 상황은 국제관계가 요동치는 변수로 크게 적용하고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예컨대 해방 이후로부터 대미(對美) 의존적 외교 관계를 펼쳐 온 한국이 2011년 8월 ‘동해.. 2015. 6. 17.
정한론(征韓論), 근대 왜구의 침략 연료 정한론(征韓論), 근대 왜구의 침략 연료 조선은 임진왜란 전후 7년간 두 번에 걸친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침략으로 일찍이 볼 수 없던 초유의 전란을 경험한다. “토요토미가 일본을 통일한 후 아시아 대륙을 정복하여 일본 중심으로 조선과 중국은 물론 멀리 인도까지 포함하는 대아시아 제국을 건설”하려 한 것은 자체로 망상적 사고였지만 이 지역 민중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잔혹한 왜환(倭患)으로 아타난다. “야심찬 계획의 첫 수순으로 토요토미가 조선을 침공”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400여년 전의 일이지만, 임진왜란은 그때의 침략행위로 한정되어서는 곤란하다. 또한 피해 당사국인 조선만의 문제로 보아서도 안된다. 동북아 3국과 나아가 임란 이후 명의 멸망과 청의 흥기를 가져왔다는 점에서 4국 전쟁적 성격이 있다. 조선.. 2015. 6. 12.
태조 이성계, 혁명에서 창업으로 가는 기나긴 세월을 인고하다 혁명에서 창업으로 인생의 기회는 좀처럼 오지 않는다. 하물며 역사의 순간에 다가오는 기회란 더 말할 나위 있으랴. 변방의 무관 시절부터 스스로 이룩한 실력을 바탕으로 마침내 중앙 정계의 실력자가 되기까지 이성계의 인생은 전투가 벌어지는 현장이 결정지었다. 구체적 실적을 증명해 냄으로써 군내에서 지위는 급부상하고, 이를 계기로 요동 정벌을 통수하는 권한이 주어졌다면 이는 호랑이 등에 올라 탄 욱일승천의 기세와 같은 것이다. 이제 운명은 그의 선택 여하에 달려있었다. 뽑은 칼을 어디로 휘두르느냐에 따라 정벌군 대장으로서 영예를 한껏 드높일지, 하늘 아래 최고지선의 자리를 넘볼지 결정나는 판이 벌어진 것이다. 조선의 창업자 이성계, 그의 입지전적 창업 과정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이성계는 1335년 화령부(함경.. 2015. 5. 28.
실학자 홍대용으로부터 배우는 혁신정신 실학자 홍대용으로부터 배우는 혁신정신 “한평생 정력을 소모하여 100여권의 잡다한 글을 만지기는 하였으나, 이는 결국 학문에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단지 세상의 종이값이나 올리고 학도들의 안목을 혼란케 할 뿐이니, 이야말로 근세 선비들의 골수에 가득 찬 고치기 어려운 병이다.” 이 말은 짐짓 실제를 구하지 않는 다른 선비들을 질타하는 말인 듯하나, 속내는 자신을 향해 내려치는 날카로운 칼날 같은 꾸짖음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 말은 조선후기 실학자 담헌 홍대용이 그의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한 말이다. 그는 왜 이처럼 자기 부정의 말을 하였을까? 그것은 껍질을 부숨으로써 올곧게 속살을 드러내려고 한, 그만의 투철한 의지가 반영된 것이었다. 홍대용은 1731년 서울의 한 명문가에서 태어났다. 젊었을 .. 2015. 5. 12.
[류성룡의 징비 리더십]빨간 신호등 무시하면 허무하게 무너진다 4월호에 실린 칼럼을 소개합니다. 2015. 4.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