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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70 주년 8.15 특집] 일본 정한론(征韓論) 배경과 안중근 <동양평화론>의 실천적 의미(1) 본 고는 내가 지난 달 라는 제법 긴 제목을 갖고 발표한 글을 전재한 것이다. 일본 극우주의의 팽배와 국내 친일세력의 부왜적(附倭) 성향이 강화되는 시기, 8.15 특집으로 본 인문경영연구소에서는 일본 정한론자들의 역사적 전개과정, 주장 및 연혁과, 그에 맞서 투쟁한 사상가이자, 20세기초 지구상 가장 선구적인 반제국주의 투쟁을 표방한 인물로 실천하는 평화주의자였던 안중근 의사의 이 지닌 숙제를 되새겨 보고자 한다. 원고는 몇 회에 걸쳐 분재한다. 일본 정한론(征韓論) 배경과 안중근 의 실천적 의미 - 일본의 재(再)군사화를 기미(羈靡)하는 동아시아국가 연대 방안을 제안하며- 전경일 인문경영연구소장 서언: 한·일관계사와 일본의 침략 역사 역사는 냉철한 시선으로 바라볼 때 실천적 교훈을 얻는다. 일시적 분.. 2015. 8. 3.
‘일본발(發) 왜구’의 발호-세계제국 ‘원’의 침공 ‘일본발(發) 왜구’의 발호-세계제국 ‘원’의 침공 이처럼 왜구를 무한 복제해 내는 일본 내 속사정은 무엇이었을까? 왜구가 우리나라에 대거 침구한 때는 일본의 가마쿠라 막부시대와 남북조시대였다. 일본 중세에 해당되는 이 시기는 정치적으로 매우 불안정했다. 가마쿠라에 막부를 세운 미나모토노는 1185년 헤이시가(平氏家)를 멸하고 전국적인 지배망을 구축하게 된다. 이때 막부는 ‘수호와 지두(地頭)의 제(制)’를 실시한다. 수호(守護)란 모반, 살인자 등을 관장하는 관리를 뜻하고, 지두란 장원의 관리, 조세의 징수, 치안의 유지를 맡아 보는 직책을 말한다. 이는 미나모토노가 내란에 참가한 무사 계급을 주종 관계로 묶어 지배 질서를 확립한 것을 뜻한다. 그러다가 그가 죽자 정권은 처가 쪽인 호조씨(北條氏)에게.. 2015. 7. 29.
‘일본발(發) 왜구’의 발호-조큐의 난(2) 지금 일본은 2차 대전 이래 가장 뜨거운 극우주의 열기로 들끓는 가마솥과 같다. 경제 성장이 가져온 경제대국화와 일본 내 경제적 불안정성과 잦은 자연재해, 그리고 잇따른 인재(人災)는 이 가마솥이 폭발의 행로를 찾아 새로운 팽창주의로 방향을 틀고 있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이 같은 팽창 기조를 일본은 1823년 사토 노부히로가 제안했던 ‘울릉도·독도 공략책’에서 찾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독도문제의 역사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왜구와 근대 일본의 군국주의, 지금의 일본 극우주의자들이 서로 빈틈없이 맞아 떨어지고 있다. 우리가 왜구를 다루는 것은 일본의 침구가 끝내 일본은 물론 주변 국가 모두의 불행이 되어 온 역사적 경험 때문이다. 나아가 이 일이 단지 과거의 불행으로 국한되지 않을 거라는 우려가 .. 2015. 7. 20.
‘일본발(發) 왜구’의 발호-조큐의 난(1) ‘일본발(發) 왜구’의 발호-조큐의 난(1) ⟨광개토태왕비문⟩에 새겨진 명문(銘文) 이후, ‘왜구’가 처음으로 사료에 등장하는 것은 1152년이다. 일본 측 자료인《청방문서(靑方文書)》가 그것이다. 여기에는 고려를 대상으로 해적활동을 한 집단에 대한 최초의 증빙이 엿보인다. 일본 규슈 나가사키현(長崎縣)의 서쪽에 위치한 고토(五島)의 장관격인 지두(地頭) 기요하라 고레카네(淸源是包)가 고려 선박을 탈취한 혐의로 영주로부터 예소직(預所職)을 박탈당했다는 기록이다. 이 기록은 왜구가《고려사》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시기와 대략 70여년의 차이가 있다. 하지만 ‘해상 무사단’의 활동 지역이 일본열도 내 바다를 넘어 멀리 고려 선박을 대상으로 약탈하고 있다는 점에서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이는 왜구가 어떻게 활.. 2015. 7. 15.
왜구, 그 질긴 악연의 시작 왜구, 그 질긴 악연의 시작 왜(倭)의 성장으로 한중일 간에는 이전과는 사뭇 다른 양태가 벌어졌다. 바다를 무대로 한중일 삼국은 새로운 관계망을 형성하게 된다. 삼국이 처음으로 만나는 지점은 유동성이 가장 큰 바다였고, 바다는 ‘예측 불허의 수단’과 ‘무력’에 의해 자기의 욕구를 드러내는 장소로 가장 적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각국은 어쩔 수 없이 자신의 본질과 성향을 드러내게 되는데, 섬에서 대륙으로 별로 전해 줄 게 없었던 일본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왜구(倭寇)’라는 카드를 내밀게 된다. ‘왜구(倭寇)’는 이런 배경과 방식으로 한중일 역사 무대에 전격 등장하게 된다. 우리나라 기록에 ‘왜(倭)’가 처음으로 등장하는 것은《삼국사기》신라본기 혁거세조이다. 왜구에 대한 기록은 그 뒤에도 끊이질 않는다... 2015. 7. 8.
왜구의 시작, 왜구의 나라 왜구의 시작, 왜구의 나라 오랜 시간 일본열도는 대륙으로부터 문명의 수혈을 받아왔다. 이 점은 일본이 인정하려 들지 않아도 분명한 사실이며 이에 의문을 제기한다면 한중일 간 역사 이전에 인류의 이동사 마저 부정하는 꼴이 된다. 역사적 사실은 여기서부터 출발한다. 긴 역사 기간 동안, 새롭고 수준 높은 한반도와 중국의 선진문명은 일본인들을 미개에서 문명 단계로 접어들게 한 원천이었다. 일본열도의 원주민 집단은 한반도의 이주민과 함께 한반도 문화를 받아들이며 점차 일본 열도의 독자적인 성향을 갖게 된다. 일본은 오랜 시간 한반도를 젓줄로 해서 문명을 전수받으며 자체 역량을 키워 온 셈이다. 그에 대한 역사적 사실로 서기 700년까지 일본 주민 중 원주민은 단지 10퍼센트에 불과한데 반해, 선진 문화를 가진 .. 2015. 7.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