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체 글1023

가까운 이웃과 만고불변의 원수-1620년간 계속된 왜구 침략에 과연 끝이라는 게 있는가? 가까운 이웃과 만고불변의 원수 - 1620년간 계속된 왜구 침략에 과연 끝이라는 게 있는가? 1592년 임진왜란 징후 파악과 발발에 대해 조선 정부의 대응은 무능한 것이었다. 인접 국가인 일본 내부에서 벌어지는 일을 세세히 탐망하고 방비책을 마련했어야 했다. 그러나 조선은 방비를 게을리 한 탓에 임진왜란의 참혹한 전화를 겪는다. 임진왜란 발발 2년 전인 1590년(선조 23년) 3월 조선정부는 왜에 통신사를 파견한다. 사절단의 파견 목적은 토요토미가 전쟁을 수행할만한 능력이 있는지를 평가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황윤길과 김성일간 상반된 정세예측 보고는 혼란만 가중시킬 뿐이었다. 이 시기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이미 전쟁 준비를 완료해 놓은 상태였다. 일본 내부의 사정에도 눈이 어두웠다. 황윤길과 김성일이.. 2015. 12. 30.
동아시아 전체의 골칫거리, 왜구 동아시아 전체의 골칫거리, 왜구 한반도와 일본열도는 바다를 사이에 두고 직접적인 접점에 놓여있다. 이 점은 양국 관계에서 불가피한 지리적 여건으로 작용하고 있다. 가까운 거리라는 이유로 문명사적 교류도 활발했지만, 그로 인해 한반도는 왜구 침구의 가장 극심한 피해를 입어 왔다. 14세기 중엽부터 고려는 반원자주운동을 추진했으나, 40여 년 동안 계속된 홍건적의 침입은 서북지방으로부터 개경에 이르는 연도 인근의 제읍(諸邑)들을 모조리 폐허로 만들어 버렸다. 먹을 것이 없는 극도의 기아 상태에서 백성들은 죽은 자식을 서로 바꾸어 먹을 정도로 비참한 삶을 이어 갔고, 시체를 파먹은 개들은 미쳐서 개경 시내를 어슬렁거릴 정도였다. 홍건적에 의한 피해도 컸지만, 왜구에 의한 침입과 피해는 이보다 규모나 횟수면에서.. 2015. 12. 30.
왜구의 주체는 ‘도망자 무리’ 왜구의 주체는 ‘도망자 무리’ 왜구의 주체가 누구인지를 규명하려는 시도가 한중일 간에 있어 왔다. ‘왜구’라 함은 구체적으로 누구를 가리킬까?《고려사》는 왜구의 주체 세력이 누군지를 분명히 밝혀주고 있다. 일본 사신이 고려를 방문한 것은 공민왕 17년인 1368년, 왜(倭)의 승려 본토(梵盪)와 본류(梵鏐)가 방문하면서부터이다. 이들은 왜구 금지[禁寇]를 요청하는 고려 정부의 공식 문서에 대한 회답[回書]을 가지고 왔는데, 그 내용은 지금 남아 있지는 않다. 다만 그로부터 9년이 지난 1377년(우왕 3년) 6월 판전객시사(判典客寺事) 안길상(安吉祥)이 일본에 갈 때 가지고 갔던 첩장(牒狀)을 통해 그 내용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첩장에는 고려 금룡(金龍)이 일본을 방문한 것에 대한 회답으로 왜측의 세이.. 2015. 12. 30.
‘누구도 죽지 않을’ 생존선택의 법칙 위기의 상황에 접해 우리 중 누군가가 희생돼야 한다면, 누구를 살리고 죽일 것인가? 많은 기업들은 구조조정이라든가, 사업개편, 인수 합병 등의 과정에서 어떤 부분은 살려내고 어떤 부분을 줄이거나, 없애버린다. 그들이 이런 결정을 내리는 배경에는 어떤 동물적 역할이 작용하기 때문일까? 벨링 땅다람쥐 세계에서 그 원인을 규명해 본다. 벨링 땅다람쥐의 선택 미국서부 캘리포니아주 네바다에 위치한 시에라 사막. 이 황량한 사막에는 벨딩 땅다람쥐(Spermophilus beldingi)가 살고 있다. 이 조그마한 설치류는 1년의 대부분은 동면하고, 여름 한철 동안(3~4개월)에만 땅 위로 모습을 드러낸다. 이들은 잠에서 깨는 것과 동시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굴 밖으로 나와야만 한다. 이들은 살기 위해 필연적으로 .. 2015. 11. 25.
르네상스가 이룩한 탁월한 브랜드 가치 르네상스가 이룩한 탁월한 브랜드 가치 14~15세기 이탈리아에서 나타난 르네상스는 흔히 ‘문화와 예술의 황금시대’로 불린다. 미술, 건축, 철학, 사상 등 다양한 분야의 수많은 천재들이 저마다 솜씨를 뽐내며 자기 분야를 넘어서는 혁신을 이뤄냈고, 역사의 흐름을 바꾼 시대로 평가받기 때문이다. 혁신은 도미노처럼 사회 곳곳에서 연쇄 작용을 일으켰는데, 그 중심엔 뛰어난 창조적 혁신가들이 있다. 이 같은 인재들이 한꺼번에 출현한 것은 역사상 유례가 드문 일이었다. 당시 이탈리아 도시국가에는 뛰어난 인재들을 끌어들이는 요인이 몇 가지 있었다. 먼저, 인재에 대한 도시국가의 갈망이었다. 각 도시의 귀족과 토후들은 뛰어난 예술가들을 식구로 데려가려고 온갖 노력을 다했다. 그들은 이 대가들이 지식과 기술을 맘껏 발휘.. 2015. 11. 25.
폴크스바겐 사태로 본 패러다임 전환 2015. 10.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