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 강의195 [창조의 CEO 세종] 결단의 중심에 서다 CEO로서 세종의 취임은 매우 매력적인 환경과의 조우였다. 그것은 보다 야심 차고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은 활력 넘치는 ‘즐거움(生生之樂)’으로의 초대와 같았다. 어느 CEO에게나 그렇듯 할 일이 없어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일이 넘쳐나는 것과는 비교 되지 않을 정도로 고통스러운 일이다. 창업 후 채 30년도 안된 신생 조선은 이제 막 새로운 사상과 문화 그리고 실질적인 국가 경영 시스템을 만들어 나가는 시기였다. 이 시기, CEO인 세종에게 가장 절실히 요구된 것은 다름아닌 변혁의 시대를 살아가는 과감한 결단력과 추진력이었다. [할일 많은 CEO, 결단으로 우뚝 서다] 세종은 의사결정, 그 자체 보다는 그것이 이루어진 배경과 그것이 의도하는 바에 더 주목했다. 즉, 그는 화살을 날려 보내기 전에 화.. 2009. 2. 3. [창조의 CEO 세종] 신생 조선을 업-그래이드 하라! CEO가 되기 전, CEO로 부름을 받을지 모른다는 한 가닥 희망 속에서 세종은 착실히 경영 수업을 쌓아나갔다. 하지만 그것은 당시로써는 전혀 가능성 없는 헛된 기대감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 가운데에서도 세종은 희망의 날을 벼리는 작업을 결코 게을리 하지 않았다. 준비마저 없다면, 정작 기회가 와도 결코 자기 것으로 만들지 못하리라는 것을 그는 누구보다도 잘 알았던 것이다. 사실 세종은 너무나 ‘호학(好學)’한 타입이어서, 설령 대군의 신분으로 평생 궐 밖에 나가 산다고 할지라도 결코 문제 될 게 없었다. 그에게 있어 공부는 인생을 벗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친구였다. 그에겐 정말 공부가 제일 쉬웠다. 그리고 공부를 하고 있으면 언제나 머리 속이 가득 차오르는 기쁨을 느낄 수가 있었다. 더구나 공부를.. 2009. 2. 3. [창조의 CEO 세종] 마침내 새로운 CEO가 탄생하다 태종의 후임 CEO에 대한 기대감은 실로 대단했다. 그는 자신을 뛰어넘는 CEO를 그 자신이 뽑았다는 사실에 스스로 흐뭇했다. 그것은 분명 탁월한 경영자의 면모이다. 하지만 그는 한계가 있었다. 그가 역사에 손을 내밀면 역사는 언제나 그의 손에 묻은 피를 가리켰다. 거기엔 수많은 음모와 술수, 그리고 그의 거대한 욕망 때문에 쓰러진 희생자들의 피가 뒤엉켜 있었다. 형제들이 흘린 피는 그 중 가장 비극적인 예의 하나일 뿐이었다. 태종이 가장 ‘선선(善善)의 선(善)’의 경영을 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세종에게 천의무봉하게 경영권을 넘겨준 일이었다. 그것은 매우 질서정연했고, 신속했으며, 단 한 방울의 피도 묻이지 않고 진행된 일이었다. [네가 CEO의 전범(典範)이 될 수 있겠느냐?] 더구나 태종이 .. 2009. 2. 3. [창조의 CEO 세종] 칼, 글 속에 잠들게 하라 태종의 차기 CEO에 대한 배려는 과거를 청산하는 과정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조선은 창업 되었지만 창업자인 태조 때부터 내려온 고려의 충신들에 대한 정치적ㆍ심적 부담감이 완전히 가신 것은 아니었다. 조선의 창업에 이어 그 소유권과 경영권을 분명히 하고 나자, 태종은 그 특유의 ‘전략적 사고’를 통해 지금껏 부담으로 남아있던 조선의 ‘저항세력’을 역(逆)으로 조선의 경영권 강화에 활용할 계획을 수립한다. 그리하여 태종은 고려 말 창업기에 가장 부담이었던 라이벌 정몽주ㆍ김약항ㆍ길재 등에게 오히려 포상 조치를 취함으로써 - 나중에 후임 CEO인 세종은 그들 자손에게 관직 진출의 기회를 확 열어준다. - 신하들의 충성도(로열티)는 이러해야 한다는 하나의 모범적 전형을 창출해 냈던 것이다. [적(敵)을 끌어 앉.. 2009. 2. 3. [창조의 CEO 세종] 나는 준비 되어 있다 어느 시대건, 어떤 경영 환경에서건 신념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다른 사람들의 신념은 만들어 진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리더’로 불린다. 태종이 ‘화가이국(化家爲國)’(가문을 이끌어 나라를 이룬다는 뜻.)의 신념을 가지고 창업 제1공신의 역할을 수행한 것은 그의 신념의 발현이었다. 세종 또한 자기 신념에 투철한 사람이었다. 그는 1397년 태종의 셋째 아들로 태어나 학문을 철저히 마칠 무렵인 22세 때 태종으로부터 CEO 자리를 물려받았다. 물론 군사 통솔권은 없는 CEO 자리였다. CEO가 되리라는 생각을 보다 구체적으로 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는 자신이 생각하는 ‘자기 모습’이 되도록 끊임없이 노력한 사람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자신의 소임에 끊임없이 부응함으로써, 그 대답을 얻었다. 결과적으로 CE.. 2009. 2. 3. [창조의 CEO 세종] 세종 국가 경영 수업을 쌓다 조선 창업의 주역인 태종과 세종. 그들은 창업과 수성을 잇는 임금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세종의 조선 제 4대 CEO인 세종은 분명 전임자의 기획물임에 틀림없다. 왜 그런가? 태종이나 세종 자신도 잘 알고 있었던 사실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CEO 자리는 적장자(嫡長子)가 승계한다’는 원칙이었다. 이것은 유학을 중심으로 한 조선의 창업 이념으로 봤을 때 결코 쉽게 무너질 수 없는 대 원칙의 하나였다. 따라서 이러한 원칙의 변형은 조선의 사상적 존립 기반을 뒤흔들어 놓기에 충분했다. 따라서 누가 봐도 세종은 결코 CEO가 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종은 끊임없이 자기 연마와 준비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물론, 태종처럼 언젠가 기회가 오면 ‘낚아 채겠다’는 일념으로 절치부심(切齒腐.. 2009. 2. 3. 이전 1 ··· 24 25 26 27 28 29 30 ··· 3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