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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경영89

‘표적집단 면접법’과 자원 투여 전략 ‘표적집단 면접법’과 자원 투여 전략 조엄이 고구마 종자를 제주도로 보낼 생각을 했던 것은 1719년부터 1763년 사이 제주도에 유독 기근이 많이 들었다는 점이 크게 반영된다. 또한 사행중 대마도 이즈하라(嚴原)에서 제주도 표류민을 만난 일도 작용했다. 조엄 통신사 일행은 1764년 6월 귀로에 대마도에서 제주도 표류민들이 귀국선편을 기다리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이들을 불러 격려한 일이 있다. 이때 재배법을 기록하고 있던 조엄은 표류민 일행을 만나 위로하며 제주도의 토양이나 기후에 대해 자세히 물어보는 확인 작업을 했다. 땅과 작물간의 상관성에 주목해 간접적이나마 현장체험을 한 것이다. 이들과의 대화를 통해 고구마가 충분히 아침・저녁을 대신할 수 있는 미곡 대체재라는 점, 우리도 널리 재배했으면 좋겠다.. 2013. 1. 21.
‘먹거리’ 혁명의 시작 ‘먹거리’ 혁명의 시작 고구마가 조선에 보다 일찍 소개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누구도 명약관화하게 일반 백성들의 식생활에 깊은 관심과 안목을 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일 고구마가 좀 더 일찍 보급되었더라면 적어도 50여년간 조선의 식량, 구휼 문제는 크게 달라졌을 수 있고 수많은 인명을 기아로부터 건질 수 있었을 것이다. 결국 조엄 이전 통신사에 속한 모든 관료들은 목민관으로서의 사명감이 부족했다고 할 수 있겠다. 혹은 국가적 외교 현안에만 빠져 다양한 기회를 접할 기회를 스스로 차단해 버린 결과로 볼 수도 있다. 그런 와중에 유독 조엄만이 대마도에서 고구마를 발견하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 여기에는 아마도 1731년(영조 7) 사은부사로 청나라에 다녀 온 아버지 조상경(趙尙綱)의 영향이 크지 .. 2013. 1. 15.
가치 발굴을 이뤄낸 탁월한 통찰력 가치 발굴을 이뤄낸 탁월한 통찰력 다시 조엄과 고구마의 운명적인 만남을 위해 대마도로 가보자. 조엄이 부산포를 떠나 사스우라에 도착한 것은 1763년 10월 6일 오후 6시경이었다. 이곳에서 처음으로 고구마를 보게 된 조엄은 즉시 종자를 얻어 부산포로 보낸다. 통신사 선단 6척이 10월 10일 사스우라를 떠나자 즉시 배를 부산포로 띄운 것이다. 이때 고구마 종자를 싣고 부산포로 온 배는 대마도 비선(飛船)이었다. 이들 비선은 통신사의 사행 중간보고를 위한 파발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 고구마 종자가 처음 부산포에 도착한 것은 10월 중순경. 조엄이 부산포에서 비선편으로 보낸 10월 12일자 가서(家書)를 대마도 깅우라(琴浦)에서 받아 본 것이 10월 26일이었으니 부산-대마도간 연락망이 매우 신속히 움직.. 2013. 1. 10.
지구상 발견, 마침내 조선에 이르다 지구상 발견, 마침내 조선에 이르다 조엄의 통신사 일행은 1763년 8월 3일 서울을 출발하여 육로로 8월 23일 부산에 도착했다. 부산포를 출발한 133일 째인 1764년 2월 16일에 일본 에도에 도착하는 긴 여정이었다. 그 첫 일본 기항지가 대마도 북단 사스우라였다. 앞서 서술한 바와 같이 이곳에서 고구마를 처음으로 본 조엄은 이 뛰어난 식량대용 작물을 부산포로 가는 대마도 비선(飛船)편에 즉각 보낸다. 해를 넘기면 재배를 기약할 수 없다는 절박함과 재배시간을 벌기 위해서였다. 이후 고구마는 조선 전래 직후부터 조정과 민간의 관심을 폭발적으로 모으며, 종자 보급과 함께 재배법이 상세히 소개된다. 이로 인해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는 식물’이라는 최고의 구황작물로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뒤이어 많은 사.. 2012. 9. 11.
고구마, 사고의 전환이 가져온 위대한 발견 고구마, 사고의 전환이 가져온 위대한 발견 인생에선 때로 기대하지 않았던 일들이 벌어지곤 한다. 콜럼버스가 인도로 가는 항로를 찾기 위해 항해에 나섰다가 신대륙을 발견했듯, 우연한 기회에 찾아지는 행운을 흔히 ‘영민한 발견(serendipity)’이라고 부른다. 부산을 떠난 조엄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놀랍게도 난생 처음 접하는 새로운 발견으로의 초대였다. 조엄 일행은 1763년 10월 6일 대마도에 도착해 5일 동안 사스우라에 머물게 된다. 이 때 조엄은 조선의 먹거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최대의 구원투수를 만나게 된다. 바로 고구마였다. 고구마를 처음 본 순간, 조엄은 그것이 구황작물로 이용후생에 가치가 높다는 점을 인지했다. 그는 즉시 고구마의 생태・맛・재배법・저장법 등을 상세히 탐문하여 기록하고,.. 2012. 9. 10.
[고구마 초발혁신가 조엄: 통찰이 빚어낸 놀라운 결과 통찰이 빚어낸 놀라운 결과 이 글에서 다루려는 한 인물에 대해 짤막한 평을 달자면, 아마도 이런 수식이 가장 적절할 것이다. ·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고구마를 전래해 온 사나이. · 위대한 사고와 행동으로 조선 백성의 굶주림을 해결하고자 했던 목민관. · 고구마 프로젝트의 성공을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성과를 관리한 경영자. · 시대의 주요 모순을 직시하고 해법을 찾고자 고군분투한 경세가. · 문익점의 ‘입을거리’ 혁명을 벤치마킹해 ‘먹거리’ 혁명을 이뤄 낸 식(食)문화의 초발혁신가. 이 사람은 다름 아닌 조선 후기 문신 영호(永湖) 조엄(趙曮)이다. 이 같은 수식어가 붙어도 부족하지 않을 조엄은 과연 누구일까? 조엄을 알려면 우선 그의 집안 내력을 살펴보는 것이 중요할 듯싶다. 조엄은 조선후기 권문세가인 .. 2012. 8.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