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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 강의/세종 | 창조의 CEO130

[창조의 CEO 세종] 장기적 안목으로 팀을 키우라 세종이 취임 초에 집현전을 세우고 집현전 소속 멤버들을 특별 우대한 것은 학문 자체의 목적도 있었지만, 동시에 CEO의 수족이 될만한 세력을 키운다는 목적도 없지 않았다. 그리하여 베스트 오브 베스트 멤버 10은 최상의 방식으로 선발된 핵심 요원들이었다. 이들은 다양한 학술 활동을 통해 CEO가 어떤 사안에 대해 해결방안을 물으면 이를 역사적인 사실에 비추어 조사하고, 해결하는 방안을 제시하는 역할도 수행했다. 그야말로 가히 측근 브레인 집단이었다. 더불어 이들은 CEO의 질문에 답하기 위해 정보활동 및 참고 활동 - ‘비고문(備顧問)’이라 불림. - 도 더불어 수행했다. 그런 의미에서 중국과 고려의 옛 제도에 대한 벤치마킹은 매우 중요했다. 나아가 이 모든 것들은 ‘조선에 맞는 형식’으로 재창조되어 적.. 2009. 2. 3.
[창조의 CEO 세종] 믿음과 열정으로 마음의 불을 지펴라 [싱크 탱크를 운영하라] 세종은 추천과 발탁제도 이외에도 ‘과거(科擧)’라는 채용 시험을 통해 인재들을 공정하게 뽑아 들였다. 싱크 탱크인 집현전의 핵심 요원들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채워졌다. 집현전은 국가경영상의 현안 문제에 대한 안을 마련하는 전문가 집단으로 자리 매김 되었다. 명실상부하게 집현전은 조선의 경영정책 및 전략수립의 장이자, 당대 최고 인재들의 집합소였다고 할 수 있다. 이렇듯 고려 때 명분뿐이던 집현전은 세종시대 이르러 환골탈퇴를 하며 핵심 인재들간의 이너서클(inner circle)로 발전한다. - 이 이너서클의 멤버로는 영의정을 비롯해 최고위급 인사들이 있었고, 이들 대부분 정규 고위 관직을 겸직 하였다. - 세종의 이러한 조치는 집현전을 훨씬 더 중요한 기관으로 만드는데 상당한 영.. 2009. 2. 3.
위상재인(爲商在人): “사업은 사람에게 달려 있다” [이순지(李純之)씨의 경우] 이순지는 문과에 급제한 양반 집안의 준재로 앞길이 보장된 인재였다. 그런 그에게 세종은 중인 계급에서나 하는 학문인 산학(算學) - 지금으로 얘기하자면 고급수학ㆍ통계학 등을 말한다. - 을 연구하라는 특명을 내린다. 그가 보여준 수학적 재능은 그에게 천문과 역법을 맡기기에 충분했다. 당사자로서는 자신의 신분보다 낮은 일을 맡으라는 지시가 결코 달가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순지는 선뜻 세종의 뜻을 따랐다. 15세기 최고의 천문학자 이순지는 이렇게 탄생한다. 세종의 용인술의 핵심은 ‘적재(適材)를 적소(適所)에 배치한다’는 것이었고, 그에 따른 보상을 반드시 후하게 해준다는 것이었다. 그럴 때 인재는 모이고, 자라나며, 아낌없이 능력을 드러낸다. 세종의 인재 육성책은.. 2009. 2. 3.
[창조의 CEO 세종] 나는 인재를 보는 것만으로도 배가 부르다 이 날, 당대 천재들의 토론은 진지했고, 결과는 매우 만족스러웠다. 세종은 그의 비상한 능력을 곧바로 알아보고, 또 한 사람의 인재를 얻었다는 사실에 기뻤다. 그리하여 CEO 세종은 장영실을 발탁 인사 조치하며, “그의 사람됨이 비단 공교한 솜씨가 있을 뿐 아니라, 성품이 특별히 영특하고 매양 강무에서도 열심히 노력하여”(『세종실록』15년 9월 16일)뽑는다고 밝히고 있는 것이다. 천재성과 성실성을 높이 평가했던 것이다. 정영실에 대한 인사조치는 매우 파격적인 것이었다. 그리하여 세종은 장영실을 대소신료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종6품인 상의원의 별좌에 임명하게 된다. 이 직책은 왕실천문ㆍ지리ㆍ역법 연구기관인 서운관의 천문학 교수 및 고을의 현감과 같은 지위였다. 이러한 파격적인 인재 스카웃과 함께 세종은 .. 2009. 2. 3.
[창조의 CEO 세종] 나는 인재를 경영하는 CEO [가족 중에도 인재는 있다. 그러나 그들은 반드시 검증되어야 한다] 국가 경영권이 가족 구성원에게 대물림되는 왕권시대라도 적장자라고 해서 무조건 국가 경영권을 물려받는 것은 아니었다. 그 대표적인 예가 태종과 세종이었던 것은 너무나 잘 알려져 있다. ‘국가 경영권’은 그것을 ‘승계’할만한 사람에게로 가야 한다. 만일, 그것이 조금이라도 비뚤어지면 그것은 과정상 항시 피를 부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국가 경영이라 함은 그냥 ‘물려주는 행위’로 끝날 수 없는, ‘피나는 수성(守成)의 과정’이 기다리고 있는 릴레이 경기와도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택현론(擇賢論)’은 반드시 적용되어야 한다] 스스로 ‘택현론(擇賢論)’의 수혜자로 CEO가 된 세종은, 전임 CEO의 눈빛을 읽을 수 있었다. 그는 부친인 태종.. 2009. 2. 3.
[창조의 CEO 세종] 유능한 CEO 앞에 인재는 결코 숨지 않는다 세종 시대에 그처럼 많은 인재들이 나타난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것은 세종의 탁월한 안목과 인재 중심의 인사 정책을 펼쳤기 때문이다. 세종은 탁월한 인물들을 많이 만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그들의 기량을 이끌어 낼 줄 알았다. 거기에다가 고구마 줄기를 잡아당길 때처럼 줄래줄래 다른 분야의 인재들까지 딸려 나왔다. 그중 대표적인 인재가 바로 박연과 장영실이었다. 그 때에는 활발한 제안과 천거제도가 있어서, 이를 활용해 세종은 장영실과 같은 IT분야의 숨은 보석을 손에 움켜 쥘 수가 있었다. 그리고 박연과 같은 천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한 ‘음재(音才)’도 얻을 수 있었다. 그리하여 세종은 박연과 장영실이 자신과 “같은 시대에 함께 태어난 것”을 정말 매우 흡족하게 생각했다. 이렇듯 인재는 꼬리에 꼬리를 .. 2009. 2. 3.